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조달 규모보다 속도에 방점...9월 중순 상장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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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현대중공업이 9월 중순을 목표로 상장 공모 절차에 들어갔다. 공모희망가 밴드 기준 기업가치는 6조원을 밑돌아 당초 증권업계 예상치보다 낮게 형성됐다. 당장 자금조달 규모를 늘리기보다 빠르고 성공적인 상장을 위해 변수를 없애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10일 현대중공업은 금융감독원(금감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보통주 1800만주를 새로 발행하며 희망 공모가액은 5만2000원~6만원으로 산정됐다. 최대 1조8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증권신고서 효력이 나오는 대로 기업설명회(IR) 등을 거쳐 9월 중순 상장 일정을 잡아두고 있다.
비교회사로는 대우조선해양, 중국 선박공업(CSSC), 중국 선박중공업집단(CSIC) 등이 포함됐다. 유력한 비교회사 후보였던 삼성중공업은 지난달 말부터 최근까지 감자 후 증자를 앞두고 거래정지 상태인 탓에 동종회사로 꼽히지 못했다.
밸류에이션 측정 방식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다. 통상 조선사는 이익이 나중에 잡히는 수주산업인 만큼 PBR 방식이 일반적으로 적용된다.
이번 밸류 산정 과정에서 2분기에 후판가격 상승으로 인한 충당금이 약 3000억원 잡혔다. 이 때문에 반기 말 공사손실 충당부채는 전기보다 약 3600억원 증가했다. 이는 한국거래소의 심사 승인을 위해 재무상 리스크를 없애기 위한 수순이다. 다만 순이익이 감소하는 만큼 이익잉여금이 줄어들면서 PBR 방식에 적용되는 자본총계가 쪼그라드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삼성중공업 감자로 인한 영향도 다소 있었을 거란 분석이다. 지난 1분기 말 기준 삼성중공업의 PBR 배수는 1.2배로 다른 중공업회사 대비 높은 수준이다. 같은 기간 PBR은 대우조선해양 0.94배, 중국 CSSC와 CSIC는 각각 1.47배, 1.03배 수준이다. 이를 종합하면 현대중공업에 적용된 PBR 배수는 1.12로 형성됐다.
현대중공업 예상 시가총액은 약 4조6000억원~5조3000억원 수준으로 형성됐다. 평가 시가총액 6조5775억원에 할인율 19%~29.8%를 적용한 값이다. 회사가 올해 초 제시했던 6조원이라는 숫자에 못 미치는 셈이다.
현대중공업이 올해 초 신주 발행으로 자금 조달 1조원 규모 계획을 세웠던 점을 감안하면 해당 기업가치 측정이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다. 신주 발행 20%로 계산하면 대략 6조원의 몸값을 예상했다는 의미다.
현대중공업으로서는 충당금 규모를 줄이거나 삼성중공업 대신 더 배수가 높은 해외회사들을 포함해 ‘6조’라는 숫자를 맞출 수 있었다. 더욱이 향후 수소 분야 등 미래 산업 투자를 위한 재원 조달이 금번 상장의 목적인 데다 통상 발행사들이 상장을 통해 최대한 많은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현대중공업 상장은 그룹 차원에서 빠르게 상장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향후 지배구조 개편, 기타 계열사 상장 등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만큼 현대중공업 상장의 성공적인 마무리가 절실한 상황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오일뱅크, 현대삼호중공업, 현대글로벌서비스 등 여러 자회사가 상장을 앞두고 있거나 거론되는 상황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주관사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받았고, 현대삼호중공업은 내년 상장 가능성이 유력하게 떠오른다.
최근 중간지주사로 출범한 현대제뉴인도 상장 통한 투자금 회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룹 차원에서 현대중공업 상장이 빠르게 마무리 되어야 다음 계열사 상장 및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공모주 시장을 향한 금감원 등 당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점도 논란의 여지를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공모주 고평가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앞서 다수의 발행사들이 증권신고서 정정을 감수했다. 카카오페이의 경우 상장 일정이 수개월간 미뤄지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은 이번 상장 과정에서 구주매출 비중을 잡지 않고 신주 발행 100%로 설정했다. 앞서 중공업 호황을 토대로 예상 기업가치가 오르면서 지주 차원에서 일부 구주매출로 자금을 확보할 가능성도 고개를 들었다. 다만 현대중공업 몸값이 당초 계획된 수치보다 밑돌면서 신주 100% 발행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풀이된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통상 대기업 계열사는 상장 과정에 문제가 생기거나 지연되는 등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는 점을 가장 경계한다”라며 “당장 1천억~2천억원을 더 조달하자고 무리하게 상장을 진행했다가 금감원의 제동이 걸리거나 자칫 상장이 어그러지면 그룹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