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문제에 대해 국민적 여론 등에 업어
승계 문제 국민적 동의 없이는 힘들다고 판단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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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승계 열쇠는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남긴 미술품이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재판, 삼성생명법등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승계를 위해선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상속과정에서 삼성이 그리는 승계의 모습이 나왔다는 평가다. 삼성 승계의 조력자로 나선 김앤장의 역할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타계하면서 ‘취미왕’이라 불리는 그가 남기고 간 유산에 대해서 세간의 이목이 컸다. 경제적으로 따지면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어떻게 나누냐가 가장 큰 화두겠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그가 남기곤 미술품, 자동차, 와인 등 세기의 ‘보물’에 쏟아졌다.
이건희 컬렉션은 삼성 일가가 이 회장의 상속재산 신고에 나서며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특히 국보, 보물 및 피카소등 세계 거장의 작품 상속세만도 2조원대가 거론되던터라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관심사였다.
국내 상속세법에 따르면 이들 미술품은 그 가격의 절반정도를 현금으로 내야 한다. 즉 이들의 상속세만도 조단위에 이른다. 국보급 미술품 해외 반출을 막기 위해서 물납제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통상 재벌 오너의 상속 문제에서 지분보단 미술품이 오히려 골칫거리란 말도 나온다. 기업을 이어받기 위해선 지분에 대한 상속세는 당연한거지만, 선대 회장이 남긴 미술품은 그들의 취미생활이었다는 점에서 가족들로선 그 가치의 절반을 현금으로 내고 상속 받는 일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은 달랐다. 다른 재벌가에겐 미술품은 골칫 거리였겠지만 삼성에겐 승계를 풀 열쇠로 활용됐다.
이건희 컬렉션 해외 반출은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에 삼성가는 ‘통 큰 기부’로 화답했다. 삼성그룹의 승계 문제를 비판하던 정치권에서도 환영의 목소리가 나왔으며, 문재인 대통령도 나서서 이건희 컬렉션을 기증할 전시관을 만들라고 지시에 나서기도 했다. 각 지방자치 단체는 해당 미술품을 모셔오기 위해 혈안이 됐다.
사실 상속재원 마련만 생각한다면 미술품을 매각하는게 쉬운 결정이었다. 상속을 위해 은행과 증권사에 수조원씩 대출을 나서야 하는 상황에서 미술품을 팔았다면 못해도 수천억원에서 조단위의 현금을 확보가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단 큰 그림의 ‘대의’를 따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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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기증을 함으로써 미술품 가치에 대한 논란을 잠재웠다. 이건희 컬렉션은 화랑협회의 미술품 감정위원회, 한국미술사감정협회, 한국미술품감정센터에서 평가를 담당했다. 미술품은 평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로 벌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희 컬렉션 가치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 수 있었다. 하지만 삼성가는 기증이란 방식을 통해서 이런 문제를 피해갔다. 기증은 상속세를 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 감정평가법인 관계자는 “미술품도 토지나 건물처럼 감정평가사를 통해 감정평가를 의뢰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라며 “상속세를 내야 했더라면 미술품의 진위여부 및 가격에 대한 논란이 커질 수 있었을테지만 기증을 함으로써 이런 문제는 수면 아래로 들어가게 됐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국민 여론을 확실하게 삼성가로 돌렸다.
상속과정에서 지분을 나눠 가진 것 만으론 승계의 분명한 그림이 보이진 않는다.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삼남매가 법정 상속분만큼 삼성전자 지분을 똑같이 나눠가지고,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생명 주식을 더 확보하는 방향으로 지분구조가 그려졌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8.5%를 보유한 중요한 계열사이긴 하나, 해당 지분을 팔도록 하는 ‘섬성생명법’이 국회에 계류되어 있어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지배력이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술품 기증에 나선 것은 국민여론이 지분구조나 상속재원 마련보다 중요한 이슈라고 판단한 것이란 분석이다. 삼성가가 삼성그룹의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단순히 지분을 더 확보하거나, 상속세를 문제없이 납부하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란 설명이다. 이번 미술품 기증은 삼성가가 국민에게 보내는‘러브콜’이란 설명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미술품 기증은 삼성가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긍정적으로 돌아서는데 큰 역할을 했다”라며 “승계 문제에 대해 우회적인 수단보다는 국민들에게 삼성가를 신뢰해 달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상속신고는 김앤장이 맡았다. 국내 로펌을 비롯한 회계법인들 대다수가 이번 상속신고를 맡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에 나섰다. 상속신고란 것이 단순히 상속재산을 국세청에 보고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속신고를 맡는 다는 것은 ‘인간 이건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삼성가가 김앤장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만큼 신뢰한다는 의미란 뜻으로 풀이됐다. 주목받는 것은 김앤장의 창업자인 김영무 박사의 역할이다. 김영무 박사는 이건희 회장 못지 않은 컬렉션을 갖고 있는 미술품 애호가로 알려져있다. 김앤장이 이건희 회장 상속신고를 맡으면서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가장 방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항간에는 미술 애호가인 김영무 박사 입장에선 이재용 부회장 재판보다 이번 상속신고가 더욱 값진 결과란 평가다. 상속과정에서 여러 의견들을 양측이 주고 받으면서 승계의 큰 그림을 그려나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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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5월 10일 1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