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다그룹 이슈도 9월만큼 위협적이지 않아
코스피 순이익 전망치 6월 기점으로 급락 추세
국내외 돈줄 조여지며 유동성 장세도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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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이 하나의 변수이긴 하죠. 그런데 요즘 헤드라인처럼 모든 게 인플레이션 우려 탓은 아닙니다. 코스피는 오히려 유동성 축소 우려와 실적 피크아웃(고점 후 하락) 우려가 훨씬 크다고 봅니다. 3개월 후 쯤 돌아보면 '괜히 인플레이션 걱정했네'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한 중견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
코스피가 다시 박스피에 갇혔다. 4000까지 무정차로 돌진할 것 같았던 지수는 3300선을 몇 차례 넘나드는 데 그쳤다. 오히려 최근엔 지수가 6개월만에 3000선 아래로 밀리며 일부 투자자들을 공황상태로 몰아넣기도 했다. 코스피지수가 2900과 3300사이에서 새로운 박스권을 형성하며 지루한 공방을 당분간 이어갈 거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증시 약세의 배경으로 최근 가장 많이 지목되는 게 인플레이션 우려와 중국 헝다그룹 사태다. 최근 유가와 천연가스, 철광석 가격이 급등하며 글로벌 생산자 물가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헝다그룹 사태는 중국 부동산금융 경착륙 우려를 자극했다. 최근 중국 증시가 약세를 보인 배경이다.
그러나 증시 전문가들은 코스피 약세와 관련, 보다 근본적인 이유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분기를 기점으로 코로나19에 따른 기저효과가 모두 소멸됐고, 지나치게 빨리 커진 실적 기대감이 제자리를 찾아갈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이 역효과를 내기 시작하며 유동성 축소가 불가피한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점도 '신(新) 박스피'의 핵심 배경으로 지목된다.
14일 발표된 미국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5.4% 상승해 예상치 5.3%를 소폭 상회했다. 그러나 에너지 등 변동성이 심한 항목을 제외한 '근원 CPI'는 4.0%로 예상치와 부합했다. 근원 CPI는 지난 7월 4.5%로 최고점을 찍은 이후 시장의 예상 범위 안에서 일단 하향 추세다.
3분기 CPI의 급등은 사실상 예정된 수치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해 3분기는 코로나19 글로벌 펜데믹(대유행) 이후 멈춰섰던 경제가 막 다시 돌아가시 시작했던 시기다. 여기에 일상 회복이 가속화하며 수요는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는데, 공급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수 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글로벌 유동성도 사상 최고 수치를 경신하며 돈이 풀릴 대로 풀린 상태라 물가가 오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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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발표된 미국 생산자물가지수(PPI) 역시 시장에 안도감을 줬다. 9월 미국 PPI 상승치는 전월대비 0.5%로, 시장 예상인 0.6%를 하회했다. 특히 에너지 등을 제외한 근원 PPI는 0.2% 상승해 시장 전망치 0.5%를 크게 밑돌았다. 이에 힘입어 장중 미국 S&P지수는 4400선을, 나스닥지수는 1만5000선을 회복하기도 했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유럽의 바람이 줄어 풍력발전이 여의치 않았고 중국-호주 분쟁 등 예측할 수 없었던 사건이 잇따른 상황에서 날씨까지 추워지자 에너지발(發) 원자재 가격 폭등이 온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당분간은 어쩔 수 없겠지만, 내년까지 지속될 거라고 보기는 조금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압둘 자바르 이라크 석유 장관이 13일 "유가가 더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발언하고, 러시아도 2035년까지 액화천연가스(LNG)를 증산하겠다고 밝히며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잠시 안정세를 되찾기도 했다.
헝다그룹 역시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가 증시로 파급됐던 9월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는 평가다. 오는 23일 유예기한이 만료되는 1억1900만달러(약1400억원) 규모 달러채권에 이자를 지급하지 않으면 디폴트가 되지만, 중국 정부가 '유동성은 공급하되 불이익은 주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며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는 분석이 많다.
그럼 코스피는 대체 왜 이런 것일까. 투자업계 최전선의 운용역들은 한 목소리로 '피크아웃 우려'를 지목한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코스피 상장기업 예상 이익 추정치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지수 역시 이를 선반영하며 따라 올랐다.
7월을 기점으로 코스피 기업 이익 증가 전망치는 확연하게 꺾였다. 퀀트와이즈에 따르면, 3개월 전 대비 코스피 12개월 선행 순이익 추정치 변화율은 6월 고점을 찍은 뒤 급격히 하락했다. 코스피가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급등 랠리를 마감한 것도 이 시점이다.
올 초만 해도 3분기부터는 경기 회복세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거라는 기대감이 금융시장을 지배했다. 백신 접종과 함께 일상이 돌아오고, 산업 전반이 다시 활기를 띌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 6월, 미국의 2021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7%로 높여 잡기도 했다. 불과 반년 전 4%대로 추정한 것과는 큰 차이였다.
막상 하반기가 되자 델타변이의 확산, 그리고 물류대란이 빚은 인플레이션 우려로 성장에 대한 기대감은 대부분 퇴색됐다. 미 연준은 지난 9월 올해 성장 전망치를 5.9%로 수정했다. 글로벌 경기가 예상보다 느리게 회복되며, 수출 대기업이 많은 국내 경기에도 영향을 줬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부진이 대표적이다.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삼성전자 4분기 실적 전망을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있다. 목표 주가도 연이어 낮추는 추세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삼성전자에 대한 실적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았던 게 사실"이라며 "외국인의 매도세가 집중되며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하자 실적에 맞춰 목표 주가를 수정하는 모양새가 맞긴 하다"라고 말했다.
약세장에서 아래를 받쳐줄 '유동성의 힘'도 이전같지 않다. 당장 미국이 부채한도 협상에서 부침을 겪는 등, 11월 중순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계의 중앙은행'이라고 불리는 미국 연준이 돈 풀기를 멈추면 코로나19 이후 금융시장을 덮은 유동성의 물결이 잦아들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한국은행은 더 강하게 돈줄을 죄고 있다. 7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한국은행은 11월 추가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금통위는 10월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동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금융완화와 관련, '점진적 조정'을 '적절히 조정'이라고 바꿨는데, 채권시장에서는 이를 11월에 추가 인상이 확실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하락장에서 코스피 신용잔고가 2조원 이상 줄었는데, 대출 규제가 강하게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신용잔고가 이전 수준으로 올라오지는 못할 것"아라며 "지난해 3월 이후 지수 상승을 뒷받침했던 '동학개미들의 매수 행렬'이 재연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