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평가'·상장 스토리 면에서 중요성 커
직구시장 규모 작아 실적면에서 영향은 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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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11번가가 아마존을 발판삼는 에쿼티 스토리(상장 청사진)에 시동을 걸고 있다. 출시 전부터 관심을 모은 11번가와 아마존의 협업이 일단은 순조롭게 출발했다. 객관적인 규모보다는 추후 아마존을 확실한 우군으로 만들 수 있는 시험대라는 상징성이 큰 만큼 모회사인 SK텔레콤과 11번가 모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11번가는 지난달 31일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를 론칭하고 첫 일주일(8월 31일~9월 6일)간 해외직구 카테고리 거래액이 전월 동기대비 3.5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SKT의 구독 서비스 ‘T우주’ 가입자가 크게 늘면서 매출을 견인했다. 우주패스는 아마존 해외배송 무제한 무료 혜택을 포함하고 있으며 SKT가입자 뿐 아니라 KT, LGU+ 등 타 통신사 이용자도 가입할 수 있다.
11번가와 SKT 내부에서는 초기 반응이 기대 이상이란 평이다. 구체적인 숫자는 아마존과의 계약에 따라 공개할 수 없지만, 순항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도 일단 ‘신규 효과’는 긍정적으로 보는 분위기다.
이번 글로벌 스토어 론칭은 세계 최대 이커머스 기업인 아마존과 사업을 한다는 상징성이 크다. 회사 측도 단기간에 폭발적인 거래액 성장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11번가가 중위권 이커머스로서 경쟁사 사이에서 ‘11번가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사업자로 인정받기 위한 길을 만든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해외 직구 시장은 전체 이커머스 시장에서도 규모가 작아 판도에 변화를 줄 정도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해 기준 국내 해외직구 거래액은 4조원가량으로, 국내 전체 이커머스 시장 거래액 대비 2~3% 수준에 그친다.
다만 아마존과의 협업은 11번가의 상장을 향한 에쿼티 스토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전망이다. 향후 SKT가 아마존과 지분관계를 맺고 FI(재무적 투자자)의 투자 회수도 지원하기 위해선 글로벌 스토어 성과가 중요하다. SKT는 지난해 11월 아마존과 지분 참여 약정을 체결하고 11번가 전자 상거래 분야에서 협력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계약으로 아마존은 IPO를 포함한 11번가의 성과에 따라 신주인수권을 부여받고 일정 수준의 지분을 가지게 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성과에 따라 아마존이 투자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예 안할 수도 있다“며 “해외 직구시장이 전체 이커머스 시장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작다보니 얼마나 이걸 단기 성과로 연결시킬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SKT가 투자자와 약속한 11번가의 상장 기한은 2023년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올해 그룹 지배구조 개편인 중간지주사 전환 작업이 마무리되면서 자회사 상장 추진 계획도 속도가 붙고 있다. SKT는 원스토어를 시작으로 ADT캡스, 11번가, 콘텐츠웨이브, 티맵모빌리티를 순차적으로 상장시킬 예정이다. 원스토어는 이르면 올해 하반기, ADT캡스는 내년 증시 입성이 목표다.
11번가도 올초 내부에 ‘상장 추진팀’을 신설하고 상장 준비에 돌입했다. 상장 전략 수립, 상장 요건 사전정비, IR, 공모 절차 등 상장 추진과 관련된 제반 업무를 전담하는 조직이다. 지금 당장 구체적으로 추진 중인 내용은 없지만 외부 상장 인력을 영입하는 등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그룹과 투자자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사업 성과 개선과 기업가치 개선이 당면과제다. 지난 2018년 11번가가 사모펀드(PEF) H&Q로부터 5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을 당시 H&Q의 지분율(우선주 18.18%)을 감안한 11번가의 기업가치는 약 2조7000억원이다. SKT가 11번가가 상장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3.5%의 최소 수익률을 보장해 준 점을 고려하면, 올해 기준 기업가치가 3조원에 달한다. 2023년에는 눈높이가 더 높아진다.
그러나 11번가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계속 커지는데 11번가의 거래액 성장률은 미미하다. 지난해 코로나로 폭발적인 시장 성장이 있었지만 11번가는 영업손실을 이어갔다. 쿠팡, 네이버, SSG닷컴 등 주요 유통 업체들은 대규모 자금유치와 투자를 거듭하며 공격적인 외형 확장에 나서고 있다. 11번가가 시장 내 입지를 키우기 위해선 반격이 필요한 시점이다. ‘쿠팡 모델’인 직매입 사업도 부분적으로 확장하고 있지만, 적자 규모가 커지다보니 공격적으로 확장하긴 쉽지 않다.
11번가 측에서는 ‘수익성 개선’ 전략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11번가의 영업손익 규모는 줄어들고 있다. 2017년 154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별도 법인으로 출범한 2018년엔 678억원으로 줄었다. 2019년 처음으로 흑자전환(14억원) 후 지난해 다시 적자전환(98억원)했다.
이커머스 산업 특성 상 쿠팡 등 공격적인 확장을 보여 온 상위 업체들의 적자 규모가 상당한 점을 고려하면 ‘내실 다지기’ 전략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시장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11번가의 전략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예단하긴 어렵다.
11번가 관계자는 “지금 당장 투자나 상장 관련 적극적으로 진행되는 부분은 없고 아마존과의 협업 등 단계별로 성과를 이뤄가면 자연스럽게 IPO도 성공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11번가가 최근 4~5년 간 수익성 개선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면서 체질 개선이 됐다는 점은 기업가치를 평가 받을 때 분명 긍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