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침 심했던 KB증권은 두 배 들이고도 회수율 미진
미래에셋, 대우證 비싸게 인수했지만 '압도적 1위' 확보
중소형 증권사 매물 안 나가는 이유 '이미 체급 싸움'
-
2년 늦은 의사결정이 회수율 2배 차이로 돌아왔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가 처음 만들어진 2013년 전후로 열린 증권사 인수합병(M&A) '큰 장' 이후 8년이 흐른 지금, 가장 먼저 움직인 NH농협금융지주가 가장 좋은 성과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증권사 대형화 유도'는 최근 10년간 금융당국이 펼친 정책 중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한 정책으로 손꼽힌다. 기업 신용공여 허용ㆍ레버리지비율 완화 등이 실제 대형사-중소형사간 수익성의 격차를 만들어냈다. '우리투자증권'이 사실상 마지막 '염가매물'이었던 셈이다. 인수후통합(PMI) 역량 역시 유의미한 성과의 차이를 냈다는 분석이다.
15일 인베스트조선의 집계에 따르면 2013~2015년 사이 대규모 증권사 M&A를 단행한 금융그룹들의 현 시점 성과는 서로 엇갈렸다. 지난해 주식 투자 열풍이 불며 증권업계가 전체적으로 각광받았지만, 그럼에도 각 사별로 수혜를 입은 크기는 각자 달랐다. 증권사를 보유한 지주사의 '투자 금액 대비 회수율' 역시 차이를 보였다.
-
농협금융은 우리투자증권을 2013년 인수했다. 이후 NH투자증권과 합병했다. 인수 시점에 4조3300억원(단순 합산 기준)이었던 NH투자증권의 자기자본은 지난 1분기 말 기준 5조8700억원까지 성장했다. 당기순이익 역시 2014년 812억원에서 지난해 5768억원으로 매년 한 해도 빠짐 없이 성장세를 보였다.
2014년 이후 NH투자증권이 주주에게 돌려준 배당금 총액은 9342억원에 달한다. 농협금융의 지분율을 감안하면 배당 수익은 4580억여원으로 산출된다. 농협금융은 우리투자증권 지분을 2014년 7월 9467억원에 인수했다. 6년만에 절반에 가까운 투자금을 배당으로 회수한 셈이다.
우리투자증권 다음으로 시장에 나왔던 빅딜(big deal)은 현대증권이었다. KB금융지주는 2016년 5월 지분 22.6%를 1조2370억원에 인수한 후, 자사주 매입과 주식교환을 거쳐 완전 자회사로 만들었다.
KB증권의 실적은 다소 부침이 있었다. 합병 첫 해인 2016년엔 각종 비용이 반영되며 적자가 났다. 트레이딩 손실 등으로 2018년에는 전년비 역성장하기도 했다. 인수 전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의 순이익 규모(단순 합산 기준)을 넘어서는 데 4년이나 걸렸다. 순익 규모가 흔들리다보니 배당도 들쑥날쑥했다. 2016년 이후 총 배당액은 3991억원이다.
KB금융이 현대증권 인수합병에 투입한 총 비용은 2조4700억여원이다. 현대증권 자회사 현대저축은행을 2038억원에 매각한 것을 감안하면, KB금융이 배당 포함 현재까지 총 회수한 금액은 6000억원 수준이다. 회수율로 따지면 26% 정도다.
NH금융과 KB금융의 인수 시점 밸류에이션(가치척도)는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농협금융은 주가순자산비율(PBR) 기준 0.79배에 우리투자증권 지분을 샀다. KB금융은 최초 지분만 PBR 1.6배에 샀을 뿐, 이후 완전 자회사화 과정에서 염가 매수를 통해 최종 인수가 기준 PBR을 0.76배까지 끌어내렸다.
회수율의 차이는 우선 수익성의 차이에서 왔다. KB증권의 최근 4년 총 순이익은 1조1488억원, NH투자증권은 1조7641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총 배당액은 KB증권 3991억원, NH투자증권 6442억원으로 50% 이상 차이가 났다.
IB 부문에서 이전부터 두각을 나타내던 우리투자증권이 농협금융에 인수된 이후 자본까지 늘어나며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대체투자 등 '돈 되는 사업'을 선점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NH투자증권의 지난해 그룹 내 순이익 비중은 지배주주 순이익 기준 28%였다. KB증권은 12%였다. 은행 및 그룹 내 비은행 부문의 차이가 현격하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농협금융 내 증권의 위상을 보여주는 수치라는 평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농협금융은 생명보험ㆍ손해보험ㆍ캐피탈ㆍ운용의 순이익을 다 합쳐도 이들의 기여도가 은행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며 "비은행 부문 확장이 '시대정신'이 된 상황에서 증권을 인수하지 않았다면 농협금융은 상당기간 답답한 상황에 처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KB증권은 합병 이후 자본은 늘었지만, 채권발행시장 외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며 지지부진했다. 출신이 다른 두 대표이사가 서로 날을 세우며 PMI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기도 했다. KB증권의 직원 1인당 순이익 규모는 여전히 비슷한 자기자본 규모의 대형 증권사들보다 낮다.
KB금융이 현대증권을 인수한 것과 비슷한 시기 대우증권을 품에 안은 미래에셋증권은 다소 다른 모양새를 보였다. 당시 자기자본 1위였던 대우증권을 인수한 덕분에 미래에셋증권은 자본 규모에서 '초격차'를 낼 수 있었다.
당시 미래에셋증권은 대우증권 지분 43%를 2조3200억여원에 인수했다. PBR 기준 1.3배로 다소 비싼 가격이었다. 다만 최대주주인 미래에셋캐피탈이 댄 자금은 3300억여원에 불과했다. 미래에셋증권이 진행한 9560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에 미래에셋증권 내부자금 6300억원과 인수금융 8000억원으로 자금을 댔다.
합병 이후 미래에셋증권의 총 배당액은 6000억여원이 조금 넘는다. 미래에셋캐피탈의 평균 지분율을 감안하면 대략 1200억여원을 회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래에셋증권의 보수적인 배당성향으로 인해 회수율이 드라마틱하게 높진 않다.
다만 미래에셋증권은 '1위 증권사'라는 상징자본을 손에 넣었다. 연내 국내 최초 자기자본 10조원 돌파도 확실시되고 있다. 대우증권 인수 이전인 2015년 미래에셋증권의 위상을 생각하면 '어찌됐든 남는 장사'라는 평이 많다.
2013년 종합금융투자사업자(대형 IB) 도입, 2016년 초대형 IB 도입 이후 증권업계는 '체급 싸움'으로 완전히 판도가 바뀌었다는 지적이다. 2018년 이후 중소형 증권사들이 우후죽순 매물로 나왔지만 성사가 되고 있지 않은 건 바뀌어 자기자본 몇천 억원 늘어난 것으로는 답이 없어서라는 분석이 많다.
증권사 대형화라는 큰 추세를 얼마나 빨리, 성실하게 따라갔느냐에 따라 투입 자본의 규모와 회수율이 달라진 셈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뒤늦게 체급 경쟁에 뛰어든 하나금융이 3년새 2조2000억원을 증자로 들이부었지만, 하나금융투자는 여전히 '대형 IB 후발주자 중 한 곳'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삼성증권 매물설이 주기적으로 회자되는 건 현 시점에서 '게임 체인저'로 작동할만한 잠재 매물이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6월 18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