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결산 고려하면 사실상 공모 일정 비슷
그룹ㆍ업종 익스포저 고려하면 '제 살 깎아먹기'
투자업계 "황당...카카오 오만해 보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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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 일정이 한두 달 차이로 비슷하다면 결국 은행인 뱅크보다는 비은행 플랫폼인 페이에 집중하겠다는 곳도 많습니다. 왜 제 살 깎아먹기를 할까요." (한 증권사 트레이더)
"양쪽 모두 비중을 싣는다면 금융업ㆍ카카오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가 커지기 때문에 (기관 입장에서는) 투자비중 조절이 불가피합니다. 그간 대기업들이 계열사를 상장할 때 시차를 뒀던 이유죠. 카카오라는 이름만 달면 다 투자를 잘 받는다는 생각일까요? 솔직히 좀 오만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
카카오 계열 두 금융사의 기업공개(IPO) 일정이 올 하반기 겹치게 됐다. 대기업 계열사의 상장 공모가 비슷한 시기에 동시에 진행되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두 계열사가 비슷한 시기 공모 시장에 발을 들이며 경쟁 구도를 취하게 됐다는 점에서 카카오가 '불확실성'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카카오 계열 결제플랫폼업체 카카오페이는 26일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에 상장 예심심사를 청구했다. 지난 15일 계열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가 역시 유가증권시장본부에 상장 예심을 청구한지 열흘만이다. 두 기업 모두 상장심사간소화(패스트트랙) 요건은 충족하지 못한다. 카카오뱅크는 이르면 6월 말, 카카오페이는 7월 초 심사를 통과할 전망이다.
예심 통과 일정에 다소 차이는 있지만, 공모 일정은 사실상 출발선이 같을 거라는 전망이 많다. 상반기 결산이 끝나는 7월 말 이후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해서다. 해외(특히 미국)에서의 신주 모집시 결산자료의 유효기간을 뜻하는 '135일 룰(rule)'을 고려하면, 두 회사 모두 상반기 결산 자료를 바탕으로 증권신고서를 작성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예심 유효기간이다.
예심을 통과한 기업은 통과일로부터 6개월이 되기 전까지 상장 절차를 완료해야 한다. 예심 통과 예상 시점을 고려할 때, 카카오뱅크는 올해 12월 말, 카카오페이는 내년 1월 초까지 시한이다.
상반기 결산에 한 달, 공모 절차에 두 달 가량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넉넉한 일정이 아니다. 두 기업이 공모 일정을 조율한다 해도, 여유 기간은 3개월 안팎에 불과한 것이다. 일정이 겹치지 않게 두 달 정도를 최소한의 간격으로 둔다면, 차후 공모를 진행할 계열사는 공모 시점에 대한 전략적 의사결정이 사실상 어려워지는 구조다.
소식을 전해들은 투자업계의 반응은 대부분 '황당하다'는 평이다.
일반적으로 대기업 계열사 상장은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 간격을 둔다. 공모주 참여로 인해 투자자들의 특정 그룹ㆍ업종 비중이 일시적으로 높아질 수 있는데다, 신주 배정을 위해 최대 6개월의 보호예수(락업)를 걸어야 하는 걸 고려한 배려다. 같은 그룹내 계열사를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동시다발적으로 런칭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무엇보다 계열사들끼리 상장 시점을 6개월 이상의 시차를 두지 않으면 두 공모 사이에 '간섭 현상'이 불가피하다. 기관투자자 입장에서 둘 중 앞서 나오는 발행사에 3개월 이상 락업을 거는 건 상당히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 공모 참여를 위한 차익실현 물량이 일거에 쏟아져 나올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앞서 나오는 발행사가 '카카오 금융사'에 대한 투자 수요를 모두 쓸어가게 되면, 차후 진행되는 다른 '카카오 금융사' 공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역시 고려해야 한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어느정도 상장 시점에 대해 조율이 오갔던 상황이었다. 카카오페이가 속도를 내고, 유상증자에 성공한 카카오뱅크는 다소 속도를 늦추는 구조였다. (관련기사 : 2021년上 카카오페이ㆍ下 페이지ㆍ2022년上 뱅크...카카오 계열사 IPO 윤곽)
카카오페이지가 카카오M과 합병해 카카오엔터테인먼트로 출범하며 이 전략은 다소 수정된 모양새다. 카카오엔터는 올 하반기 카카오에서 분리되는 멜론컴퍼니 흡수합병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이 경우 2022년 이후로 상장 일정이 밀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카카오뱅크가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일정을 앞당겼고, 카카오페이도 투자 소요가 늘며 더는 자금 조달을 늦출 수 없는 환경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카카오가 공모주마다 대흥행하는 유동성 폭발 장세를 보며 공모 동시 진행에 대해 낙관했거나, 계열사 및 타 주주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며 "어떤 경우에도 비상식적인 의사 결정으로 불확실성만 키웠다는 비난을 면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카카오 관계자는 "카카오는 다른 대기업집단 같은 컨트롤타워가 없으며, 상장의 경우 각 계열사가 자체 판단을 통해 각자 최적의 시점에 진행하고 있다"며 "카카오 차원에서 계열사 공모 일정 등을 조율하거나 한 부분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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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4월 27일 11:45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