17년간 IB사업 챙겨온 '리더' 공백 가시화
차기 최고경영자 후보는 마땅치 않아
'계열사 관리' 강화한 농협지주 움직임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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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만의 '레짐 체인지'(가치ㆍ규범 등 행동 양식의 변화)가 있겠네요." (NH투자증권 관계자)
존재감이 남달랐던 리더의 부재가 현실화하고 있다. 2005년부터 NH투자증권의 성장, 특히 투자금융(IB) 부문의 성장을 진두 지휘해 온 정영채 대표가 암초에 부딪쳐서다.
NH투자증권의 독립성 이슈도 부각하고 있다. 정 대표의 뒤를 이을 후임자가 마땅치 않다는 평가가 많다. 옵티머스 펀드 사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NH투자증권을 농협금융지주가 계속 '방임'할 가능성은 적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말 제재심의위원회로부터 정 대표에게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결의했다. 옵티머스 펀드 관련 내부통제에 과실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 징계가 확정되면 내년 3월까지인 정 대표는 더 이상 임기를 연장할 수 없다. 이후 3년간 금융회사 취업도 불가능하다.
정 대표의 공백은 당장 NH투자증권의 IB 경쟁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대표이사 취임 이후에도 정 대표의 IB 부문에 대한 영향력은 커지면 커졌지 줄어들지 않았다. 보통 본부장급이 관장하던 주관사 선정 프리젠테이션(PT)에 대표급이 수시로 얼굴을 내밀게 된 건 정 대표 탓이라는 말이 업계에 돌 정도였다.
2015년 전후 NH투자증권 IB의 경쟁력은 압도적이었다. 주식자본시장(ECM)과 채권시장(DCM) 주관 부문 1위를 석권했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인수금융 등에서도 최상위권 경쟁력을 확보했다. 여기에 지배구조 자문 등 시너지가 겹치며 '토털 솔루션 하우스'라는 명성이 드높았다.
최근 NH투자증권은 여전히 리그테이블 상위권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는 '빅3' 중 한 곳이지만, 이전만큼 압도적인 위용은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경쟁사들이 경쟁적으로 몸집을 불리며 트랙레코드를 쌓은데다, 최근 2~3년새 핵심 실무진이 잇따라 이탈하며 위기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여기에 '천상 영업맨'이자 고객들에게 한결같은 믿음을 주던 '상징'인 정 대표까지 사라진다면 이전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거란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정 대표의 부재(不在)는 그가 이끌던 '정영채 사단'의 잇따른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증권가의 이목을 끄는 주제다.
올해 LG에너지솔루션의 기업공개(IPO) 주관사 선정전에서 후보로 초대조차 받지 못한 건 이전같지 않은 위용의 한 단면으로 꼽힌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정영채 대표는 물론, LG공채 출신이자 담당 RM(영업역)이었던 윤병운 기업금융1사업부 대표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이었을 것"이라며 "덕분에 NH투자증권은 늘 한 수 아래로 내려다봤던 KB증권에게 ECMㆍDCM리그테이블 1위를 모두 내줄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 대표가 IB사업부만의 대표가 아니라는 점이다. 농협에 피인수된 이후 김원규 당시 우리투자증권 대표가 통합회사 대표로 선임됐을 땐 '다음은 정영채'라는 공감대가 사내 안팎에 있었다. 그만큼 입지가 단단했던 '세컨드 맨'이었다는 말이다.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3명의 부사장단 중 정용석 부사장은 NH농협은행 출신이다. 김태원 홀세일사업부 대표와 조규상 운용사업부 대표는 각각 한화자산운용, 골드만삭스자산운용 출신으로 실무역량을 위한 외부 전문가란 색채가 강하다는 평이다.
차기 사장 후보로 자주 언급되는 윤병운 대표(전무)는 '정영채 사단'으로, 정 대표와 임기를 같이 할 거란 예상이 회사 안팎에 떠돌고 있다. 최승호 IB2사업부 대표(전무)는 신용평가사 출신으로 사내 입지가 공고한 편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권순호 기관영업본부장(전무)과 김경호 WM사업부대표(전무)는 정 대표와 비슷한 연배로, 세대교체 성향이 강해진 최근의 인사 정책과 결이 약간 다르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농협금융에서의 파견 가능성도 부각하고 있다. 올해 농협금융지주는 농협 출신 부사장이 담당하던 경영지원부문에서 경영기획부문을 별도로 분리해 전무급 인사를 추가 파견했다. 옵티머스 사태 이후 NH투자증권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NH농협지주가 이전까진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NH투자증권의 자율경영을 보장해줬지만, 옵티머스 사태 이후엔 기류가 바뀌었다"며 "신한금융투자의 금융사고가 은행을 거쳐 그룹 리스크로 비화했던 걸 농협지주 역시 면밀히 모니터링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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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4월 1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