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되는 정정 요청에 주관사들 눈치싸움 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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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주 시장에서 개인투자자의 입김이 거세지면서 금융 당국이 상장을 앞둔 기업들의 자금사용 계획을 꼼꼼히 살피고 있다. 개인투자자 보호를 앞세워 상장 후에도 해당 기업의 성장 가능성 여부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주관사들로서는 증권신고서 제출 단계부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아진 만큼 자칫하면 청약 시기가 겹치는 사례를 피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커졌다. 공모금액이 큰 대어급 발행사들이 줄줄이 대기하는 가운데 주관사간의 눈치싸움이 만연하는 모양새다.
카카오뱅크는 지난 19일 수정된 증권신고서에 ‘자금의 사용목적’ 항목 중 핀테크 기업 M&A, 글로벌 진출 추진 내역을 상세히 기술했다. 당초 핀테크 기업 인수를 위해 약 2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만 적었지만, 투자 대상 등의 구체적 내용을 포함했다. 개인사업자 대상 신용평가(CB)회사의 공동 발기인으로 출자해 금융거래 처리 고도화 기술 분야에 투자할 예정이다. 글로벌 진출의 세부계획도 밝혔다. 직접 진출보다는 조인트벤처(JV) 등의 기업대기업(B2B) 방식을 사용할 예정이다.
크래프톤과 SD바이오센서 역시 향후 투자계획을 좀 더 분명하게 증권신고서에 담았다. 크래프톤은 그동안 글로벌 게임업계의 M&A 사례를 자금 집행의 근거로 제출했다. SD바이오센서도 생산공장 외에 오송이나 세종 등 부지에 물류창고 설립 계획을 추가했다. 또 드라이케미스트리 공장 부지 매수 등을 토대로 향후 관련 시설을 증설한다는 내용도 새로 포함했다.
차입금 상환 등 재무구조 개선 계획이 상술된 사례도 있다. HK이노엔은 지난 19일 정정 제출한 증권신고서 내 자금의 사용목적 중 채무상환 자금 내역을 보완했다. 모기업인 한국콜마가 HK이노엔을 인수하면서 발생한 차입금 중 남은 금액이 HK이노엔으로 승계됐기 때문이다. HK이노엔은 인수금융채무 4300억원 가운데 이번 공모를 통해 약 1500억원을 대주단에 상환키로 했다.
이들 사례를 종합해볼 때 최근 금융감독원 등 감독 당국의 눈초리가 상장을 앞둔 기업들의 자금 사용출처로 향하는 모양새다.
한국거래소나 금융 당국은 이전부터 기업의 자금 조달이 오너들의 엑시트(투자금 회수)에 사용되는 것에 경계의 시선을 보내왔다. 공모자금은 해당 회사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주는 투자활동이나 재무구조 개선에 사용되어야한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해당 분위기가 더욱 강화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는 공모주 시장에 개인투자자들의 역할이 커진 데 따른 변화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상장사 못지않게 비상장주식 투자 열기가 뜨거워지며 공모주 시장에 일반 대중의 참여가 활발해졌다. 상장 후 주가 추이가 미칠 파장이 개인투자자로 범위가 넓어지면서 감독 당국의 모니터링 수준도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이전에는 상장된 기업의 유상증자 등 자금조달 과정에서 자금의 사용 내역을 꼼꼼히 살폈지만 이제는 상장을 앞둔 기업들도 자금 사용계획을 깐깐히 검토한다”라며 “기관들 위주였던 공모주 투자 시장에 개인투자자도 ‘큰 손’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상장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금융 당국이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발행사와 주관사로서는 금감원의 제동으로 예측이 어려워진 청약 시기 탓에 애를 먹고 있다는 후문이다. 단순 기재정정은 청약 시기가 바뀌는 사례가 흔치 않지만 기간정정은 최소 2~3주 정도는 청약 일정이 밀린다. 최근 금감원의 정정 요청을 받은 카카오페이는 증권신고서에 1분기 보고서가 아닌 반기보고서를 기준으로 공모가를 산정하게 됐다. 이 때문에 당초 8월 상장을 목표로 했지만 빨라야 9월 이후에나 상장을 마칠 수 있게 됐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 크래프톤이 몰려 있을 당시 시기가 겹쳐 걱정을 하거나 이를 피하려고 했던 발행사들이 많았다”라며 “특히 중소형 공모주들은 청약 시기에 민감한데 카카오페이나 크래프톤처럼 예상치 못한 정정 요구를 받게 되어 주관사들끼리 눈치싸움에 골치가 아플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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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7월 22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