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로 되돌린 대출규제…침묵하는 금융관료들
입력 2021.10.25 07:00
    IMF 시절 대출총량규제 다시 부활
    금융선진화는 어디로 가고 다시 '관치'
    금융관료들 침묵하고 '대출이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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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검찰 권력보다 위에 있는 권력이 금융위 권력이다”

      현 정부가 검찰개혁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 한 금융당국 고위관료와 만난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다. 그 자리에서 무소불위 검찰보다 더 막강한 권력이 금융위 권력이란 말이 바로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출총량규제’를 보고 있자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이 난다.

      해당 관료가 “검찰 권력보다 금융위 권력이 더 강력하다”라고 말한 배경은 이러하다. 검찰 권력은 고위관료, 대기업 총수 등 개인의 비리와 관련되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소권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때론 정권을 흔들기도 하지만 나라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사안은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금융위가 갖고 있는 권력은 국가의 금융 시스템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어느 권력자가 금융위를 흔들려고 해도 금융관료가 해당 정책을 실행할 경우 “국가 금융 시스템의 위기를 초래한다”라는 말 한 마디면 정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금융 시스템이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단 의미다.

      그런 면에서 현재 금융위원장이 추진하는 ‘대출총량규제’는 국민 피부에 와닿는 영향력이 검챌개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이미 청와대 청원에는 해당 규제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는 사연이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금융위원장의 ’가계대출 부실 우려가 국가의 금융 시스템 위기를 초래한다’는 경고에 일사분란하게 대출규제가 실시되고 있다.

      가계대출 부실 우려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단군 이래 최대규모 가계부채란 수식어가 따라 붙을 정도다. 올 2분기 가계대출 규모는 1705조3000억원에 달하고, 지난해 연간 가계부채 증가율은 9.2%에 육박한다.

      그러나 가계대출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초저금리와 맞물려 부동산, 주식 등 자산가격 상승 속에서 빚내서 투자하는 소위 ‘영끌’이 가계대출 증가의 주원인이었다. 현재의 대출규제도 이러한 ‘영끌’ 투자를 막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즉 부동산 정책만으로 뛰는 집값이 잡히질 않으니, 금융정책을 통해서 부동산 가격을 통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내년 대선을 앞둔 시기적 요인도 하나로 분석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금융정책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금리 인상과 대출규제가 있다”라며 “그 중에서도 대출총량규제는 최후의 보루다”라고 평가한다. 한마디로 부동산 잡기 위해 이러 저러한 정책을 다 써봐도 안되니 극약처방으로 나온 것이 ‘대출총량규제’란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러한 대출총량규제가 비단 이번만의 일은 아니었다. 2006년에도 금감원이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 한도를 제한하는 구두 창구지도에 나선 적이 있다. 당시에도 각계에서 일제히 반발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외환이기 이전에 있던 관치”라고 목소릴 높였다.

      그도 그럴것이 국가 부도위기였던 IMF 시절에는 금융관료들이 매일의 대출총량을 정해줬다. 한 전직 금융관료는 “당시 사무관들의 주요 일과가 시중은행으로부터 당일의 대출 총량을 보고 받는 것이었다”라며 “은행장이 사무관을 찾아와 대출을 늘려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이런 일이 현 정권 말기 또다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구시대적 ‘관치’가 부활하는데도 금융위원장에 반기를 드는 금융관료는 찾기 힘들다. 개인신용정보의 스코어링 시스템 도입, 데이터를 통한 신용모델 선진화, 인터넷뱅크를 통한 금융 혁신을 외치던 이들이 IMF 시절로 되돌아간 대출총량규제에선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는 사이 대출이 막힌 은행들이 사상 최대 이익을 경신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은행의 주된 먹거리가 막혔는데도 은행들의 이익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대출규제 속에서 시중은행들은 가산금리를 지난해 말 대비 0.5% 안팎으로 올리면서 이자수익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평상시 같았으면 여론의 뭇매와 더불어 금융당국의 경고장이 날아왔겠지만, 이번에는 금융당국이 못본 척 하고 있다. 금리상승과 대출총량규제가 뛰는 자산시장 가격을 잡기위한 금융정책의 한 몸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전직 금융관료들 사이에서 문제제기가 이어진다. 이들은 부동산정책의 실패를 금융정책으로 땜질하고, IMF 시절에나 벌어지던 대출총량규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에 대한 반감이 크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에 대해서도 가계대출 관리가 금융정책의 전부는 아니란 비판을 한다. 현재의 대출규제는 곧 ‘돈이 권력이고, 권력이 대출이다’로 귀결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현장에선 예금담보대출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예금이 있는 사람은 이를 바탕으로 DSR 규제도 피하면서 마이너스 통장처럼 손쉽게 대출을 받고 있다. 결국 이들에게만 우량 자산을 '쇼핑'할 큰 판을 금융당국이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