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넘치는 글로벌 PE, 한국선 '바이아웃' 고집 어려워
기업과 PE 이해관계 부합…”유사 사례 이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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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대형 사모펀드(PEF)들의 소수지분 투자가 과거보다 늘어나는 추세다. 대형 경영권 인수(바이아웃) 기회가 드물어진 사이, 주요 기업들은 '트렌드'와 '브랜드'가 가미된 신규 사업을 활용해 시장의 자금을 끌어오려는 욕구가 커졌다.
시장에선 사상 초유의 유동성 과다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소수지분 투자는 PEF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던 이른바 글로벌 대형 운용사들도 소수지분 투자에 발벗고 나섰다. 신사업을 키우려는 기업과 막대한 유동성을 업은 운용사들의 이해관계가 맞는 만큼 이런 추세는 한동안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KKR은 국내 대기업들에 대한 2대 주주 지분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올해 초 현대글로벌서비스 지분 38%를 인수했다. 안정적인 전속시장(캡티브)이 있고, 다른 조선사 물량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 터라 기업가치를 후하게 쳐줬다.
KKR은 앞서 수처리 업체 TSK코퍼레이션 2대주주에도 올랐다. 전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가 강조되며 환경 기업의 가치가 높아진 점에 주목했다. 최근까지 폐기물 업체 이도 지분 인수를 검토했고, 작년엔 에코그린홀딩스(ESG·ESG청원)를 인수하기도 했다.
카카오는 글로벌 PE의 각축장이 됐다. 칼라일은 올해 카카오모빌리티에 2억달러를 투자했다. 앵커PE는 작년 카카오M(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자로 나섰다. 이들 기업은 미국 증시 상장 가능성도 거론되는 등 투자 회수가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상장을 앞둔 카카오뱅크는 작년 TPG와 앵커PE의 투자를 유치했다.
신산업 역시 글로벌 PE들이 자주 찾는 영역이다. KKR, TPG 등은 네이버웹툰 투자 의향을 밝혔었고, 앵커PE는 일본 웹툰 강자 카카오재팬에 투자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IT 기업 더존비즈온은 베인캐피탈을 2대주주로 초빙했다. 글로벌 PE들은 작년 CJ올리브영 상장전투자에도 대거 뛰어들었다. 이 외에도 다양한 기업과 글로벌 PE가 물밑 협상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PE 전담 자문사들은 이해상충으로 고객을 놓칠까 다른 일감을 고사할 정도다.
글로벌 PE의 소수지분 투자가 늘어난 배경으론 막대한 유동성이 첫 손에 꼽힌다. 코로나 대응으로 시장에 돈이 많이 풀렸고, 올해부터는 경기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향후 5년간 글로벌 PE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이 15%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KKR은 2017년 93억달러 규모 아시아 3호펀드를 결성했는데, 올해 초 그보다 1.5배 규모를 키운 4호펀드(150억달러)를 만들었다. 인프라(39억달러), 부동산(17억달러)까지 감안하면 올해 KKR이 아시아에 쏟기 위해 마련한 돈만 20조원을 훌쩍 넘는다. 칼라일, 어피너티, 베어링PEA, TPG 등 운용사들도 빈티지마다 펀드 규모를 갱신하고 있다. 이들은 2018년 이후 5조~7조원 규모 아시아 펀드를 결성했다.
한국에서 바이아웃 전략만 고수해선 자금 소진이 더딜 수밖에 없다. 사양 산업은 부담스럽고 잡코리아, 이베이코리아, 요기요 등 성장산업 경영권 거래는 드물다. 최근 이뤄지는 경영권 거래 상당수는 에너지, 인프라 분야의 PEF 세컨더리 형태다. 소수지분 투자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내 운용사들도 비슷하다. 바이아웃 펀드 외에 다양한 투자 모델을 강구하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2018년 스페셜시추에이션(SS) 1호 펀드를 결성했다. 스틱인베스트먼트는 2016년 1호 SS펀드를 결성했고, 2019년엔 2호 펀드 규모를 조단위로 키웠다. IMM PE의 자회사 IMM크레딧솔루션은 최근 SK루브리컨츠 소수지분 투자자로 낙점됐다. VIG파트너스도 올 하반기부터 VIG크레딧을 본격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한 외국 로펌 변호사는 “글로벌 운용사들은 바이아웃을 원하지만 지금 한국에선 펀드 사이즈에 걸맞는 거래를 찾기 쉽지 않다”며 “쌓여 있는 드라이파우더가 많다 보니 대기업에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하려는 수요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한국 자본시장의 환경과 기업의 인식도 글로벌 PE가 소수지분 투자를 하기에 우호적으로 바뀌었다는 평가다. 과거 대기업들은 오너 일가 경영권 수성, 경쟁당국의 규제 회피 등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FI를 유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엔 주요 대기업들은 대부분 승계작업을 마무리하고, 다음 성장 모델에 골몰하고 있다.
시장에 온기가 돌 때 플랫폼이나 IT, 바이오 등 성장성 있는 주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해졌다. 급히 자금을 조달하려면 글로벌 PE와 손잡는 것이 유리하다. 글로벌 PE 역시 당장의 높은 투자가치 부담보다 앞으로 돌아올 수익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
글로벌 PE가 투자한 기업은 그 자체로 ‘유망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해외 마케팅도 수월해진다. 투자 시 산정한 기업가치는 시장에 ‘상장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효과도 있다. 글로벌 PE는 오랜 투자 업력을 갖고 있어 기업의 신사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최근 사례는 물론 과거 ADT캡스, LG CNS 지분 투자 때도 해외 포트폴리오와의 시너지가 강조되기도 했다.
한 M&A 자문사 관계자는 “작년 이후 대형 PE의 투자 전략과 대기업의 인식이 유연해졌고, 양쪽 모두에 실질적인 이익이 된다는 점도 입증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소수지분 투자 사례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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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5월 1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