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난' IT 기업...연초 잇따라 연봉 인상도
"줄사표 이어질까 공모가 높였다는 사내 소문"
장 의장은 사모펀드로 우회 구주매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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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톤의 지나치게 높은 공모희망가 밴드를 두고 'SK바이오팜'의 트라우마가 작용한 게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SK바이오팜은 상장 이후 주가가 급등하자 우리사주 수익실현을 위해 수십명이 줄사표를 냈다. 이런 상황을 인위적인 '공모가 상향 조정'을 통해 피하려 했을 것이란 유추다.
정작 장병규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은 이번 공모를 통해 2500억원 안팎의 수익을 현금화할 것으로 추정된다. 흥행에 실패한 온라인 게임 '엘리온'을 개발한 크래프톤 자회사 대표도 백억원대 수익을 실현할 예정이다.
22일 증권가에 따르면 크래프톤은 이번 기업공개(IPO) 공모에서 '상장 후 주가 상승' 보다는 '공모가 극대화'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 주관사단에도 이 같은 방침을 통보했고, 이런 방침이 증권신고서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구주 매출에 나선 구주주의 수익을 극대화하고, 신주 발행을 통한 자금 확보에 집중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자연스레 이번 공모에 참여할 우리사주조합 및 기관ㆍ일반 공모 투자자들의 수익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대 30%의 할인율을 적용했다곤 하지만, 시장에서 비합리적이라고 평가하는 산정식을 통해 할인 전 기업가치를 35조원으로 부풀린 상황에서 할인율은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엔씨소프트와 넥슨의 시가총액을 합친 값이 40조원이다.
당장 크래프톤 사내에서 볼멘 소리가 나온다. 우리사주를 통한 수익 창출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공모희망가 밴드 공개 이후 여론이 급속히 악화하며, 우리사주 청약 참여 여부부터 고민하는 목소리가 많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리사주가 대박이 나면 SK바이오팜처럼 줄사표가 이어질 것을 우려해 공모가를 일부러 높였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회사에서 우리사주 청약을 사실상 강제하지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판교를 비롯한 IT 밀집 지역에서는 지금도 '구인난'이 이어지고 있다. 크래프톤 역시 올해 2월 개발자 직군의 연봉을 일괄 2000만원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전직원 연봉 일괄 800만원 인상을 제시한 넷마블ㆍ넥슨 등 경쟁사보다 파격적인 액수였다.
이렇게 인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상황인만큼, 수억원의 우리사주 차익을 낸 인력들이 회사를 잇따라 빠져나갈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려 하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크래프톤 및 주관사단은 "미래 성장 가치를 감안해 적정 공모가를 산정, 제시했다"는 입장이다. 다만 공모희망가 밴드가 시장 예상을 크게 뛰어넘은만큼, 우리사주 및 인력과 관련된 게 아니겠느냐는 잡음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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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상장으로 장병규 의장이 거두게 될 차익 역시 시장의 관심이다.
일단 표면적으로 장 의장은 구주매출 등 수익 실현 구조에서 한 발짝 떨어져있다. 다만 이는 '포장'의 문제라는 평가다. IMM인베스트먼트가 2018년 결성한 유한회사 '벨리즈원'이 이번 공모에서 보유 지분 전량(6.4%)를 구주매출하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이 장 의장의 지분인 까닭이다.
벨리즈원은 크래프톤 주식 277만여주를 보유한 주요 주주다. 2018년 주주 명단에 이름을 올린 지 3년만에 보유 지분 전량을 처분할 계획이다. 공모희망가 밴드 최상단 기준 매각 규모는 1조5424억원에 이른다.
벨리즈원의 주주 구성은 알려져있지 않다. 다만 결성 시점의 지분 움직임으로 추론이 가능하다. 벨리즈원에는 IMM인베스트먼트와 JKL파트너스가 무한책임사원(GP)으로 참여했고, 국내 주요 기관 및 연기금이 출자자로 참여했다. 장 의장과 크래프톤 일부 임원도 현물 출자를 통해 주주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장 의장은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크래프톤 보통주 9만여주를 매각했다. 시점과 정황상 벨리즈원 출자분으로 추정된다. 액면분할 후 기준 총 45만여주로, 공모가 상단 기준 2532억원 규모다. 벨리즈원은 보유 지분 전량을 공모 과정에서 매각할 방침인만큼, 장 의장에게 배당의 형식으로 적어도 2500억여원의 수익이 돌아갈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밖에 구주매출엔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 김형준 크래프톤 개발총괄 프로듀서(PD), 조두인 블루홀스튜디오 대표가 참여한다. 블루홀스튜디오는 지난해 론칭한 온라인 게임 '엘리온'의 개발사다. 엘리온의 흥행 실적이 저조함에도 불구, 오랜 기간 크래프톤에서 고생해 온 핵심 인력에서 백억 단위의 수익을 보장해준 셈이다.
한 자산운용사 공모주펀드 운용역은 "오죽하면 SK바이오팜 트라우마 때문에 공모가가 이렇게 나왔냐는 말이 돌 정도인가 싶다"며 "증권가에도 크래프톤의 공모가는 투자자와 우리사주조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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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6월 2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