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회장 및 오너일가는 여전히 등기임원
주총 연기하며 “쌍방 간 시간 필요”
협의 없는 일방적 통보, 한앤코 “법적대응 고려”
소비자·투자자 신뢰는 바닥
재기 위한 유통기한도 얼마 남지 않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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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대국민 사과는 지켜지지 않았다. 경영에서 물러나겠단 약속도, 경영권을 매각하겠단 약속 모두 마찬가지다. "남양이 남양했다"라는 말이 나온다.
홍원식 회장과 홍 회장의 모친인 지송죽 이사, 장남인 홍진석 이사는 3일 현재 등기부등본상 여전히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다. 불가리스 사태로 홍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지 벌써 3개월가량이 지났다.
회사가 쇄신안으로 내놓은 방안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이었다. 세종공장의 공장장이 위원장을 맡은 비대위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지배구조 개선 및 오너일가의 등기이사 사임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이후 비대위가 어떻게 구성돼 어떤 역할을 하는지 결과적으로 드러난 바는 없다.
그래도 오너일가는 사모펀드(PEF)로의 경영권 매각을 결심하며 회사를 끝까지 살려보겠단 의지를 보이는 듯 했다. 투자자들은 화답했다. 홍 회장의 사퇴와 경영권 매각 발표 이후 주가가 2배 이상 뛴 것이 이를 증명한다.
불가리스 논란, 경쟁사(매일유업) 비방 사태 등 연이은 사건에서 알 수 있듯 남양유업의 내부통제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PEF가 기업에 절대적으로 선(善)한 존재는 분명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현 오너일가보단 전문경영인 체제와 시스템에 의한 사업이 자리잡는다면 남양유업이 그간 겪었던 논란들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이 존재했다. 그래야만 PEF도 적당한 시기에 더 비싼 값에 투자금을 회수 할 수 있다. 투자자들이 홍 회장의 사퇴에 환호한 것도 이런 이유에 가깝다.
이 약속 또한 아직 지켜지지 않았다.
새로운 경영진을 선임하고 주식 매각을 완료하려 했던 주주총회 당일, 홍 회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회사가 공시를 통해 밝힌 주총 연기 사유는 “쌍방 당사자 간 계약 종결을 위한 준비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쌍방은 ▲매각측인 홍 회장과 오너일가 ▲매수자인 한앤컴퍼니이다.
새로운 이사진 선임이 완료되면 한앤컴퍼니는 인수금액 약 3000억원을 납부해 거래를 종결하겠단 계획이었다. 그러나 주총을 연기하겠단 발표 전까지 한앤컴퍼니는 어떠한 협의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협상하는 M&A 과정에선 이 같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매각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는 게 먼저다. 물론 양해를 넘어선 ‘동의’와 준비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간 부동산을 거래해도 잔금 치르는 날은 모두가 긴장상태다. 하물며 3000억원짜리 지분을 거래를 하는데 매도인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기회비용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사실 홍 회장이 경영권 매각을 결심했을 시점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불가리스가 코로나 치료에 도움이 된다던 과장광고 사태는 세종시의 과징금 부과로 일단락 됐다. 홍보대행사를 통해 경쟁사인 매일유업에 비방글을 게재하며 논란이 일었지만 남양유업의 사과로 이 또한 잠잠해졌다. 그리고 최근 주가는 2배 이상 뛰었다.
오너일가가 한앤컴퍼니와 본계약을 맺은 상태에서 더 비싼 값을 쳐줄 새로운 매수자를 ‘공식적’으로 찾아 나서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한앤컴퍼니와 거래 결렬을 염두에 두고 사전교섭을 한 정황이 뒤늦게라도 나타난다면 위약금보다 훨씬 큰 규모의 소송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시장의 넘치는 유동성이 오너일가의 마음을 흔들었을지 모른다. 한앤컴퍼니 외에도 남양유업 오너일가의 지분 인수에 눈독을 들이던 국내 대기업이 몇몇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3000억원 수준의 거래를 불과 수일만에 성사 시킬 수 있는 PEF들도 상당히 많다. 이번 거래가 ‘쌍방 협상 결렬’로 결론이 난다면 오너일가에는 또 한번의 기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어디까지나 경영권 매각 결정이 ‘진심’이었을 때의 얘기다.
한앤컴퍼니는 딜을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곤 있지만 이미 상대방에 대한 신뢰는 바닥난 상태다. 수년 간 소송을 진행해 남양유업 경영권을 손에 쥔다 한들 남양유업이 지금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남양유업에 대한 소비자들과 투자자들의 믿음은 이미 깨졌다. 외국인들은 연일 주식을 팔아 치우며 지분율을 낮추고 있다. 남양유업의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단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