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폭락장에 오갈 데 없는 유동자금 스팩에 몰렸다는 분석
“적정 가치 산정 어렵고 시장 규모 작다는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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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주가가 폭등하자 국내 주요 기관들이 잇따라 보유 물량을 처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추격 매수에 나선 개인투자자들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국내 스팩 주가가 과열 양상을 띄자, 일부 기관들은 아예 미국 스팩으로 관심을 옮겼다. 투기 시장으로 변질돼 투자엔 적합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스팩의 주가 폭등은 삼성스팩2호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2000원대에 머물던 삼성스팩 2호의 주가는 5월부터 폭등하기 시작했다. 메타버스 관련 기업인 엔피와 합병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뒤이어 5월 21일 상장한 삼성스팩4호는 별다른 합병 이슈도 없이 6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삼성스팩 뿐만 아니라 이름에 ‘스팩’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주가가 오르는 일까지 발생했다. SK4호, 5호 6호스팩, 신영스팩5호 등이 대표적이다.
일각에서는 암호화폐 가격이 폭락하고 코스피가 박스권에 갇히자 오갈 데 없는 유동자금을 가진 개인투자자들이 스팩으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최근 스팩 주가는 개인투자자의 매수세에 힘입어 올랐다. 삼성머스트스팩5호의 경우, 기관들은 지난 5거래일 동안 185억원을 매도한 반면, 개인들만 홀로 약 200억원을 순매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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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코인폭락장에 손실을 본 개인투자자가 스팩 투자에 나서면서 주가가 올랐을 수 있다”며 “암호화폐가 폭락한 시점과 스팩의 주가가 올라간 시점이 비슷하게 맞물린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최근 합병 이슈가 없는 스팩의 주가 폭등은 투기에 가까운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비상장 기업과 합병할 목적으로 설립된 스팩은 일반적으로 합병 대상이 정해지기 전까지 주가가 거의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스팩은 변동성이 크고 적정한 가치를 산정하기 어려워 규모가 큰 자산운용사에서는 투자를 하기 어렵다”며 “어느 기업과 합병을 할지 관련 정보력을 얻기도 어렵고 관련 리서치 조직도 없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기관들은 국내 스팩에는 적극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일부 기관은 최근 주가 급등세에 지분을 대부분 처분했다. 삼성증권은 지난 1일 신영스팩5호의 보유 물량을 전량을 매도했다. 신한금융투자도 SK6호스팩, 이베스트스팩5호 등 보유물량의 상당 부분을 매도했다.
운용사들은 오히려 국내보다는 미국 스팩에 투자하는 상품을 내놓는 추세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미래에셋 미국 SPAC 전문투자형사모 증권투자신탁 2호’를 내놓았고 신한자산운용은 미국 증시에 상장된 스팩에 투자하는 ‘신한미국스팩펀드’를 출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다른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도 “국내 스팩은 수익률이 크지 않아 펀드 규모가 큰 대형운용사에서는 매력이 큰 투자종목이 아니”라며 “미국은 시장도 더 크고 스팩 종목도 다양해 투자수요가 좀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일부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중소형 증권사ㆍ자문사들은 비교적 적극적으로 스팩 투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들도 최근 스팩 주가가 급등하자 상당 부분 차익을 실현했다는 후문이다.
한 중소형 운용사 관계자는 “최근 스팩 주가가 너무 많이 올라 어느 정도 차익 실현에 나서고 있다”며 “합병 이슈로 삼성스팩 종목이 오르자 다른 스팩도 덩달아 오르며 스팩시장이 과열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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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6월 2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