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대란의 빅테크들…생존 조건은 '혁신' 보다 '대관'
입력 2021.10.21 07:00
    네이버·카카오·쿠팡·배민 정조준
    빅테크 사업확장 제동 건 정부
    대관역량이 명운 갈랐던 국감
    대관인사 영입행보 본격화 예상
    불확실성으로 밸류에이션 영향 우려
    연쇄 상장실패 전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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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혁신보다 대관 역량이 중요한 시기가 오고 있다. 특히나 플랫폼 확장성을 무기로 사업 규모를 키워온 빅테크들은 국정감사를 계기로 본격적인 규제 위협에 직면했다. 창업자·경영진이 각 부처 증인으로 불려나가는 동안 기업은 대관 인력 확충에 나서며 장기전을 대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임기 중 마지막 국정감사에선 기업인을 국감장에 불러 호통 치는 모습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10대그룹 총수가 아니라 네이버·카카오·쿠팡 등 온라인 플랫폼 기업으로 대상이 바뀌었다. 이들의 시장 내 입지와 영향력이 기존 재벌들을 넘어서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혁신과 성장'의 아이콘으로 통하던 기업들이다. 팬데믹 이후 디지털 전환 가속화는 소프트웨어(SW) 역량에 강점이 있던 플랫폼 기업의 확장성에 날개를 달아줬다. 외형은 물론 실적도 큰폭으로 개선하며 시장의 지지를 받았다. 1년도 안 돼 주식시장 시가총액 순위를 줄줄이 갈아치울 수 있었던 배경이다. 역대 최고 수준의 유동성, 넘치는 돈에 너그러웠던 투자자들, 플랫폼 기업에 프리미엄을 부여했던 증시 여건 등이 맞물렸다. 

      잡음은 시장을 장악한 빅테크 기업들이 하나둘씩 수수료를 올리거나 유료 시스템을 도입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플랫폼의 성장은 스타트업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시장 규모를 키우는 데 일조했지만 무분별한 영역확장에 따른 갑질 및 골목상권 침해 논란도 함께 야기했다. 

      업계에선 규제 이슈가 장기전이 될지가 관심사다. 국내 규제 논의는 국정감사와 대선정국을 앞둔 정치적 이슈와 맞닿아있다는 점에서 이 시기만 지나면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있다. 다만 규제 공감대는 국감으로 집중조명 받기 이전부터 오랜 시간 축적돼왔다는 점에서 단기에 그칠 이슈는 아닐 것이란 관측이 많다. 2년 전 타다 금지법으로 운영이 금지된 '타다 사태'를 기점으로 관련논의에 불이 붙었고 잇따른 안전사고 발생으로 노동문제를 야기했던 쿠팡과 배민도 이에 일조한 측면이 있다. 

      빅테크에 대한 규제가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추세가 되면서 '지금부터가 진짜일 수 있다'는 전망도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불공정거래 방지, 개인정보 보호 등을 위해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에 나섰다. 공정과세를 위한 디지털 과세도 추진 중이다. 중국에선 시진핑 주석이 "현대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내걸고 기업 강력통제에 나섰다. 글로벌 초대형 플랫폼 본고장인 미국에선 최근 플랫폼 규제를 위한 6개 법안을 하원 법사위에서 통과시켰다. 

      미국 연방과 주 정부들이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기업 페이스북을 상대로 제기한 반독점 소송은 법원 기각에도 불구,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분석이다.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페이스북이 소규모 IT 신생기업을 매수해 시장 경쟁을 저해했다고 보고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매각할 것을 법원에 요청했다. 당시 외신은 "온라인 플랫폼의 지배력에 대네한 미국 내 우려를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각 기업들은 확실한 규제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건 미국의 영향을 받아 국내도 비슷한 수준으로 플랫폼 조이기에 나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미국의 이 같은 분위기는 국내에서 그간 지지부진했던 규제 논의가 하반기 급물살을 타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  

      다만 국내에서 진행 중인 규제 논의는 미국과 다르게 예측이 불가하다는 점이 변수다. 현재 국내 규제 논의는 미국과 비교해 다분히 감정적이고 여론에 편승하는 경향이 짙다는 목소리가 있다. 규제 논의 자체는 지난 수년간 이어져 왔으나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수치의 자료는 제시된 바 없다. 선거철을 앞두고 미국과 중국이 깔아준 판에 여론을 등에 업어 섣불리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혁신을 부르짖거나 유니콘 탄생을 축하하며 한 마디씩 거들던 정치권도 이젠 성난 여론에 편승해 잔소리를 보태는 상황이다.

