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빠진 독에 물붓기'…IPO 인력 충원 중단하는 증권사들
입력 2021.09.24 07:00
    인력수혈 한창이던 證, 내부선 '채용 중단' 기조로
    업무량에 '집단 퇴사'…"나갈 사람 나가" 피로 호소
    남은 인력에게로 몰린 업무…한 사람이 한 딜 맡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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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쏟아지는 기업공개(IPO) 매물에 대응하려 인력 충원에 한창이던 증권사들이 채용을 중단하는 분위기다. 과도한 업무량과 스타트업으로부터의 러브콜에 인력들이 '집단 이탈' 수준으로 이직을 시도하며 내부적으로 수 년간 피로도가 쌓인 까닭에서다.

      IPO 실무진들이 이직을 감행하는 이유는 '과도한 업무량'이 꼽힌다. 입찰제안요청서(RFP)를 통해 기업가치산정(Valuation) 방식 관련 아이디어만 얻고 상장을 중도포기하는 발행사들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은 상장 직전의 기업들을 상대로 '컨설팅펌'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인력 대거이탈에 충원 계획까지 사라지면서 남은 IPO 인력들은 한 사람당 한 개의 딜을 맡기도 하는 등 업무가 과중되고 있다.

      1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부 증권사 내 IPO 부서들은 이전처럼 적극적으로 충원에 나서지 않고 있다. 최근 2~3년간 IPO 붐(boom)에 대응하기 위해 '인력 쟁탈전'이 일었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그간 증권사들은 IPO 인력을 대거 충원해왔다. 인베스트조선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비 올해 중순 각 증권사 내 IPO 부서 인력은 모두 늘었다. KB증권은 IPO 담당 인력이 34명에서 45명으로 늘었다. KB증권은 3개였던 주식자본시장(ECM) 부서를 4개로 나누는 등 발행사가 속한 산업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NH투자증권, 대신증권, 삼성증권, 미래에셋대우 등 대형 IPO 하우스들의 인력도 소폭 늘었다.

    • 숫자만 놓고 보면 증권사들의 인력 충원 열기가 여전한 듯 보이지만 속내는 다르다. IPO 담당 인력들의 집단 이탈이 이어지면서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

      먼저 상장을 염두에 둔 기업들이 IPO를 추진해 본 경험이 있는 인력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11번가는 추후 있을 상장을 위해 'IPO 추진팀'을 만들어 채용에 나섰는데, IPO 추진 프로젝트 업무를 진행해본 경험자를 우대한다고 밝혔다. 아직 RFP가 나오진 않았지만 상장 가능성이 높은 SK에코플랜트(前 SK건설)도 삼성증권 IPO 관련 부서 인력을 영입했다.

      아직 상장을 목표하기엔 이른 스타트업들도 IPO 추진 경험이 있는 실무자들을 채용 중이다. 해당 수요에 공급도 원활히 이뤄지고 있다. 오히려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고자 하는 IPO 인력들이 많아 '공급 과잉'도 일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모 증권사에서는 최근 한 개 팀에서 4명이 퇴사했고 그 중 3명이 스타트업으로 직장을 옮겼다. 스타트업 투자를 주도하는 벤처캐피탈(VC) 업계로의 이직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일부 증권사 IPO 부서 내에선 '나갈 사람은 나갔고, 현 인원으로 유지하자'는 기조가 나타나고 있다. 그간 뽑은 인력들이 줄줄이 이직을 감행하는 데 허탈감을 느껴왔다는 후문이다. 추가 채용 계획이 당분간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맥락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 등 타 기업으로의 이직이 늘면서 IPO 부서 내에서도 피로도가 쌓였다"라며 "나갈 사람은 이제 다 나갔고, 남은 직원들만으로 딜(Deal)에 대응하자는 기조로 바뀐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증권사 IPO 인력들의 이직 결심에는 과도한 업무량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지적이다. 특히 3~5년차 주요 실무진 단에서 '내 삶이 없어진 것 같다'라는 푸념이 늘었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IPO 열기를 틈타 재무적투자자(FI)의 투자금 회수(Exit) 목적의 IPO가 늘고 있다. 사모펀드(PEF)가 대주주인 발행사 상장의 경우, 기업가치 산정식에 대해 FI를 설득하는 것이 상당히 까다롭다고 전해진다. IPO가 성사되면 다행이지만, 투썸플레이스처럼 중간에 IPO가 불발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경우 주관사가 가져가는 수수료는 없다.

      이들은 일종의 '컨설팅펌' 역할도 하고 있다. 아직 상장 단계는 아니지만 상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재무 컨설팅 등을 제공한다. 미래의 고객이 될 수 있는 만큼 IPO 추진 전부터 공을 들이는 셈이다. 

      증권사의 인력 충원 의지가 사라지면서 남은 IPO 인력들로 쏠리는 업무량도 우려되는 대목으로 꼽힌다. 한 명의 실무진이 한 개의 딜을 맡아 수행하는 경우도 다분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다른 증권사 임원급 관계자는 "IPO부서가 노동량에 비해 '서프라이즈' 급으로 보상을 해줄 수 있는 조직도 아니다보니 나간다는 직원들을 붙잡기가 쉽지 않다"며 "거래 하나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중견급 실무자는 구하기가 아예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