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 이후 투자 배제 기준 규정과 감시 체계 성립 등 '핵심'
향후 K-ESG 활성화 위해서는 "정부의 일관적 역할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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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탈석탄 투자’를 공식 선언하면서 시장에선 국내에서도 ESG 투자가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향후 투자 배제 기업 및 사업을 판단하는 조건 규정과 방식 등 앞으로 남은 과제가 더욱 중요해졌다. 나아가 국민연금의 선언을 계기로, 국내 기업과 시장의 상황에 맞는 ESG 시장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일관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관측이다.
지난 5월28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2021년도 제 6차 회의를 열고 석탄·채굴 발전사업에 대한 투자제한전략(네거티브 스크리닝)을 도입할 것을 심의·의결했다. 네거티브 스크리닝은 ESG 관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산업군을 투자 가능 종목군 및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제한하는 투자정책이다.
국민연금은 향후 국내·외 석탄발전소 신규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 투자를 하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투자제한전략 적용을 위한 준비단계로 단계별 실행방안을 수립하고, 하반기부터 연구용역 수행 등 실행방안을 제도화시킬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탈석탄 선언이 현재 국민연금에서 주식과 회사채를 통해 투자한 일부 기업에 국한되는 변화가 아닌,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기후금융’으로 패러다임이 변하는 과정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탈석탄 투자는 전 세계적인 흐름으로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란 이유다.
노르웨이 최대 연기금 운용사 스토어브랜드의 CEO인 얀 에릭 사우게스타드(Jan Erik Saugestad)는 인베스트조선과의 서면 질의를 통해 “한국의 국민연금은 글로벌 최대 규모 연기금이자 글로벌 투자자 중 하나로, 삼성 등 한국 기업들이 하고 있듯 석탄 투자를 빠르게 줄여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석탄 투자는 너무 위험해졌으며,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가로막고 있어 글로벌 투자자들은 그들의 익스포져(exposure)를 줄여나가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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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공식 선언 이후 남은 과제를 어떻게 풀어갈 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평이다. 투자 배제 산업군 규정과 방식, 보고와 감시 체계까지 수립 해 나가야 할 방안들이 많다. 앞서 탈석탄 투자를 발표하고 시행하고 있는 해외 연기금들은 단계별(연도별) 계획 뿐만 아니라 배제 기업들에 대해서도 꼼꼼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앞서 국민연금의 탈석탄 선언 전부터 투자 제한 범위에 어떤 기업들이 해당 될 것이냐에 대해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이미 국민연금이 석탄발전에 투자해 온 막대한 자금을 회수할 단계적 로드맵 마련도 필수다. 국민연금이 지난 10년간 직·간접적으로 석탄 산업에 투자한 규모는 약 10조원으로, 국내 연기금과 금융기관 가운데 가장 크다.
시장에서는 ‘큰 손’인 국민연금의 탈석탄 선언을 시작으로, 이제부터 국내 ESG 시장에서 정부의 역할 정립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부터 전례없는 ‘ESG 붐’ 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여전히 실제 가이드라인 등 관련 논의는 초기 단계로 개선해 나가야 할 여지가 많은 상황이다.
예로 친환경 사업 구분 기준에서 주요 지표인 ‘택소노미(Taxonomy;녹색금융 분류체계)’를 정립하는 데 있어서도 계속해서 시장과 소통해 ‘현실과 동떨어진’ 지표가 되지 않게 해야한다는 평이다. 현재 금융위원회와 환경부, 산업부 등 정부는 다음달 한국형 ‘K-택소노미’를 마련하고 하반기 중 금융권에 시범 적용한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마련 중인 K-택소노미도 아직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이 많다”며 “지금 만들고 있는 택소노미에 의하면 철강 등 기존 탄소 배출량이 많은 제조기업들은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ESG 투자의 취지 자체가 기존 배출량 많은 기업들을 없앤다기 보다는 개선하자는 것이 목표다보니 점차적으로 기업들이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조정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바꿔가는 건 무리니까, 정부에서도 기업들에게 단계별 개선 목표 등을 제시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기적으로 국내에서 성숙한 ESG시장 정착을 위해 정부의 일관적인 지원 및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채권업계 관계자는 “작년만 해도 환경부에서 강력하게 녹색 금융을 추진해야 한다고 하다가 시장이 빠르게 크니까 환경부의 지원이 추가적으로 필요 없는 것 아니냐는 등 스탠스가 갑자기 달라졌다”며 “담당 부서의 담당자가 바뀌면서 입장이 바뀐 셈인데, 지금 국내 ESG 금융이 자리를 잡아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정부 지원이 있어야 활성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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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5월 31일 18:02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