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 새 청약 일정 따라 '제로섬' 될수도
카카오뱅크, 크래프톤 논란 신경쓴 흔적 역력
이제 공은 크래프톤으로...선택따라 평판 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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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크래프톤이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자 증권가는 들끓었다. 투자자들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은 공모가를 제시한 까닭이다. 다음날 카카오뱅크가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하자, 다시 증권가는 술렁였다. 카카오뱅크가 '합리적 공모가'로 크래프톤과 비슷한 시기에 공모를 진행하면, 시장 논리로 자연스레 '악당 크래프톤'을 심판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서였다.
하지만 카카오뱅크는 시장의 기대만큼 기민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크래프톤과 2주 정도 일정에 거리를 두는 방법을 택했다. 나쁜 판단은 아니었다. 오히려 앞선 공모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공법에 가까웠다. 한정된 국내외 기관투자가를 두고 크래프톤과 IR(기업설명회) 일정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다.
이뤄지지 않을 듯 했던 '빅 매치'를 성사시킨 건 의외로 금융당국이었다. 금감원이 지난 25일 크래프톤에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며 다시 판이 바뀌었다.
크래프톤은 정정신고서 제출일을 기준으로 공모 일정을 새로 짜야한다. 카카오뱅크는 28일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정정 요구로 인해 이미 일정이 꼬여버린 크래프톤은 이번주 안에 정정신고서를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2주 가량 차이 났던 두 거래의 공모 일정이 불과 3~4일 간격으로 크게 좁혀진 셈이다.
크래프톤과 카카오뱅크는 이제 기관을 비롯한 시장의 반응도, 공모 성적도, 자금의 흐름도 모두 서로를 강하게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미 카카오뱅크는 증권신고서에서 크래프톤을 반면교사 삼아 상당히 고심한 흔적을 드러냈다.
카카오뱅크는 무리해서 자신을 '플랫폼 기업'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금융회사 전통 가치산정식인 주가순자산비율(PBR)을 썼다. 공모가 할인율도 주요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평균치를 산정해 적용했다. 크래프톤의 할인율이 낮다는 비판을 의식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가치산정식이 시장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할인율까지 감안한 PBR 밴드가 3.1~3.7배라고 강조한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이미 한국금융지주 등 카카오뱅크 지분을 보유한 회사의 가치를 산정할 때 카카오뱅크의 PBR을 3.5배 정도로 간주하고 있었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솔직히 상단 기준 시가총액 18조5000억원이 절대 낮은 가격은 아니다"라면서도 "크래프톤에서 논란이 됐던 부분을 미리 다 해명하고 대비한 느낌이라 '이정도면 적당하네'라는 의견이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공은 크래프톤으로 넘어왔다. 크래프톤도 정정신고서를 통해 언제, 어느정도의 가격으로 공모를 진행할 지 설정해야 한다. 이젠 크래프톤이 카카오뱅크를 신경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장 문제는 청약 일정이다. 카카오뱅크는 7월 26~27일 공모를 진행한다. 중복 청약이 불가능하긴 하지만, 최근 트렌드라면 수십조원은 훌쩍 넘기는 자금이 몰릴 전망이다. 이 자금은 환불일인 29일까지 카카오뱅크에 묶이게 된다.
만약 크래프톤이 7월26~29일 사이 공모 청약일정을 고른다면 카카오뱅크와 제로-섬(zero-sum) 게임을 하자는 도전장이 된다. 자금 분산이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7월29~30일로 설정하면 카카오뱅크의 후광 효과를 받을 수 있다. 청약 환불자금이 고스란히 크래프톤으로 유입되는 그림이 그려진다.
물론 이는 크래프톤이 '공모가 고평가'라는 비판에서 벗어났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일부 주식 커뮤니티에서 '불매(미청약) 운동' 움직임까지 있었을 정도의 현 공모가를 고수한다면, 넘치는 유동성에도 흥행을 담보하기 어렵다. 오히려 카카오뱅크와 공모 성적을 직접 비교당할 우려가 커진다.
카카오뱅크도 크래프톤의 움직임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카카오뱅크 역시 비교기업 선정에 대한 잡음이 없지 않은 상황이다. 크래프톤이 작정하고 합리적인 공모가 산정식을 다시 들고 나온다면, 지금의 평판이 완전히 뒤바뀔 가능성이 생긴다.
한 자산운용사 공모주 담당자는 "두 대어의 미묘한 눈치싸움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가 하반기 공모주 시장의 흐름을 좌우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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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6월 29일 14:1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