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바이오센서가 계기?…시장이 평가해야
거래소와도 '불편'…선례될까 업계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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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이 기업공개(IPO)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호황장을 틈타 논란이 있는 공모가를 제시한 발행사가 원인 제공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금감원이 '정정 요구'의 방식으로 발행사에 부담을 주는 건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물론 금감원은 명시적으로 '공모가를 낮춰라'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위험요소를 재점검하라는 요구를 했을 뿐이다. 다만 SD바이오센서는 실제 공모가를 낮췄고, 크래프톤 역시 공모가를 낮추는 걸 검토하고 있다. '시장 개입'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시장의 가격 판단 기능을 교란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금감원으로부터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받은 크래프톤은 기업가치 산출 방법론 뿐만 아니라 피어그룹까지 조정해 공모가를 낮췄다. 발행사는 물론 주관사단이 느꼈던 부담감이 상당했다는 전언이다.
앞서 지난달 초에는 SD바이오센서가 금감원의 정정 요구를 받았다. SD바이오센서는 '포스크 코로나 시대의 진단키트주 상장'으로 주목을 모았는데, 코로나 시기 급증한 실적을 바탕으로 책정한 공모가가 과도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금감원의 정정요구 이후 SD바이오센서는 희망 공모가밴드 기준 기업가치를 최대 8조9000억원 수준에서 5조300억원대로 약 40% 가량 하향조정했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이 SD바이오센서 이후로 좀 더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모양새다"라며 "물론 크래프톤은 외국계에서 물량 많이 받아줄 것으로 예상돼 있어서, 금감원이 정정 요구를 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진행했을 것"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명시적으로 공모가를 문제삼은 건 아니다. 다만 정정 요구 시점과 여론의 추이, 최근 금융당국의 공모주 투자자 보호 의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공모가 하향 조정에 대한 압박감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발행사가 제시한 공모가에 대한 시장 평가를 떠나, 금감원이 이런 식으로 주요 거래에 개입하는 듯한 모양새를 비추는 것이 IPO 시장 전체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하진 않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설사 기업가치를 낮추어 정정신고서를 내더라도, 이를 금감원이 적정한지 아닌지 판단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시장 원리에 따라 증시에서 충분히 공모가의 적정 여부가 가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공모가 산정 논리(Logic)를 공개한 당시 시장에서 의문이 제기됐던 6월 신규상장사 에이치피오의 공모가 대비 주가 하락률은 20%에 가깝다. 상장 당일 시초가도 공보가 대비 10% 가량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주관사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진들도 당혹스럽다. 이들은 통상 발행사가 원하는 기업가치에 맞추어 방법론과 피어그룹을 구성한다. 희망 기업가치를 낮추기 위해서는 기업가치 눈높이를 낮추어야 한다고 발행사를 설득해야 하고, 이를 토대로 다시 공모가 로직을 짜야 한다.
게다가 이들은 인수 부담도 이미 지고 있다. 공모가가 높아 시장의 외면을 받는 경우 실권물량을 인수해야 한다. 빅딜의 경우 실권 부담이 크지 않다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리스크가 '제로'인 건 아니라는 평가다.
그간 발행사, 주관사와 상장 업무 절차를 함께 밟아온 거래소와의 관계 역시 애매해졌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물론 거래소는 증권신고서 심사 의무가 없지만, 상장 예비심사 청구 당시 공모가가 높다고 판단할 경우 산정 로직을 묻곤 한다는 전언이다. 금감원이 공모가가 높다고 상장에 제동을 걸면, 거래소는 '증권신고서 제출 이전까지 대체 뭘 평가한 것인가'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인다.
크래프톤까지 '공모가 정정'의 선례를 남기며, 카카오뱅크 등 IPO 후보군들도 칼날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대형 딜의 주관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크래프톤이 이번에 공모가를 정정한다면 다음 딜에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보여진다"라며 "이번에 카카오뱅크도 행과 열이 안 맞는 등 포맷(Format)만 보면 급하게 낸 것이 느껴지고 피어그룹 선정 논리도 부실한데 금감원이 또 칼을 들이밀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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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7월 01일 10:24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