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일방 불응시 해결 방안은 주주간계약에 없어
신 회장 이 부분 지적하며 풋옵션 상환 부담 피해
FI도 풋옵션 유효성 인정 받으며 소기의 목적 달성
신 회장 버티면 가격 합의부터 집행까지 난항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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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재무적투자자(FI)간 중재가 2년여만에 결론이 났다. 양쪽 모두 서로 승리를 주장하는데 원하는 가격에 주식을 사달라는 FI의 핵심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만큼 신 회장의 우세로 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 회장은 풋옵션 행사가격 산정 시 평가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는데, 그 경우 어떻게 가격을 산정할 것인지에 대한 주주간합의는 없었다. 신 회장은 이를 근거로 FI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항변했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FI는 풋옵션의 유효성을 인정받았고, 신 회장의 의무 위반도 확인됐다. 최소한의 명분은 찾았는데 다만 실질적인 회수 전망은 불투명하다. 중재 결과에 대해서는 재심을 요청하기 어렵다. 국내에서 다시 법적 다툼에 나서자니 풋옵션 가격 산정 절차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이 버티기에 나서면 지루한 공방전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 6일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 중재판정부는 신창재 회장과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등 FI 컨소시엄에 최종 중재 판결문을 전달했다. 핵심 쟁점은 크게 풋옵션 유효성과 가격인데, 풋옵션의 유효성은 인정됐지만 FI가 원하는 가격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양측 모두 서로 승소를 주장하며 향후 법적 대응을 고심하는 분위기다.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컨소시엄은 2012년 교보생명에 약 1조2000억원을 주당 24만5000원으로 투자했다. 3년 안에 교보생명이 상장하지 않을 경우 신창재 회장에 주식을 사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권리(풋옵션)도 확보했다. FI는 2018년 풋옵션을 행사했고, 신 회장이 이에 응하지 않자 다음해 3월 ICC에 중재를 신청했다.
신창재 회장이 주주간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형국이니 FI의 주장에 힘이 실렸다. 분쟁 초기 신 회장 측이 '불공정계약’을 주장하려 했지만 인용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평가가 있었다. 중재 판정도 FI에 유리하게 나올 것이란 예상이 많았는데, 결과는 FI에 썩 만족스럽지 않은 모습이다. 중재판정부는 신창재 회장이 FI가 원하는 가격에 풋옵션을 받아주지 않아도 된다고 봤다.
신창재 회장과 FI간 주주간계약에 따르면 풋옵션 행사사격은 양측이 각각 평가기관을 선정해 평가를 맡기되, 그 가격차가 10% 이상일 경우 제3의 기관에 맡겨 최종 가격을 구한다. FI는 딜로이트안진에 의뢰해 주당 40만9912원의 가격을 산정했다. 신 회장은 30일 안에 가치평가보고서를 제출할 계약상 의무가 있었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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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에는 어떤 절차를 밟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느냐에 대한 합의가 주주간계약에 담기지 않았던 것이다. 신창재 회장의 의무불이행은 인정됐다. 그러나 신 회장이 테이블로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게 가치를 정할 것인지에 대한 계약 내용은 없다. 그러니 일방만이 주장하는 가격을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볼 여지가 있었다. 신 회장 측도 이런 미처 합의되지 않은 부분(Gap)을 판정부에 적극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2조원대 자금 부담을 피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업계에선 ‘풋옵션 유효성은 공방의 수단이었을 뿐 실질은 신창재 회장이 FI의 바람대로 주식을 사줘야 하느냐’였기 때문에 FI의 논리를 깬 신 회장의 승리로 봐야 한다는 관전평도 나온다.
중재는 통상 6개월에서 1년 정도면 결과가 나오는데, 교보생명 중재는 팬데믹 여파로 2년 반이나 걸렸다. 절차가 지연되는 사이 검찰의 회계법인 기소,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대법원 판결 등 변수가 있었다. 특히 DICC 소송은 FI와의 분쟁이라는 점에서 교보생명 중재와 사안이 비슷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FI에 대한 협조 의무 자체는 인정됐지만, 그것 만으론 FI가 원하는 값으로 투자회수를 하기엔 부족했다. 한국 내 중요한 판결이니 교보생명 중재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FI는 이번 중재 판결로 명분을 재확인했다. 판정부는 풋옵션이 무효라는 신창재 회장의 주장이 근거 없으며, 딜로이트안진의 풋옵션 행사가격 산정도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판정했다. 즉 풋옵션은 유효하고 평가기관과 부정한 거래 관계도 없엇다는 점을 확인받았다. 딜로이트안진도 일단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풋옵션은 별도의 행사 기한이 없다.
다만 FI가 유효한 풋옵션을 활용해 투자금을 회수하기까진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 통상 국제 중재는 단심으로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설령 항고 절차에 나선다 치더라도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FI들은 최근 투자회수 성과가 있고 펀드 만기도 LP 동의를 받아 늦추면 되지만 장기전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풋옵션을 행사하려 하면 지난 번의 힘겨루기가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중재판정부는 풋옵션 행사 가격을 구하는 절차가 부족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결국 풋옵션 행사 가격을 정하려면 다시 각각 평가기관에 의뢰해야 하고, 신창재 회장에도 가격을 제시해달라 요청해야 한다. 그러나 신 회장이 다시 응하지 않고 버티면 어떻게 의무를 강제할 것인지 모호하다. 아직 평가기관에 대한 형사 절차가 진행 중이라 선뜻 가치평가에 나설 곳을 찾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FI가 풋옵션 행사 시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금액은 ‘투자 원금'이다. 주주간계약 상 풋옵션은 투자 원금과 공정가치(FMV) 중 높은 금액으로 행사할 수 있다. 신창재 회장이 가치 산정 절차에 나서더라도 FI가 투자 원금 이상을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은 셈이다. FI 입장에선 공정가치(FMV)에 따라 회수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평가기관에 가치 산정을 맡기고 풋옵션을 행사했지만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했다. 앞으론 전략을 바꿔 원금이라도 회수하려 할 수도 있다.
물론 투자원금 회수도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애초에 신창재 회장과 FI의 갈등은 생명보험업의 부진, 신 회장의 상환 능력 부족 때문에 벌어졌다. 2조원이든 1조원이든 신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마련하기는 어려운 돈이다. 투자 원금과 이자는 꼭 돌려줘야 한다고 가정하면, 신 회장으로선 최대한 빨리 갚는 것이 유리하지만 그보다는 버티기에 나설 것이란 시선이 많다. FI도 집행할 권리는 있다면서도 당장의 집행 가능성은 보수적으로 보는 분위기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FI는 풋옵션의 유효성을 확인했고, 신창재 회장도 당장 매수 의무는 피했으니 양쪽 모두 얻는 것이 있었다”며 “앞으로 풋옵션 행사 가격을 정하고 FI가 집행에 나설 때까지 장기전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