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조선·해운·배터리 등 주제 총망라
기업들, 정부 지원보다 외부 요인에 순항
지원 실효성 의문…정부 청구서가 더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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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했다. 세계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하다며 반도체 1위를 지키고 글로벌 배터리 시장 주도권을 확보할 지원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차량용 반도체 국산화율을 높이고, 글로벌 물동량 증가를 조선·해운 도약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시끄러웠던 이슈들이 총망라됐다.
정부가 나서 산업을 적극 지원하겠다는데 시장의 기대는 그리 높지 않은 분위기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내놓은 정부 대책이라는 것이 뒷북, 중복이거나 생색내기인 경우가 허다하지만 이번 정부 들어서는 특히 많았기 때문이다. 최근 행보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 패권 경쟁을 천명했다. 우리 기업들은 미국과 대립하는 중국에 적잖은 투자를 했는데, 미국 정책 방향에 따라 난처해질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는 정책 공조가 안되고, 중국의 강짜엔 항의를 못한 지 오래다.
정부는 미국 이상의 반도체 세제 혜택을 주겠다지만 한 발 늦은 인상이 강하다. 미국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 때무터 리쇼어링(기업 해외 생산기지 국내 복귀) 정책, 아메리카 퍼스트 기조를 강하게 펴왔다. 내년까지 4800명의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기로 했는데 실현 가능성은 의문이다. 2019년 이후 양성했다는 인력은 1000여명이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문제는 작년 말부터 고개를 들었다. 정부 주도 협의체는 지난달에야 출범했다. 이달 들어 일부 반도체 품목의 국내 사업화 가능성을 따지고 있는데 수급 불안 해소에 도움이 되는 제품들은 아니다. 10여년 전부터 기업의 등을 떠밀어도 성과가 없던 차량용 반도체 육성이 갑자기 앞당겨질리 만무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특별사면 주장이 점점 힘을 받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차량용 배터리 갈등에서도 정부 존재감은 미미했다. 때마다 정부 여당이 나서 우려를 표하고 훈수를 뒀는데 별다른 영향은 없었다. 뒤늦게 정부의 노력도 있었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지만 합의의 실질 배경은 미국 정부의 서슬퍼런 시선이었다.
미국은 배터리 합의 후 대통령이 나서 공식 성명을 냈다. '미국 노동자와 자동차산업의 승리'라는 선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우리 배터리 기업들도 '미국 만세'를 외치는 분위기였다. ‘적극 환영하며 지원하겠다’는 4줄짜리 짤막한 입장을 낸 우리 정부와 대비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SNS를 통해 ‘참으로 다행’이란 차분한 평가를 내놨다.
정부는 해운업 띄우기 카드를 다시 꺼내들 것으로 보인다. 해운업 부활은 이번 정권의 거의 ‘유일한’ 치적으로 꼽힌다. 관련 부처에서 다음달 중순 대통령이 부산을 방문해 해운업 지원 논의를 진행하는 안을 준비 중이다. 대통령 내외는 작년 코로나 확산 속에도 HMM 선박 명명식에 참여했다.
HMM 반등엔 분명 정부의 공이 있지만, 최근의 호황은 팬데믹 이후 글로벌 물동량 증가 효과가 더 컸다. 정부의 안중에 없는 대한해운도 2000억원 가까운 증자를 진행할 정도다. 올해 볕이 드는 조선업 역시 대우조선해양 M&A 등 조정보다는 산업 사이클 반등의 영향이 컸다.
확대경제장관회의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한국조선해양, HMM 등 유력 기업들이 참석했다. 저마다 당면한 고민들이 있지만 당장 정부가 챙겨줄 것이 많지 않은 곳들이다. 오히려 이들 기업은 지금까지는 정부의 지원이 아닌 팬데믹 등 외부 요인으로 신바람을 냈었다.
사정이 이러니 정부가 알아서 잘 하고 있는 곳만 지원하려 한다거나, 이 정권에서 그나마 잘 된 기업만 부각시키려 한다는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가 유력 기업들을 초빙한 날 쌍용자동차는 다시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물론 정부가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럽다. 기업 입장에서도 얻는 것이 많지 않더라도 정부 부름에 응해 자리를 빛내주는 정도는 크게 부담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이번 정부의 시한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당은 서울과 부산 시장 재보선에서 참패했다. 당장 하반기부터는 대통령 선거 국면으로 돌입한다. 대통령은 한국의 재정 여력이 '아직' 충분하다 평가받는다고 했는데, 머지 않아 부족해질 것이란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한국의 고령화에 따른 부채 폭발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뒤늦게 경제 살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혼자 나서 선심을 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권 말기, 기업들에는 지원은 커녕 두툼한 청구서가 날아들 가능성이 크다. 금융사만 봐도 배당 축소와 뉴딜정책 지원 압박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14일 중간지주사 전환 계획을 밝혔다. 오랜 숙원을 해결했지만 이동통신사업(MNO) 부문의 고민은 깊어진 모습이다. 당장 유력 자회사들의 배당이 줄어든다. 그보다는 통신료를 둔 정치권의 공세가 현실화할 수 있어서다. 여당 후보는 서울 시장 재보선 유세 중 '즉석에서' 청년들에 5기가바이트의 데이터 바우처를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엄연한 민간 기업의 상품이 언제든 공공재로 돌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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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4월 1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