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반대한 SK이노 배터리사업 분할
80% 찬성률 기록, LG화학 주총 데자뷰
반대·기권·중립 늘어났지만 …
연금 행사표와는정반대 결과만 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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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가치투자(ESG)와 스튜어드쉽 코드를 강조하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중점관리기업 지정, 공개면담, 경영진 대화 같은 가장 적극적인 경영 참여 방식은 다소 찾아보기 어려워진 반면, 주요기업들의 주주로서 주주총회 표결을 통한 주주권을 행사는 자주 나타난다.
최근엔 ‘주주가치 제고’라는 목적을 내세운 국민연금의 표결 방향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도출되는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고 있다. 국민연금의 소신있는 ‘투표권 행사’ 방침과 기관투자가, 외국인, 일반투자자와의 괴리감이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의 단일 2대주주인 국민연금은 지난 16일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배터리 사업과 석유개발사업을 분할하는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했다. 지배구조헌장 신설, 이사회 내 위원회 명칭 변경, 이익배당 관련 안건은 찬성했다.
국민연금은 이번 주주권 행사와 관련해 “(SK이노베이션의) 분할계획의 취지 및 목적에는 공감하지만, 핵심사업부문(배터리사업 등) 비상장화에 따른 주주가치 훼손 우려가 있어 반대표를 행사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의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임시주총 분할 안건의 찬성률은 80.2%를 기록했다. 지분율 약 8% 국민연금이 반대한 것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파악된다. SK이노베이션의 주주는 SK㈜ 33.4%, 외국인 약 23%, 소액주주(5%미만 기관투자가 포함) 27.5% 등으로 구성돼 있다.
국내 대기업 배터리 사업의 또 하나의 축인 LG화학도 지난해 배터리 사업을 분할했는데 당시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행사였다. 반대 사유 또한 SK이노베이션 사례와 마찬가지로 “분할 계획 취지에는 공감하나 지분가치 희석 등 주주가치 훼손이 우려된다”였다. 당시 분할안건 찬성률은 약 82%, 당시 지분구조는 ㈜LG 33.9%, 외국인 약 36%, 국민연금 10.3%, 소액주주(5%미만 주주 전체) 약 54% 등이었다.
국민연금은 LG화학 분할 직전 한 달여간 지분율 0.4% 규모의 주식을 매도하며 주가 하락을 이끌었지만, 주총에서 분할 안건이 통과되자 주가는 급등세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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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서도 국민연금은 인수자금 마련을 위한 정관마련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했으나 무사히 통과했다. 주주가치 훼손이 반대 사유였으나 안건 통과이후 대한항공의 주가는 상승세로 돌아섰다. 양사의 합병 작업은 여전히 진행중이지만, 국민연금은 최근 대한항공의 투자 목적을 주주권 행사가 가능한 ‘일반투자’에서 ‘단순투자’로 조정하며 향후 경영에 개입할 여지를 포기했다.
지난달 말 이후 열린 기업의 임시주주총회에선 국민연금은 대부분 기권 또는 중립 의결권을 행사했다. 동원시스템즈의 합병·정관변경·이사선임 안건, 솔루스첨단소재의 분할계획서 승인·정관변경,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이사선임 등 7건의 임시주총에서 연달아 기권·중립 표를 행사했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면서 해당 기업들의 안건들 모두 무사 통과하기도 했다.
사실 내부적인 검증 절차를 통한 주주권행사 방식에 이견을 달기는 어렵지만, 일반 투자자와의 괴리감이 커지고 있다는 점은 다소 우려스럽다는 반응도 있다. 주주가치 제고가 제 1의 목적이지만 ‘나홀로 반대표 행사’의 근거가 다소 빈약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ESG와 주주가치 제고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국민연금의 기조를 비쳐볼 때 기업의 의사결정에 대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하려는 목적으로 판단된다”며 “주주가치 제고라는 목적은 충분히 이해할만 하지만, 국민연금만이 동떨어진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례가 늘어난다는 점은 의사결정 방식의 합리성에 대해 재점검할 필요성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