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자산가들도 공모주 투자 신중모드 돌입...청약 흥행 희비 갈릴 듯
입력 2021.10.15 07:00
    공모주 청약 결과 극과 극...원준·지아이텍 등 테마 따라 ‘복불복’
    공모주 투자자들, 최근 투자 신중...옥석 가리기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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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얼마 전 80을 바라보시는 한 고액자산가가 찾아오셔서 공모주 투자에 대한 나름의 분석 결과를 여쭤보시는데 적잖이 놀랐다. 서울대 졸업 및 전문직 은퇴 후 취미로 공모주 투자를 시작하셨는데 각종 유튜브, 신문 기사, 블로그 등을 종합해 나름의 공모주 투자 원칙을 세워 놓으셨다. 웬만한 전문 투자가 이상의 인사이트를 가지고 계셨다.” (한 강남권 프라이빗뱅커 팀장 A씨) 

      “요새 고액자산가들은 공모주 투자 시 ‘이게 될 것 같냐’는 질문보다는, ‘내 생각엔 이 종목이 잘 될 것 같은데 맞느냐’라고 물어본다. 백화점 쇼핑 하듯 여러 PB센터, 증권사, 은행 등을 다니며 투자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종합해서 최종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서울 한 프라이빗센터 차장 B씨)

      공모주 투자 시장에서 청약 흥행 결과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인기가 많은 테마주 위주로 여전히 1000대 1이 넘는 청약경쟁률이 나오는가 하면, 두 자릿수도 채우지 못한 공모주들도 속속 눈에 띄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공모주 시장을 이끌어온 고액자산가들의 투자 성향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전처럼 '일단 최대한 받자' 보다는 각종 루트를 통해 신중하게 종목을 고르고 따지는 고액자산가들이 많아지면서 공모주 투자 시장 역시 ‘신중론’이 퍼지고 있다는 평가다. 

      13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9월 이후 공모주 시장에서는 '따상'(시초가가 공모가의 두 배, 이후 상한가)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업종에 상관없이 공모주 투자는 무조건 수익을 낸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분위기가 바뀌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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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이 같은 현상은 공모주 시장의 한 축을 이끄는 고액자산가들의 투자 방식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스스로 주식 시장을 공부하는 ‘분석형’ 고액자산가들이 늘어나면서 일반 투자자들보다도 앞서 공모주 시장의 리스크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PB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공모주 시장 분위기가 좋다보니 종목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도 청약하는 고액자산가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주로 2차 전지, 수소 경제와 같이 업사이드가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테마주 위주로 골라서 투자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공모주 투자는 발행시장에 속하는 만큼 유통시장인 전체 주식시장의 향후 전망과 직결되어 있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우려, 미국 국가부도 언급 등 전반적인 국내 주식시장 전망은 좋지 못한 상황이다. 

      공모주 투자 수익률 역시 이전보다 저조한 결과를 보이고 있다. 3분기 현대중공업, 크래프톤, 카카오뱅크 등 대어급 공모주들이 몰려 있어 누적 공모금액은 이미 작년 같은 기간 보다 4배를 웃돌았다. 

      하지만 공모가 대비 수익률은 분기별로 감소 추세가 확연하다. 지난해 4분기 61.27%에 달하던 공모주 평균 수익률은 최근 48.97% 까지 내려왔다. 같은 기간 '따상' 비율 역시 최고 20%에서 최근 15%로 4분기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고액자산가들은 공모주 시장이 지금처럼 주목받던 시기 이전부터 꾸준히 투자를 이어온 경우가 많다. 마치 씨클리컬 산업처럼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과열과 냉각이 반복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체득한 경우가 많다는 평가다. 이들이 신중한 자세로 돌아섰다는 건 공모주의 '다운 싸이클'이 시작됐다는 신호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런 장에서는 '리스크 관리'가 결국 수익률로 되돌아온다는 게 복수 시장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공모주 시장 하락기 초입엔 주로 분석적인 성향을 가진 30대 후반~40대 초반의 남성 직장인들이 과도한 자기 확신을 가지고 공모주 투자에 뛰어들었다가 손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후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공모주 투자는 자산가들과 여성 주부들의 쏠쏠한 가욋수입 수단이 돼왔다"며 "수십 년 동안 이들이 쌓아온 직감적인 투자 노하우가 안정적인 수익률로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공모주 투자업계의 관계자는 “수십억 원의 자산을 가지고 한번에 8억~10억 정도는 태워 청약을 받을 수 있는 고액자산가 투자자들은 대부분 ‘따상’에 대한 욕심보다는 당일 매도 원칙을 가지고 있다”라며 “무리한 수익률을 노리는 일부 투자자는 신용대출 등 유동성 조달 비용조차 건지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