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제조역량 대변 위치…가능성 크단 평
삼성, 美 신규공장 후보지 고민…투자 리스크 커
삼성·TSMC·인텔 3강 구도 재편시 압박 커질 전망
-
인텔이 글로벌파운드리 인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 경쟁구도 재편이 예고된다. 현실화할 경우 삼성전자는 TSMC와의 공정 미세화 경쟁을 이어가는 동시에 전체 시장 점유율에서 인텔의 추격을 받게 된다. 삼성전자가 신중한 태도를 이어가고 있지만 파운드리 경쟁력 증명에 대한 압박은 더 커졌다는 분석이다.
지난 15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텔이 글로벌파운드리 인수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글로벌파운드리는 올 1분기 글로벌 시장 점유율 기준 4위(5%)의 파운드리 업체다. 시장에서는 오는 22일 인텔의 상반기 실적 발표회에서 인수 추진 관련 공식 입장을 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관련 업계에선 인텔의 인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지난 6월 백악관은 반도체 산업에 대한 미국 중심의 탄력적인 공급망 구축을 위한 전략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의 반도체 산업은 글로벌 시장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제조 역량은 전체 시장의 12%에 불과하다는 게 주요 골자다. 특정 국가에 편중된 반도체 제조 기반 자체가 국가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기에 미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담겼다.
인텔은 미국 반도체 제조 경쟁력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다. 이 때문에 바이든 정부 이후 미국 반도체 기업의 인수합병(M&A) 시도는 미국 정부 의지와 따로 보기 힘들단 평이 지배적이다. 인텔이 올해 팻 겔싱어를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한 이후 파운드리 경쟁에 다시 뛰어들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인텔이 글로벌파운드리를 인수할 경우 단숨에 시장 점유율 2위로 올라설 거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글로벌파운드리는 10나노 이하 선단공정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12nm~350nm 시장 점유율은 7%에 달한다. 인수를 통해 삼성전자와 TSMC에 버금가는 선단공정 경쟁력 확보는 힘들 수 있지만 파운드리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팻 겔싱어는 파운드리 산업의 성장성을 두고 돈 되는 시장이란 언급을 여러 차례 내놨다"라며 "M&A를 통해 공정 스펙트럼은 물론 부족한 팹(반도체 생산공장) 확보까지 한 번에 해결하기 위한 복안으로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
시선은 자연스레 삼성전자의 행보로 이동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아직까지 미국 신규 팹 건설 후보지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선 답답함을 호소하지만 파운드리 시장 특수성을 고려하면 그럴만도 하다.
파운드리 산업은 반도체 설계를 제외한 모든 비용을 회사가 감당하는 구조로 분업이 이뤄진다. 공정이 미세화할수록 설비투자부터 연구개발(R&D)까지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과잉 설비투자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장기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이 중요하다. TSMC가 애플 등 주요 팹리스를 고객사로 거느리고 투자에 나서는 것과 대비된다. 인텔의 경우 M&A를 통해 이 과정을 생략하는 전략을 취한 셈이다.
관련업계에선 삼성전자는 10nm 이하 공정에서 고객사 확보에 고전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TSMC가 7nm 이하 공정에서 10개 이상 고객사를 확보해 가동률 100%를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해 삼성전자의 고객사는 2~3곳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섣불리 증설에 나설 경우 비용만 지불하고 경쟁력 격차를 줄이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가 내년 이후 시작될 3nm 이하 공정에서 승부를 보기 위해 전략적으로 인내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양사가 발표한 기술 로드맵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3nm 공정부터 차세대 트랜지스터 제조 기술인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기술을 도입한다. TSMC를 따라 당장 증설에 나서기보다 고객사 확보 및 지원 조건을 타진하며 후보지를 물색하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그러나 인텔의 파운드리 추격 전략이 가시화할수록 삼성전자의 경쟁력 증명 압박도 거세질 거란 전망이다. 선단공정에서 TSMC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할 경우 똑같이 종합반도체(IDM) 기업인 인텔과 경쟁하는 모양새가 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인텔의 파운드리 산업 재진출을 둘러싼 의구심을 M&A를 통해 대응하면서 한국과 대만, 미국의 3강 구도 형성이 앞당겨지고 있다"라며 "TSMC를 따라잡는 시기가 늦춰질수록 삼성전자의 경쟁상대가 TSMC가 아닌 인텔로 비치게 되고, 그간 시장 일각에서 프리미엄을 반영하던 추격자 포지션도 무색해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7월 2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