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가 '뻥튀기' 시도라면 냉정한 시장 평가로 돌아올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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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요? 뻔한 겁니다. 게임사 주가수익비율(PER)이 얼마나 나오겠어요. 플랫폼 기업으로 가야 밸류 ‘뻥튀기’가 가능한 것이죠.” (한 증권사 관계자)
크래프톤 증권신고서가 공개된 직후 비교 회사로 월트디즈니와 워너뮤직그룹이 이름을 올린 것을 두고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게임사인 크래프톤과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운 디즈니가 동종업으로 묶인 것이 의아하다는 질문 뒤 나온 대답이다.
기업공개 시장에서 ‘플랫폼’ 열풍이 지속되고 있다. 본디 카카오와 네이버 등 웹 또는 모바일 기반으로 다수의 이용자들이 모이는 공간을 지칭했지만 점차 그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7월 상장을 앞둔 크래프톤은 게임회사보다 지적재산권(IP) 기반의 플랫폼 회사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잡았다.
상장 예심을 통과한 카카오뱅크 역시 이용자 기반의 기업가치 산정 방식을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작년 하이브로 사명을 바꾼 빅히트 역시 엔터테인먼트 회사보다는 카카오나 네이버 등 IT플랫폼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자 애를 썼다. 신고서에는 빠졌지만, 동종 회사 후보군으로 헬로키티까지 등장했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일반 투자자 포함 대중들의 심정적 동의를 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아예 업종 자체가 다른데 아무리 ‘플랫폼’이라는 탈을 씌운다고 단번에 비교회사로 묶일 수는 없는 탓이다.
더 큰 문제는 모호하고 광범위한 플랫폼이라는 단어 특성상 본래 의미와는 상관없는 회사들도 너도 나도 플랫폼의 ‘탈’을 쓰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 심지어 은행업 등을 본업으로 둔 회사들이 저마다 플랫폼 사업을 미래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미래 사업전략이야 회사가 짜기 나름이지만 유독 상장을 앞두고 플랫폼 전략을 강조하는 것은 ‘공모가 높이기’ 차원이라는 지적을 피하긴 어렵다.
발행사들이 몸값에 욕심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창업자 입장에서는 그동안 애지중지 키워놓은 회사가 ‘이 정도 가격’은 받아야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다만 공모가 산정 과정에 공정성이 부여되기 위해서는 확실한 기준과 이를 뒷받침하는 설득력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 열풍처럼 번지는 플랫폼이라는 키워드를 끌어 쓴다면 당장은 기업가치 측정에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플랫폼 강조 현상은 결국 투자자들로 하여금 피로감을 줄 테고 ‘또 플랫폼이야?’라는 시큰둥한 반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더구나 플랫폼의 정의도 매우 모호하다. 플랫폼을 단순히 사람이 모이는 곳에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정의 내린다면 해당 범위를 벗어나는 회사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가전제품 제조회사인 샤오미 역시 스스로를 인터넷 플랫폼 회사로 명명하고 있다. 자사 제품들을 자체 앱에서 구동하도록 하는 ‘샤오미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하이브 역시 팬 플랫폼 커머스인 위버스를 내세우며 플랫폼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따지면 스스로 앱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들은 너도 나도 플랫폼 기업으로 구분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업공개 시장에서 밸류에이션(Valuation)은 ‘발행사 마음’이라는 공공연한 비밀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정석대로라면 상장 주관사들은 스스로의 기준과 시장의 평가를 종합해 발행사의 기업가치를 객관적으로 산정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발행사가 원하는 모범답안이 정해져 있고 이를 맞추기 위해 주관사단에서 적절한 근거를 제시하는 관례는 이미 만연한 상태다. 그리고 밸류에이션 과정에서 마법처럼 활용되는 플랫폼 열풍은 해당 관례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주관사와 발행사는 어느 정도 수직적 관계가 성립될 수밖에 없다. 상장을 추진하는 것도, 의지를 거둬들이는 것도 전적으로 발행사의 결정에 따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밸류에이션 과정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 주체는 주관사다. 자칫 공모가 산정 시 미심쩍은 부분이 생겨 상장이 어그러지기라도 한다면 이는 주관사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발행사 역시 욕심을 부려봤자 득 될 것이 없다. 예전처럼 은근슬쩍 눈속임으로 공모가를 부풀리는 일은 결국 냉혹한 시장 평가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일반 투자자들은 이미 81조원이라는 숫자로 어마어마한 유동성의 힘을 입증했다. 예전처럼 기관투자자의 자금 동원력에만 기대는 시대는 지났다. 자금력도 여론에 좌우되는 시대다. ‘플랫폼의 마법’에 은근슬쩍 묻어가려는 시도는 시장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릴거라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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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6월 2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