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사양산업' 우리금융 잔여지분 매각, '의외로' 북적이는 까닭은
입력 2021.10.25 07:00
    2~3곳 전망했는데 뚜껑 열어보니 18곳 참여
    시장금리 급등하고 배당 규제 사라진 덕분
    5대 금융지주 경영 참여할 '마지막 기회' 희소성도
    2016년 과점주주 수익은 크지 않아...내부 변수도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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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예금보험공사(예보)가 보유한 우리금융지주 잔여지분 매각 거래가 '의외의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당초 '성장동력을 잃은 사양산업'이라는 평가에 잘해야 사모펀드(PE) 2~3곳 정도가 관심을 보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무려 18곳의 투자자가 투자의향서(LOI)를 접수했다.

      흥행 배경으로는 최근 시장금리의 급등과 배당 기대감이 꼽힌다. 희소성도 거론된다. 소위 '5대 대형금융지주' 중 중소형 기관ㆍ외국인 투자자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은 곳은 우리금융이 유일하다. 우리금융 내부에 아직 변수가 남아있는데다, 입찰 참여에 큰 부담이 없는만큼 허수(虛數)도 상당량 섞여 있을 거란 관측이다.

      예보는 지난 18일 LOI 제출자에 투자설명서(IM)를 발송하고 실사 기회를 부여했다. 실사는 한 달간 이뤄지며, 최종 입찰제안서는 내달 18일 접수를 마감한다.

      현재 우리금융 잔여지분 매각에 LOI를 제출한 투자자는 다양하다. KT, 호반건설 등 일반 기업군에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대만 푸본금융 등 기존 과점주주들도 참여했다. 글랜우드 PE, 유진 PE, PS얼라이언스 등 사모펀드와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 등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금융사주조합 역시 LOI를 제출하고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9월 예보가 매각 계획을 밝혔을 당시만 해도 금융권에서는 '시장 수요가 없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20곳 가까운 투자자가 참여해 매각 대상 지분 7220만여주(지분율 10%)의 최대 6배에 달하는 4억5000만여주 규모 LOI를 제출하자 놀랍다는 분위기다.

    • 금융권 전문가들은 우리금융지주를 둘러싼 외부 환경 변화가 핵심 흥행 요인이라고 분석한다.

      예보가 우리금융 잔여지분 매각을 발표한 지난 9월 초만 해도 국고채 10년물 시장금리는 1.94% 수준에 그쳤다. 8월 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지만, 시장 예상 범위 내였다. 

      그러나 이후 글로벌 인플레이션 우려가 부각한데다 연내 추가 기준금리 인상이 확실시되며 '쇼크' 수준으로 금리가 급등했다. 국고채 10년물은 최근 한때 2.44%까지 치솟으며 최근 한 달새 50bp(0.5%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시장금리 상승은 은행 실적에 호재다. 순이자마진(NIM)이 오르며 주수익원인 이자수익이 늘어나는 까닭이다. 실제로 21일 가장 먼저 3분기 실적을 발표한 KB금융지주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의 올해 3분기 은행 NIM은 1.57%로 전년동기 대비 5bp나 개선됐다. 올해 주요 대형금융지주의 3분기 누적 순이익은 지난해 연간 순이익과 맞먹거나 넘어설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배당 규제를 지난 6월 해제하고, 신임 금융위원장이 금융지주의 주주환원정책을 지지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나선 점도 호재로 꼽힌다.

      올해 연말 기준 대부분의 금융지주가 20%로 제한됐던 배당성향을 25% 이상으로 되돌릴 전망이다. 2016년 사모펀드 등이 과점주주가 되며 높은 배당성향을 보여온 우리금융은 더 높은 배당성향을 보일 거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말 기준 우리금융의 배당성향을 최소 26%로 내다보고 있다. 이후 별다른 규제가 없다면 2023년 기준 배당성향이 31%까지 높아질 거란 전망까지 나온 상태다. 이 경우 현 주가수준이 지속된다면 기대 배당수익률이 8%대로 높아진다.

      예보는 이번 잔여지분 매각에서 4% 이상의 지분을 취득한 투자자에게 사외이사 추천권을 부여하겠다는 계획이다. 농협금융을 포함한 국내 5대 대형금융그룹 중 일반 기관에 사외이사 추천권이 열려있는 곳은 우리금융이 유일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KB금융이 칼라일, 신한금융이 어피너티와 베어링에게 투자를 받으며 사외이사 자리를 부여했는데, 이는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물 밑 접촉으로 이뤄진 '닫힌 딜'이었다"며 "이번 잔여지분을 매각하고 나면 예보가 최대주주 자리에서 내려오는 상황에서 이번 입찰이 우리금융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란 희소성이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에 예정대로 10% 이상 지분을 매각하고 나면 예보는 5%대로 지분율이 줄어든다. 최대주주 역시 9.8%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으로 바뀐다. 2019년 발표된 예보의 매각 계획에 따르면, 이번 매각 이후 잔여지분은 블록세일(대량매매) 방식으로 정리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사외이사 추천권은 보장되지 않는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주요 대형금융지주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인만큼 한 번 보기나 하자는 허수도 상당수 섞여있는 것으로 본다"며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매수자 실시를 모두 허용하겠다는 게 예보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우리금융 내부 상황은 매각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행정소송 1심에서 승소하긴 했지만,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여전히 징계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다. 권광석 우리은행장은 두 번째 1년짜리 임기가 조만간 만료돼 장기 비전을 수립하기가 어려운 처지다. 올해 내부등급법이 적용되면 지주의 자기자본비율이 급등하며 인수합병(M&A) 여력이 생긴다곤 하지만, 막상 시장에 '살 만한 비은행 매물'이 씨가 말랐다는 점도 이슈다.

      2016년 지분을 취득한 과점주주들의 경우, 배당을 제외하면 주가 상승에 따른 투자 수익은 그리 크지 않았다. 당시 IMM PE, 키움증권, 한화생명, 한국투자증권 등은 평균 1만1700원에 우리은행 지분 29.7%를 인수했다. 지난해 3월 우리금융 주가가 6300원까지 급락하며 이들 주주의 지분 가치는 '반 토막' 나기도 했다. 52주 신고가를 기록하고 있는 현 시점을 기준으로 해도 주가 상승률은 5년 간 8%에 불과하다.

      이번 우리금융 잔여지분 인수전에 참여한 한 투자사 관계자는 "시중에 유동성이 어마어마하게 풀린 상황에서 글로별 변동성은 커지다보니 안정적인 투자처에 관심이 쏠린 것 같다"며 "의외의 복병으로 주목받고 있는 두나무의 경우, 최근까지 실명계좌 이슈가 있었다보니 '신분 역전'에 대한 욕구도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