      국내에서 부상하는 규제 논의는 뒷받침되는 근거가 불명확하고 구체적인 방향도 모호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물론 성장가도를 달리는 대다수 플랫폼 기업 입장에서 대처 자체가 쉽지 않은 셈이다. 그러니 플랫폼 기업 입장에서도 혁신보다는 '관(官)'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에 골몰할 수밖에 없다는 푸념이 있다. 

      실제로 이번 국감은 기업들의 대관역량 성적표도 함께 드러냈다는 평가다. 국감에 앞서 사업 철수 및 상생자금 출연 등 적극적인 대응에도 불구하고 규제 강화 여론의 핵심으로 떠오른 곳은 카카오였다. 대관 업무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번 국감은 카카오로 시작해 카카오로 끝날 것"이란 말이 공공연했다. 

      반면 네이버는 고강도 규제 여론에도 불구하고 국감을 비교적 조용히 지나가는 분위기다. 플랫폼 규제 이슈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은 "네이버만큼은 국감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공식화하기도 했다. 노동환경 분야에선 잡음이 있었으나 사업 자체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다. 

      속도전보다는 리스크 대비에 초점을 맞춰 대관에 특히 공을 들여왔다는 설명이다. 과거 부동산 중개 플랫폼 진출 과정에서 한 차례 논란을 겪은 이후 본격적으로 대관 담당자 영입에 나섰다. 그룹사 공익재단을 통해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 이해관계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곳들과 접점을 늘려오기도 했다. 

      기업 대관 담당 한 관계자는 "네이버의 확장전략은 '카카오가 한 발짝 앞서나갈 때 등 뒤에 숨어 반 발짝씩만 가자'로 요약된다. 몸집을 키우기 위해선 대관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기조로 리스크에 대비해온 면이 있다"며 "M&A를 통해 경쟁자를 집어삼키는 대신 지분 교환을 통해 우군을 늘리는 방법으로 접근한 것도 결과적으로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유리한 방법이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 기업들은 사실상 장기전에 돌입했다. 운 좋게 국감 이슈를 잘 비껴간 기업이라도 내년 정권이 바뀔 경우까지 장담할 수 없다보니 대관조직을 탄탄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데 절감했다. 

      현재까지는 변호사나 대외홍보 담당자 등 보유 인력으로 대관 업무를 최대한 활용해왔으나 국감이 마무리되면 본격적인 대관 담당 영입 경쟁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다수 플랫폼사들이 보좌관 동향을 특히 주시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 이전에 주된 정부 국회 규제대상이었던 이동통신사 대관 담당자들을 영입하려는 시도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에 업계에선 "혁신하려면 대관부터 해야 하는 것이냐"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크다. 실제 국내 빅테크들은 인재 영입 소식에 있어 관(官) 출신 인사의 이동 소식이 특히 조명받아온 것과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서 플랫폼 사업 하려면 '차제에 대관 인력부터 치밀하게 육성해야 한다'는 기조도 이미 형성된 분위기다. 

      해외 위주로 사업을 전개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업들은 '국내는 숨고르기, 해외는 공격확장'의 네이버 모델이 결과적으로 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학습했다. 

      IT업계 관계자는 "카카오는 해외사업 비중이 5%에 불과, 사실상 내수 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최대한 활용한 기업이었다. 반면 네이버는 해외에선 공격적으로 M&A하더라도 국내에선 금융업 간편결제 대출 및 스마트스토어 판매자나 영세상인들에 저리로 대출해주는 등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싸우겠다는 것을 보여준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네이버처럼 해외 사업자와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쪽이 사업전개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피해를 보는 쪽은 결국 소비자"라고 지적했다. 시장 각지에 분산된 데이터를 플랫폼 안에 묶어 서비스 개선에 활용할 역량이 있더라도 기업들이 실제 활용은 금기시된 탓이다. 

      사업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기업가치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적자임에도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해줄 수 있었던 성장성이나 확장성에 제동이 걸렸다. 인플레이션 우려와 함께 유동성 회수 시점이 임박했다는 시장의 우려도 투자 심리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나스닥에 100조원 규모로 상장한 쿠팡이 사실상 막차였다는 인식도 확산 중이다. 그리고 쿠팡의 주가는 상장 직후 때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실제로 마켓컬리와 오아시스, SSG닷컴 등 커머스 후발주자의 나스닥 진출 가능성은 더이상 언급되지 않고 있다. 상장을 통한 회수 기회가 줄어드는 만큼 창업 시장 자체가 활력을 잃게 될 거란 우려도 적지 않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기업가치를 최대로 책정받기 위해 그간 플랫폼을 앞세워 왔던 기업들이 이젠 오히려 플랫폼 꼬리표를 원치 않는 상황이 됐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유동성 장세로 큰 수혜를 입었지만 금융환경이 더이상 우호적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다. 투자유치 시 밸류에이션 책정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고 상장 실패 등 연쇄효과를 일으킬 것이라 본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