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황이 좋을 때 상장 준비를 시작한 대어(大魚)는 공모 과정에서 부침을 겪는 징크스가 있죠. 호텔롯데가 그랬고 SK루브리컨츠가 그랬죠. 카카오뱅크도 느낌이 좀 좋지 않네요." (한 증권사 IB 임원)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카카오뱅크의 기업공개(IPO) 공모 흥행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테슬라의 시가총액이 한때 글로벌 상장 자동차 제조사 전부의 시가총액 합계보다 컸던 것과 같이, 카카오뱅크의 장외가 기준 예상 시가총액이 4대 금융지주 전부의 시가총액 합계보다 큰 것 역시 당연하다고 여겨졌다.
최근 들어선 분위기가 약간 달라졌다. 일각에서 '그래도 좀 느낌이 좋지 않은데...'라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실적 등 수치에선 확인할 수 없지만, 카카오뱅크를 둘러싼 환경이 확연하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카카오뱅크를 향한 금융권의 눈빛은 애정으로 가득차있다.
단적인 사례가 카카오뱅크 주주사(지분율 1.4%)인 예스24의 지분 매각 철회다. 예스24는 올해 들어 적극적으로 카카오뱅크 지분 매각을 추진해왔다. 지난달 기업가치 18조원 안팎으로 주요 기관에 매각 의사를 타진했다가, 반응이 좋자 이달 들어선 아예 공개적으로 제안서를 배포하고 입찰을 받았다.
이번 입찰 과정에서 일부 기관은 기업가치 20조원에 해당하는 가치로 해당 지분을 사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스24의 선택은 매각 철회였다. 하반기 상장 공모 과정에서 매각하는 게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 안팎에서는 예스24가 원하는 카카오뱅크 가치가 적어도 25조원 수준은 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시가총액 19조원)과 우리금융지주(시가총액 7조원)를 합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시가총액 25조원 기준, 주가순자산비율(PBR)은 9배, 주가순이익비율(PER)은 220배다.
카카오뱅크가 은행(평균 PBR 0.4배, PER 5배)은 물론, 플랫폼(네이버ㆍ카카오 평균 PBR 8배, PER 100배)까지 뛰어넘어 찬란하게 빛나는 또 다른 무언가가 될 거란 기대감이 반영돼있는 가격이다.
이처럼 모두가 가득 찬 기대감으로 바라보고 있는 카카오뱅크를 삐딱하게 보는 시선은 왜 생겨난 것일까.
'기대를 과도하게 받던 대어는 항상 공모 과정에서 고초를 겪는다'는 명제는 IPO 업계의 경험칙 중 하나다. 보통 발행회사는 실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상장하고 싶어하고, 투자자들은 상장 이후에 회사가 더 커지길 바라기 때문에 생기는 '미스매치'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이런 맥락에서 "카카오뱅크의 전성기는 작년이었다"(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일각의 목소리는 심상치 않다. 물론 쌓이는 자산에서 수익이 나오는 금융업의 특성 상 카카오뱅크는 앞으로도 수 년 간 매년 사상 최대 실적을 갱신할 것이 확실시된다.
문제는 성장의 속도다.
지난해 카카오뱅크는 사실상 인터넷은행 시장을 독점했다. 케이뱅크는 자본 문제로 뛰지 못했고, 토스뱅크의 인가는 늦어졌다. 올해엔 다르다. 당장 가상화폐 투자 열풍을 등에 업고 케이뱅크가 살아났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 1분기 말 기준 케이뱅크의 여신 잔액은 연말 대비 8400억원, 28% 늘어났다. 같은 기간 카카오뱅크 여신은 3000억원, 1.4% 늘었다. 하반기에는 토스뱅크도 출범한다. 이르면 7월을 목표로 하고 있다.
끝도 없이 오르던 시중금리도 3월 중순을 최고점으로 하향 안정화하는 추세다. 채권수익률의 지표가 되는 미국 10년물은 1.74%를 고점으로 최근 1.5%대까지 밀렸고, 한국 10년물 역시 2.15%를 최고점으로 최근엔 2% 안쪽에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대신증권 리서치센터는 올해 국내 은행 평균 순이자마진(NIM)을 1.41%로 전망했다. 지난해 대비 2bp(0.02%포인트) 상승한 수치로, 여전히 최근 10년래 최저치다. 올 초 주요 은행 NIM 개선치가 5bp 이상일거란 낙관적 전망이 득세했던 점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NIM 개선 속도가 더딜 수도 있다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비대면 비즈니스의 우위도 점차 사라져가는 분위기다. 비대면 수혜주로 꼽혔던 게임ㆍ콘텐츠ㆍ플랫폼 주가는 횡보 경향이 강해졌다. 주요 시중은행들은 모바일에 힘을 주고 있다. 은행연합회를 통해 금융지주의 인터넷은행업 진출도 요구하고 나섰다.
이 정도 우려로는 카카오뱅크 상장 공모 흥행에 지장이 없을 수 있다. 지금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유동성의 힘은 막강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말 기준 광의통화(M2)는 3274조원으로, 월간 증가폭으로는 사상 최대치, 전년대비 증가폭으로는 12년만에 최대치다. IPO 시장도 유동성의 직접적인 수혜를 입고 있다. 올해 신규 상장한 33개 종목 중 현 주가가 공모가 아래로 떨어진 종목은 3곳에 불과하다.
물론 유동성은 공모 흥행엔 강력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지만, 중장기 주가는 펀더멘털(기업의 재무와 실적)을 따라간다는 점은 고려해야 할 요소다. 결국은 카카오뱅크가 상장 후 경쟁사 대비 차별성을 얼마나 유지하느냐, 지금의 '고신용자 신용대출 위주 영업'에서 영업 범위를 얼마나 넓힐 수 있느냐가 변수라는 뜻이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조 단위 거래 경험이 없는 대표주관사 KB증권이 어떻게 가치산정(밸류에이션) 및 투자자관계(IR) 전략을 짜낼지도 관전 포인트"라며 "만약 카카오뱅크가 2018년에 발표한대로 2020년에 상장을 진행했다면 지금같은 우려 없이 역대 최대 흥행기록을 세우며 상장에 성공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4월 21일 07:00 게재]
입력 2021.04.27 07:00|수정 2021.04.28 0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