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먼저 발 빼고 수익 실현하냐의 싸움이 됐다"
시초가 베팅 수요 줄어들며 따상 기대감도 더 낮아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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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이제는 정말로 누가 먼저 발 빼고 수익 실현 하냐의 싸움이 된 거죠." (한 중소형 증권사 트레이더)
80조원 규모 역대 최대 청약증거금을 동원한 SK아이이테크놀로지(SK IET)의 상장 첫날 주가가 약세를 보였다. '따상'(공모가 대비 100%로 시초가가 정해진 후 상한가)에 실패하자마자 수익 실현을 위한 매물이 쏟아져나온 까닭이다.
공모주 시장이 '따상'을 노린 단기 차익 위주 시장으로 완전히 쏠리며 앞으로 진행될 기업공개(IPO) 역시 대부분 신규 상장 초기 극심한 변동성을 겪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SK IET는 11일 15만4500원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시초가는 공모가의 2배인 21만원으로 정해졌지만, 이후 급락하며 시초가 대비 마이너스(-) 26.4%로 장을 마쳤다. 두세 차례 기술적 반등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장중 내내 주가 그래프는 하락 일변도의 모양새를 그렸다.
SK IET 주가 급락의 배경은 의외로 간단하다는 것이 증권가의 지적이다. '따상상' 이상을 기대하던 공모 투자자들이 '따상'에조차 실패하자 미련없이 보유 지분을 내던졌다는 것이다.
오전 9시 장이 열린 직후 SK IET는 쉴 새 없는 주문에 변동성 완화장치(VI)가 수 차례 발동됐다. 그 와중에 잠시 '따상' 가격인 27만3000원에 매수가 걸렸고 일부 주문이 소화되는 모습도 보였지만, 시장가격엔 반영되지 않았다. 장 시작 직후 몰려든 주문에 한국거래소조차 주문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까닭이다.
첫 VI가 풀린 직후 SK IET의 시장가격은 22만원대였다. '따상'에 실패했음이 확인되자 매도세가 집중됐다. 균등배정을 통해 소수 지분을 배정받은 개인투자자 상당수는 미련없이 시장가 매도를 선택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두번째 VI가 지나가자 SK IET의 주가는 금새 17만원선까지 밀렸다.
한 운용사 운용역은 "모건스탠리 창구에서 40만여주 매도 주문이 쏟아져나오며 급락 후 반등조차 제대로 주지 못하고 주가가 밀렸다"며 "의무보호예수(락업) 없이 지분을 받아간 일부 외국인 투자자가 '단타'에 나서며 한번 꼬여버린 수급이 풀리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들어 '저점'이라고 판단한 일부 개인투자자 수요가 몰려들며 SK IET 주가는 잠시 16만원대 중반까지 오르기도 했다. 다만 오후 늦게 다시 쏟아져나온 외국인 매물이 주가를 끌어내렸다. 연기금이 260억원을 순매수하는 등 개인과 국내 기관들이 저점 매수에 나섰지만, 이 날 하루에만 3600억원이 쏟아진 외국인 매물을 모두 받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해 공모주 시장에 악영향을 미쳤던 빅히트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의 경우,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상장 첫 날엔 따상에 성공했다. 당시엔 첫날 외국인 매도세가 500억원대에 불과했다.
지난달 말 상장한 쿠콘에 이어 SK IET마저 상장 첫 날 주가가 시초가 대비 급락하며, 공모주 시장은 더욱 더 눈치 싸움이 치열해진 상황이다.
다른 운용사 공모주펀드 운용역은 "쿠콘에 이어 SK IET까지 상장 첫날 시초가 대비 20%대 급락세를 보이며 시초가 투자의 리스크가 커졌다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상한가를 기대하며 시초가에 매수를 거는 수요가 지난해 하반기보다는 크게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시초가 매수 잔량이 줄어들면, '따상'에 성공하긴 더욱 힘들어진다. 더 나아가 시초가가 공모가의 100%로 형성되는 일도 줄어들게 된다.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따상'에 대한 시장의 굳건한 공감대가 형성돼있었지만, 지금은 눈치를 보며 수가 틀릴 경우 언제든 던지고 나갈 예비 매도 수요가 훨씬 늘어난 것 같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SK IET 다음 차례로 오는 14일 신규 상장하는 에이치피오가 시장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모아진다. 기대치는 낮다. 에이치피오는 최근 1년새 공모주로써는 매우 드물게 100대 1 미만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했다. 프로바이오틱스가 주력 상품인 건강기능식품 회사임에도 불구, 일반 바이오회사 수준의 밸류에이션을 요구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많았다.
한 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자는 "균등배정제 도입 이후 시초가가 공모가보다 높기만 하면 물량을 던지는 개인투자자들이 크게 늘어났다"며 "공모주 시장이 '단타대회'화(化) 하면서 신규 상장사의 초반 주가 변동성만 매우 커진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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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5월 11일 17:4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