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위해 칼 빼든 롯데…순혈주의 버리고 계열사 권한 강화
입력 2021.11.26 14:52
    그룹 유통부문 총괄에 최초로 '非롯데맨'
    BU 폐지하고 HQ체제로…"회장 직속보고"
    '변화' 절박한 신 회장 의중 반영됐단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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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롯데그룹이 유통 등 주요 사업부 수장에 외부 인재를 수혈했다. 보수적인 그룹 분위기를 감안하면 이례적 조치다. 5년간 이어온 BU(비즈니스 유닛) 체제도 HQ(헤드쿼터) 체제로 개편한다. 최근의 실적 부진을 벗어나기 위해 신동빈 회장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는 평가다. 

      롯데그룹은 지난 25일 롯데지주를 포함한 38개 계열사의 이사회를 열고 2022년 정기 임원 인사를 실시했다. 이번 정기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외부 인사 영입이 꼽힌다. 롯데그룹은 ‘정통 롯데맨’을 임원으로 앉히는 것이 기존 관행이었다. 그룹의 주력 사업군인 유통 총괄 대표와 호텔 총괄 대표를 외부에서 영입했다. 롯데그룹이 유통 사령탑에 외부 인사를 영입한 건 1979년 롯데쇼핑 출범 이후 처음이다. '유통 명가'인 롯데가 그만큼 절박함을 느끼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룹의 유통 사업을 총괄하는 롯데쇼핑 총괄대표에는 김상현 신임 총괄대표가 선임됐다. 김 신임 대표는 한국 P&G 대표와 동남아시아 총괄사장, 홈플러스 부회장을 지냈다. 2018년부터는 동남아의 대표 유통 회사인 홍콩의 DFI리테일그룹에서 동남아시아 총괄 대표를 지냈다. 2019년 유통 BU장에 취임 후 부실 점포 구조조정을 주도한 강희태 부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신임 호텔 총괄 대표로 선임된 안세진 사장은 글로벌 컨설팅 회사 AT커니 출신이다. 2005년부터 2017년까지 LG그룹과 LS그룹에서 신사업과 사업 전략을 담당했다. 2018년부터는 모건스탠리 PE(사모펀드) 소속으로 자신들이 인수한 외식 업체 ‘놀부’의 대표이사를 지냈다. 호텔 BU를 이끌었던 이봉철 사장도 롯데렌탈 IPO를 완료하고 용퇴하게 됐다.

      경영진 물갈이를 단행한 호텔롯데의 IPO(기업공개) 재추진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호텔롯데는 이번 인사로 대표직을 비롯해 기존 핵심 요직의 임원들도 교체됐다. 호텔롯데는 2016년 공식적으로 상장 추진을 발표한 이후 경영상의 이유로 일정이 계속 연기됐다. 이후 사드 등 중국의 경제보복, 코로나 발발 등 악재로 실적악화가 겹치면서 상장이 불투명한 상황이 이어졌다. 

      롯데쇼핑의 백화점 사업부 신입 대표는 2019년 신세계그룹에서 영입된 롯데GFR(패션 사업)의 정준호 대표가 선임됐다. 정 대표는 1987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20년 이상 신세계그룹에서 일했다. 영화관을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 대표는 최병환 CJ CGV 전 대표가 부사장 직급으로 영입됐다. 모바일 멤버십 서비스를 총괄하는 롯데멤버스도 신한DS 디지털본부장 출신의 정봉화 상무를 전략부문장으로 임명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이 혁신에 대한 압박이 크다고 전해졌는데, 이번 인사에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 지금까지 사실상 ‘임대업’의 유통업을 해 온 롯데가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수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룹차원의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지난 2017년 3월 도입한 유통, 화학, 식품, 호텔·서비스 4개 BU 체제를 식품, 쇼핑, 호텔, 화학 4개의 헤드쿼터(HQ) 체제로 바꾼다. HQ는 기존 BU 대비 ‘실행력이 강화된 조직’에 방점을 두고 있다. 기존의 각 BU는 계열사들의 현안과 실적관리, 공동 전략 수립 등에 집중한 체제였다. HQ체제 도입으로 각 HQ의 권한을 강화하고, 신 회장과 소통을 신속하게 해 나가겠단 설명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계열사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해 책임경영을 하고, 의사결정이 바로 회장에게 보고되는 형태로 권한을 강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는 2017년 검찰 수사로 회사 경영에 차질이 생기자 인적 쇄신을 위해 BU 체제를 도입한 바 있다. 다만 BU 체제에선 각 계열사의 의사결정이 거쳐야 할 단계가 많아 오히려 실행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계열사 간 소통 강화’,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한 ‘수술’을 단행한 것으로 분석된다. 

      롯데는 이번 조직개편에서 6개 사업군(식품·쇼핑·호텔·화학·건설·렌탈)으로 계열사를 유형화했다. 주요 사업군인 식품, 쇼핑, 호텔, 화학 사업군은 HQ 조직을 갖추고, 1인 총괄 대표 주도로 경영관리를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IT, 데이터, 물류 등은 별도의 전략으로 경영한다. 

      이번 인사에서 롯데그룹은 승진 임원과 신임 임원수를 지난해 대비 두배 이상으로 늘렸다. 지난해 코로나 영향 등으로 전년보다 승진 폭이 적었던 배경도 있다. 

      롯데지주 이동우 대표는 그룹의 신성장 동력을 발굴한 공으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동우 부회장은 바이오, 헬스케어 등의 신사업을 추진해오고 있으며 ESG 경영 및 브랜드 가치 증진도 담당하고 있다. 화학군 총괄대표를 맡게 되는 김교현 부회장은 그룹 내 석유화학 전문가로, 코로나19 이전으로 실적을 회복한 성과를 인정받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식품군 총괄대표는 식품BU장 이영구 사장이 맡는데 롯데제과의 대표이사도 겸직한다. 고정욱 롯데캐피탈 대표이사는 부사장으로 승진 후 롯데지주의 재무혁신실장을 맡는다. 추광식 롯데지주 재무혁신실장이 롯데캐피탈 대표이사로 이동한다. 롯데그룹은 이번 임원인사에서 총 6명의 신규 여성임원을 선임하는 등 여성 및 외국인 임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