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배는 ‘기본’…대박 사례 쏟아낸 PEF·VC 업계
호황의 그림자…일은 많은데 성과보상은 미미
차라리 ‘돈’을 택한 주니어들
증권사·회계·로펌 떠나 VC·스타트업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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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사모펀드(PEF)와 벤처캐피탈(VC) 등으로 대표하는 재무적투자자(FI)들은 올 한해 초호황으로 비쳐질만큼 만족스러운 한 해를 보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정책 자금이 쏟아졌고 풍부해진 시장의 유동성은 PEF의 펀드 결성은 물론, 투자금회수(엑시트)에 최적의 환경을 조성했다.
주식시장은 3분기에 접어들며 가파른 성장세가 다소 잠잠해지긴 했으나 코로나 이전 수준을 완벽하게 회복했다. 시류에 편승한 증권사들의 실적도 고공행진했다. M&A, 주식시장 등 자본시장이 활기를 되찾으면서 법무법인·회계법인 같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업종들도 상당히 바쁜 한 해를 보냈다.
동시다발적으로 호황을 맞은 자본시장의 인력난은 점점 심화했다. 기업공개(IPO)로 소위 대박을 친 우리사주 직원들, 성공적인 엑시트로 일반 직장인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인센티브를 손에 쥔 FI의 사례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기존 고(高)연봉의 안정적인 직종으로 평가받던 업종들이 외면 받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일은 쏟아지지만 개별적인 성과보수와 연계되지 않는 시스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주니어급 인력들 사이에서 나타난 자본시장의 새로운 풍속도이다.
올해엔 대형 PEF 운용사 및 일부 VC를 중심으로 원금 대비 10배 이상의 높은 수익률을 거두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8년만에 잡코리아 투자금 회수에 성공한 H&Q, 야놀자의 지분 일부를 소프트뱅크에 매각한 스카이레이크, 에이펙스로지스틱스와 두산공작기계의 경영권을 매각한 MBK파트너스 등이 대표적이다. 유례없는 주식시장의 호황에 하이브(舊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IPO에 성공하자 스틱인베스트먼트를 포함한 투자자들의 수익률은 고공행진했다. 공모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크래프톤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PEF업계 한 대표급 관계자는 “시장의 막대한 유동성은 물론이고, 세컨더리 시장의 활성화, 코로나로 인한 일부 업종의 실적개선 등을 바탕으로 투자금 회수에 성공한 PEF들이 상당히 늘어나며 PEF 시장은 역대급 호황을 맞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주식시장이 활황세를 보이면서 IPO를 통한 엑시트에 성공한 VC들 또한 굉장히 만족스러운 한 해를 보냈다”고 말했다.
PEF와 VC들의 이 같은 성과 이면에는 코로나로 인한 주력 사업군의 변화가 있었다. 플랫폼, IT업종으로 대표하는 스타트업 등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고, 해당 업종의 성장이 가시화하면서 전문인력들의 쏠림 현상도 심화했다.
즉 성장산업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큰 PEF와 VC와 같은 투자회사, 사업 초기에 합류해 수년 내 막대한 인센티브를 기대해 볼만한 스타트업 기업들이 그 대상이다. 인력유출이 심화하고 있는 업종은 아이러니하게도 초호황을 맞은 금융회사와 회계법인, 법무법인 등이다.
최근 국내 한 대형증권사에선 IPO 관련 실무 인력이 대거 유출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80년대 중반 출생인 한 실무자는 직접 VC를 설립했고, 3~4명의 인력들은 신기술금융회사를 차렸다. 올해 상장한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국내 증권사 IPO 실무를 담당한 과장급 인력에 연봉 1억원 이상을 약속한 것이 회자되기도 했다.
또 다른 국내 한 대형 증권사는 IPO 부서 인력의 상당수를 회계법인 출신으로 구성했다. IPO 실무 인력들의 품귀현상이 장기화하면서 짜낸 고육지책이다. 영입 과정에선 연봉 수준을 상당히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 증권사는 기본적으로 연초 계획한 목표치 이상을 달성해야 성과급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인데, 목표치를 못 채우면 사실상 성과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올해는 호황을 맞아 그나마 다행이지만 내년부턴 아무도 상황을 장담할 수 없다”며 인력이동의 배경을 설명했다.
금융회사의 인력이동이 과거에 VC와 같은 신생 투자회사에 집중됐다면, 최근엔 VC 업계 또한 포화 상태에 다다르며 상장을 앞둔 스타트업으로 향하는 분위기도 조성됐다. 과거 금융공학을 포함한 이공계 출신 인력들이 선호하는 구직 기업이 금융회사였다면 이젠 IT 대기업·스타트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는 5~10년차 이상의 경력직은 물론이고 신입 직원에도 모두 해당한다.
국내 자산운용사 한 관계자는 “주식을 운용하고 펀드를 설계하는 등의 업무에서 과거 이공계 출신 인력들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으나 이젠 공대 출신인 점만으로도 운용사 이외에 훨신 높은 연봉과 인센티브를 기대할 수 있는 IT 업종에서 인정받는 추세”라며 “운용사에 대한 규제는 많아지고 회사 자체 규모도 커지다 보니 성과보상 체계에 개인 역량에 차등을 두겠단 전략보단 단순한 비즈니스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도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고연봉 직종으로 꼽히던 회계법인과 법무법인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하지만 이에 걸맞는 성과보상 체계가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실제로 회계법인 업계는 인력전쟁이 한창이다. 신외감법 시행 이후 빅4 외에도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중소·중견 업체와의 경쟁은 물론, 사모펀드·금융회사·투자회사 등에서 회계사를 찾는 수요가 크게 늘다보니 빅4 회계법인 퇴사율도 크게 치솟았다.
국내 회계법인 한 관계자는 “신규인력들은 감사부문에서 경력을 쌓을 수 있는데 문제는 M&A 같은 딜(deal) 경험이 있는 실무 경력진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딜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5~8년차 인력들이 일당백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로펌 업계에선 외국 변호사가 가장 귀한 몸이 됐다. 컨설팅업계의 컨설턴트 수요가 급증했고, 마찬가지로 IT·스타트업 업종으로의 유출도 심화했다. 우리나라가 아닌 해외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빈번하다.
로펌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인력들 상당수가 스타트업, IT업계 또는 주식을 다루는 금융회사 또는 미국 현지 등으로 자리를 대거 옮기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딜은 많은데 사실 3D 업종처럼 업무강도가 세다 보니 굳이 한국 시장을 고집할 유인을 찾기도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