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공모가에 투자자를 우습게 안다는 지적까지
정작 크래프톤은 자신감...해외 투자자 반응에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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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 ‘공모 사절’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던 크래프톤의 공모가 자신감은 해외투자자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의 정정요구로 일정이 미뤄지긴 했지만, 원래 이번 주부터 진행할 예정이었던 수요예측을 앞두고 크래프톤이 자신감을 보인 까닭이 해외에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주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투자 유치와 관한 ‘러브콜’이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크래프톤이 최근 금감원으로부터 정정 요구를 받은 건 결국 공모가 고평가 논란 때문이라는 게 증권가의 일반적인 시선이다. 공모가가 공개된 후 일반 투자자들 사이에서 “발행사 임원들과 주관사 돈 벌게 해주고 싶은 사람만 청약하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해당 논란은 크게 두 가지 근거로 요약된다. 주가수익비율(PER)의 기준점이 되는 순이익 추산 방식과 비교회사 구성에 의문점을 표시한다. 크래프톤은 PER의 기준 실적으로 1분기 순이익에 4배를 단순 곱한 값으로 추산했다. 즉, 1분기 순이익인 약 1940억원의 4배인 7761억원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는 국내 시장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다. 한국거래소에서는 미래 추정치보다는 과거 실적을 기반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거래소 등 금융 당국의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촘촘한 근거를 제시해야 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두 번째로는 월트디즈니와 워너뮤직그룹 등 게임과 동떨어진 업종의 회사를 동종회사로 포함했다는 점이다. 업종이 상이한 데다 마침 월트디즈니의 PER 배수도 88.8배로 높아 공모가를 부풀리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숱한 논란에도 불구, 기관투자자들의 청약 의지는 상당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해외의 잠재 투자자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다.
국내에서 논란이 됐던 ‘연환산 순이익 추정치’ 역시 해외에선 크게 논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는 후문이다. 미국 나스닥 등 해외에서는 상장 시 기업가치 산정 과정에서 과거 실적보다는 미래 추정치에 더욱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크래프톤이 하반기 내놓을 신작인 ‘뉴스테이트’ 예상 실적을 감안해 해당 방식으로 추정치를 산정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 등 해외 IB(투자은행)들을 설득하기가 좀 더 용이할 것이란 분석이다.
또한 월트디즈니, 워너뮤직그룹 등 지적재산권(IP)기반의 플랫폼 생태계를 기준으로 비교회사를 짰다는 점 역시 해외 투자자가 솔깃해할 부분으로 전해진다. 해외 인지도가 미미한 넷마블이나 엔씨소프트 등으로만 비교 회사군을 구성하기보다 업종이 다르더라도 해외 기업을 동종회사로 꼽은 배경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해외 증권사들이 진행하는 ‘프리 딜 인베스터 에듀케이션(PDIE)’에서 투자 의사를 밝히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크래프톤 공동 주관사인 크레디트스위스나 JP모간 소속 애널리스트들이 진행하는 일종의 기업 설명회로 대형 글로벌 IB들을 상대로 한다.
발행사에 직접 투자 의사를 밝히는 ‘리버스 인쿼리(Reverse Inquiry)’ 문의도 잇따랐다. 리버스 인쿼리는 원래 채권 발행시장에서 투자사가 발행사에 투자 의사를 표시하며 특정 채권의 발행 여부를 묻는 용어다. 기업공개 시장에서는 수요 예측 전에 미리 투자 의사를 밝히는 용도로 쓰인다.
쿠팡이나 SK IET 등 굵직한 상장 건들의 경우 잠재적 투자자가 최고재무책임자(CFO)에 메일을 보내거나 투자 의사를 담은 프레젠테이션(PT)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크래프톤 역시 쿠팡 사례와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해외 운용사들을 위주로 투자 의사를 밝히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크래프톤은 크레디트스위스, JP모간, 씨티그룹글로벌마켓 등 해외 주관사를 무려 세 곳이나 공동 주관사로 두고 있다. 그만큼 해외 인수물량이 많다. 총 553만3127주로, 전체 공모 물량(1006만230주)의 55%다. 지난 SK IET의 외국계 증권사 배정물량인 44%보다 높은 수치다. 전체 공모물량 자체가 국내 역대급인 최대 5조6000억원에 이르는 만큼 해외 투자자 유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기관은 보호예수(락업)를 걸지 않으면 공모주를 받기 힘든 구조다. 반면 해외 기관은 '투자 준칙' 등을 이유로 대부분 락업을 걸지 않는다. 대형 공모주 상장 첫 날 해외 창구에서 매도세가 쏟아져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상장 당일 시장 상황에 따라 지분 보유 여부를 정할 수 있는 곳과 적어도 2주 이상 지분을 보유해야 하는 곳의 입장이 같을 수는 없다는 평가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보통 해외 IB들은 주관사단의 밸류에이션(Valuation)보다 자체적으로 예상 수치를 분석해 이를 주관사단의 결과물과 비교한다”라며 “(외인들 특성상) 빨리 팔고 나갈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분석한 수치와 괴리감이 컸다면 투자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발행사와 주관사의 자신감에도 불구, 금감원의 날선 시선은 현재 공모가를 고수하는 데 어려움을 줄 거란 평가다. 크래프톤은 지난 25일 금감원으로부터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를 받았다. 주관사측은 "공모가 정정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일각에선 공모가 관련해서도 금감원의 눈치를 봐야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나온다. 앞서 진단키트 회사 SD바이오센서 역시 증권신고서 정정을 통해 공모규모를 절반 가량 줄인 바 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 당국에서 공모가 산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라면서도 "금감원에서 어떻게든 공모 과정을 관리하려는 움직임이 커지면서 주관사들도 당국의 분위기를 모른 척 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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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6월 2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