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작업하는 證은 혼란…일 많은데 유예기간도 없어
대주주가 PEF인 발행사 '역차별' 논란도…업계 혼란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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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거래소(이하 거래소)가 코스닥시장 기업공개(IPO) 규정과 사모펀드(PEF) 지배기업의 상장심사 가이드라인을 일부 수정하며 잡음이 일고 있다.
코스닥 상장규정은 일부 용어만 바뀌었는데 유예기간 없이 11월부터 일괄 적용하면서 증권사는 실무에 혼선을 빚고 있다. PEF가 최대주주인 발행사를 대상으로 상장심사를 강화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서 '역차별' 논란도 일었다.
이달 초 거래소는 상장규정 전부개정을 실시하면서 코스닥 상장예비심사 신청서 서식을 게시했다. 개정안의 골자는 '청구'라는 표현이 '신청'으로 일괄 바뀐 것이다. 이같은 용어 변경은 상장예비심사청구서, 준비서류, 주관사 실사 체크리스트 자료에 모두 적용됐다.
이에 따라 그간 코스닥 예비상장사가 제출해오던 상장예비심사'청구'서는 이달부터 코스피와 동일하게 상장예비심사'신청'서로 불리게 된다. 해당 서류를 제출하는 기업 명칭도 '청구회사'가 아닌 '신청회사'로 표기된다.
거래소는 '편의성'을 위한 개정이란 입장이다. 거래소 한 관계자는 "상장규정에 기술돼있던 내용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표준적인 표현으로 바꾼 것이다"라며 "규정 이용자들이 알기 쉽게 하려면 청구보다는 신청이란 용어가 보다 적합하겠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당 개정안을 두고 업계 관계자들은 '무성의하다'라고 입을 모은다. 서류 작업을 복잡하게 만드는 개정안임에도 유예기간 없이 적용할 뿐만 아니라 개정안 서식 자체에도 실수가 발견되는 등 허술하다는 인상을 주면서다.
코스닥 예비상장사 주관을 맡는 증권사들은 향후 필요한 서류를 작성할 때 단어를 일괄 수정해야 한다. 증권신고서 뿐만 아니라 대표주관계약서에도 '청구'라는 단어가 다수 활용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간 상장청구 수요가 많았던 만큼 증권사들은 기본 서식을 만들어놓곤 새로운 내용을 빠르게 채워넣는 식으로 효율을 높여왔다. 그러나 단어 하나가 바뀌면서 서류작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적용 시기에 대한 불만도 나온다. 해당 개정안은 이달 1일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유예기간 없이 곧바로 적용된 데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장 이달 상장예비심사청구서를 작성해야하는데 형식을 모두 수정해야 한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물론 연말에는 상장예비심사 청구 건수가 적어 여파가 크진 않을 테지만 당장 내년부턴 혼란이 예상된다는 지적도 있다.
거래소의 용어변경은 사소한 실수로도 이어졌다. '외국기업에 대한 상장예비심사신청서 작성요령'에 '환매청구권'이 '환매신청권'으로 표기된 것이 그것이다. '청구'를 일괄 '신청'으로 표기를 바꾸면서 고유 단어인 환매청구권도 이름이 바뀐 모습이다. 거래소 한 관계자도 "적용하는 과정에서 업무상 실수가 있을 수 있다"라고 밝혔다.
환매청구권(풋백옵션)은 공모를 통해 받은 주식에 대해 환매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로 1999년 한국가스공사 상장 당시 풋백옵션을 약속한 대신증권과 한화증권이 상장 직후 주가급락에 대한 손실을 그대로 떠안으며 공모시장 활성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를 받은 제도다.
거래소가 내놓은 상장심사 가이드라인도 논란 중 하나이다.
거래소는 지난달 각 증권사에 상장심사 가이드라인 초안을 배포했다. ‘PEF 지배기업 상장심사 가이드라인’의 제목으로 배포한 자료는 사모펀드(PEF)가 지배하는 기업의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발생한 이슈에 대해 일반투자자 피해 방지를 위한 심사방안이 포함돼 있었다.
구체적으론 ▲상장예비심사 신청 전 과도한 배당 실시 ▲과도한 공모가 산정 ▲상장예비심사 신천 전 비상장법인과 합병 ▲PEF 인수 이후 단기간 내 심사 신청 ▲LBO 방식 인수에 따른 부의 이전 ▲PEF 지배기업의 복층 SPC 구조 ▲불충분한 기업 실사 기간 등의 항목을 나눠 각 사례를 소개하며 심사방향을 설정했다.
해당 심사 방안이 각 PEF 및 증권사 등에 확산하며 PEF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일자 거래소는 이달 초 ‘최근 최대주주 관련 이슈사항에 대한 심사방향’으로 문구를 수정해 최종 배포했다. 거래소는 ‘PEF가 최대주주인 기업 뿐만 아니라 일반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겠다고 밝혔으나 ‘PEF’란 단어만 제외 했을 뿐 모든 내용은 동일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가이드라인에 포함한 사례가 모두 PEF 지배기업에서 발생한 점, 애초 가이드라인 마련의 목적이 PEF 포트폴리오 기업의 상장 과정을 엄격히 들여다보겠단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PEF를 타깃으로 한 규제란 평가가 나온다.
PEF 업계 한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에 언급된 사례가 PEF뿐 아니라 일반 기업에서 충분히 발생 가능한 이슈이다”며 “애초 거래소가 PEF 포트폴리오 기업을 꼼꼼히 검토하겠단 취지로 마련한 방안이기 때문에 사실상 PEF 운용사들이 집중 감시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