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주 시장 파편화하며 '가격 발견 기능' 상실
코너스톤 투자자가 '앵커 투자자' 역할 해줄수도
자본시장법 개정 필요한데 '인수 규정'만 만지작
특혜 논란 잠재울 '가격 산정식 공시' 등 논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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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스톤 투자자(초석 투자자) 제도가 공식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금융위원회가 2021년 업무계획에 의욕적으로 포함시키며 급물살을 탈 것 같았던 제도 도입은, 목표 도입 시한인 올해 말이 불과 7주 밖에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도 공회전만 거듭하고 있다.
처음엔 탁상공론이었다. 홍콩 거래소에 이런 제도가 있으니 우리도 도입해보자!는 수준의 발상이었다. 법규에 명시된 '공모'라는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비현실적 제도라는 비난이 훨씬 많았다.(참고기사: 한국거래소, 2년간 고집부리던 '코너스톤' 슬며시 업무계획서 뺐다)
시간이 흐르며 현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최근 한 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차라리 빨리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를 도입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년 전 한국거래소가 처음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 도입을 공론화했을 때 "현장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고 맹비판했던 이였다. 변심의 이유를 물었다. "지금 공모주 시장엔 중심이 없다. 가격 발견 기능 회복을 위해선 이제 필요악이라고 본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는 증권신고서 확정 전, 조건을 충족하는 특정 적격 투자자에게 미리 공모주 물량을 배정하는 제도다. 자본시장법이 금지한 '사전 공모 행위'다. 특혜로 비칠 소지도 다분하다. 국민연금공단 등 특정 투자자가 참여하느냐 아니느냐에 따라 공모주가 A급, B급으로 차별받을 소지도 있다.
공모주 시장은 최근 풍요 속의 빈곤을 겪고 있다.
주요 공모에 수십 조원의 뭉칫돈이 몰리지만, 막상 '빅3' 자산운용사는 공모주 시장에서 발을 뺐다. 롱 펀드(장기투자 펀드)로 알려진 블랙록ㆍ싱가포르투자청 등도 결국 '단타꾼' 아니냐는 심증은 훨씬 강해졌다. 1000곳이 넘는 군소 기관이 제대로된 스터디도 없이 경쟁적으로 공모가를 제시하고 있다. '공모주 가격 발견 기능'은 유명무실화됐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증권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코너스톤 투자자는 사모펀드(PEF) 거래로 비유하자면 '앵커 투자자'와 같다. 거래의 중심을 잡고, 군소 기관의 투자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투자자다. 지금의 공모주 시장에 가장 필요한 역할이라고 꼽을 수 있다.
공모주 시장이 파편화되며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가 활약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퇴임을 앞둔 최방길 금융투자협회 자율규제위원장이 '공모 가격의 합리성 제고'를 위해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다.
막상 정부와 금융당국은 핵심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하는 모양새다.
당초 금융위는 올해 업무계획에서 '상반기 중 금융투자협회 인수업무규정 개정을 통해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6월 고시된 인수업무규정 개정엔 관련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가 '범법 행위'가 되지 않으려면, 자본시장법 제121조를 개정해야 한다. 증권신고서의 효력 발생 전 청약을 금지한 규정이다. 시행령 개정이 아니기에 국회의 의결이 필요하다. 자본시장법에 코너스톤 투자자 예외 항목이 규정되지 않는 이상, 안정적으로 제도가 정착하긴 어려울 거란 지적이 나온다.
상반기에 별 성과를 내지 못한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는 기획재정부의 '2021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포함됐다. 스케일은 커졌지만 진전은 없었다. 현재까지 공청회 등 표면적으로 드러난 추진 사항이 확인되지 않는다. 법규 개정 논의도 아직 표면화하지 않았다.
일단 계획상으로는 올해 12월 말까지 도입 예정이지만, 대선을 앞둔 정치적 상황 등을 고려하면 올해도 물 건너 갔다는 평가가 훨씬 많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가 자본시장법 개정 등을 거쳐 명문화한다 해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특혜 논란을 잠재우려면 '코너스톤 투자자 자격'을 명확히 해야 한다. 홍콩의 같은 제도처럼 '가격 미제시'로 사전에 물량만 받아가는 투자도 의미가 없다. 증권신고서에 '주관사의 공모희망가 밴드 산정식'과 더불어 '코너스톤 투자자의 공모가 가치평가 논리'를 기재하도록 하는 게 대안으로 거론된다.
"할 거면 빨리 제대로 하고, 안 할 거면 괜히 노이즈(잡음)나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