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사들 'ESG 시대' 준비 안돼있단 평
투자자·시장 앞서있는데…"마인드 변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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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가 건설사들의 ‘아킬레스건’으로 떠올랐다. 건설업계가 보건안전과 환경 이슈 등 가장 ESG에 가장 취약한 업종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건설사들의 준비가 미비하다. ESG 역량이 자금조달부터 규제 문제, 시공능력까지 전방위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 가운데 글로벌 스탠더드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현대건설이 ‘탈석탄 선언’을 내놓아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다만 “진정성이 없는 그린워싱(친환경 위장)”이란 지적이 뒤따랐다. 현대건설이 베트남 광짝에 지어질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 참여하며 국내외에서 거센 비판을 받자 ‘마지못해’ 내놓은 선언이란 이유에서다. 현대건설은 일본 미츠비시, 베트남1건설공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이 사업을 수주했다. “해당 사업까진 하고 앞으로 안하겠다”는 입장이라 면피성 선언이란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건설사들이 너도나도 ESG강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진정성 의문이 제기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석탄 사업을 향한 눈총이 따갑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진행 중인 신규 석탄발전소에 참여하고 있는 건설사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지난해 삼성물산이 한국전력공사의 해외 신규 석탄사업 참여하면서 해외에서 공개적인 비난을 받았고, 국내 비금융 업계 최초로 탈석탄 선언을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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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ESG 이슈가 단순 비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준 미달이면 자금조달 자체가 어려워졌다. 국내 국책금융기관과 주요 금융사들이 ESG 경영을 강화하면서 반(反)환경적이거나 인권 침해를 야기하는 개발 사업에 PF(프로젝트파이낸싱) 등 금융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한 국내 대형 은행 관계자는 “지주 차원에서 ESG를 강조하면서 석탄 관련 사업 신규 대출은 늘리지 않고 있고, PF 딜(거래)을 수주할 때도 ESG 요소를 미리 체크해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7월 삼척블루파워가 자금 조달을 위해 나선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전량 미매각을 기록하면서 시장의 냉랭한 투심을 확인한 바 있다. 투자자 측면에서도 이제 친환경 투자가 아니면 안되는 상황이라 이미 들어가 있는 석탄 사업에서 투자금 회수를 못하고 손실이 날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큰 손’ 해외 투자자들은 기준이 훨씬 앞서가 있다. 7월 초 세계 최대 연기금 펀드인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현대건설이 석탄 사업을 지속한다는 이유로 ‘관찰기업’으로 선정했다. 사실상 투자 대상에서 제외한 셈이다. 스웨덴, 프랑스 등 유럽 각국 연기금도 이 같은 입장에 동참해 추가적으로 투자 배제 기업 지정에 나설 수 있다.
이미 과거 수주한 사업도 중단위기에 처한다. SK에코플랜트(구 SK건설)가 시공하는 영국 런던의 실버타운 터널 사업이 환경오염 우려로 반발이 커지면서 프로젝트 중단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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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리스크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건설 과정에서의 온실가스 배출, 담합, 조망권 등 지역사회와 분쟁까지 ESG에 걸리는 요소들이 산적해있는데, 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부터 시행된다. 새로운 법이 생기다보니 보건안전 쪽에서 리스크 폭이 크게 넓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 건설 현장은 보건안전이 가장 취약한 곳으로 꼽힌다. 지난해 국내 산업재해로 인한 사고사망자 총 882명 중 458명이 건설업에서 발생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유럽에선 근로자 사망 등 보건안전 사고에 과징금이 워낙 커서 중소형 회사가 도산하기도 한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하면 고의성과 상관없이 처벌수위가 높아지는 만큼 국내 건설사들도 진행이 늦더라도 면밀히 살피고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 금융시장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국내 건설사들은 준비가 미비하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건설사나 중공업 등 인프라 사업 회사들이 화석연료 사업에 집중돼 다음 단계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며 “해외에서는 신재생에너지를 미리 준비해왔고, 선진국 회사들이 빠져나간 시장에 남아있던 국내사들은 실제 포트폴리오 변화 등 준비 없이 내실 없는 선언만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건설의 사례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그룹의 평판을 훼손하는 ‘소탐대실’할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단 우려도 나온다. 현대건설의 최대주주인 현대자동차는 “기후를 생각해 전기차 생산을 확대한다면서 계열사에서는 석탄 발전 사업을 추진한다”고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았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계열사의 CEO(최고경영자) 평가 및 연임 여부 결정 권한을 이사회에 부여하고, 평가에 사회적 가치를 50%나 반영하기로 한 것도 계열사까지 ESG 경영을 침투시키기 어렵기 떄문에 내놓은 조치란 평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지금 건설사를 이끄는 경영진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미래 먹거리 창출 준비를 꼽는다.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역량을 강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럽에선 기업에 공급망에 대한 인권 실사까지 필수로 요구하는 등 ESG 경영을 확대하면서 기본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건설사들은 시공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사업 파트너로 선정하지 않는다. 과거엔 ESG 요소에 어긋나도 수익이 좋으면 업체를 선정하곤 했지만 이제는 트렌드가 완전히 바뀌면서 수익이 적어도 장기적인 ESG 가치에 반하면 아예 사업 제안을 하지 않는 추세다.
한 ESG 평가업계 관계자는 “건설사 입장에선 돈만 받고 시공을 끝내면 표면적으론 걸릴 게 없다보니 책임에 대한 장기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은 것”이라며 “석탄 사업들도 건설사들이 참여하는 곳들이 없어야 중단이 된다. 근시안적 시각으로 수주하고 단기 수익만 바라보지 말고 장기적인 가치를 보는 경영진의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