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은 좋지만...모든 은행이 정부 덕 '사상 최대'
권행장, 올해 개인적 추문으로 이미지에 큰 타격
차기로 박화재 부행장ㆍ이원덕 수석부사장 등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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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내년 3월 '1+1' 임기를 마치는 권광석 우리은행장의 거취에 금융권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사상 최대 실적에 힘입어 재연임이 언급됐지만, 지금은 기류가 바뀌며 교체 가능성도 언급되는 상황이다.
권 행장은 지난해 3월 '깜짝 발탁'됐다. 경쟁전 초반엔 단순한 다크호스 정도로 여겨졌으나, 일부 사외이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행장에 선임되는 데 성공했다. 정치적인 출신 배경이 일각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다만 보통 2년이 주어지는 초임 행장의 임기가 1년에 그쳤다는 점은 이후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낳았다.
올해 초엔 연임에 성공했다. 당시 이사회에서 행장을 1년 만에 교체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꼈다는 전언이다. 일각에서는 2년 연임을 통해 '1+2' 임기를 보장해줄 거라 전망했지만, 이사회에서 추가로 부여한 임기는 다시 1년이었다.
권 행장의 임기는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때 만료된다. 연임을 포함해 차기를 논의할 우리금융지주의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는 이르면 내년 1월 열릴 전망이다. 2월 중 최종 후보를 간추린 뒤 선임 일정을 확정하고, 3월 초 이사회를 통해 차기 행장을 확정한다.
우리은행은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3분기 누적 순이익 1조9860억여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0% 이상 성장했다. 3분기까지 1조9470억여원의 순이익을 낸 하나은행도 뛰어넘었다. 충당금이 줄었고, 투자금융(IB) 부문의 비이자이익이 크게 늘어난 덕분이다.
호(好)실적은 권 행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부분이다. 실제 우리금융 내에서 권 행장의 연임을 점치는 목소리의 근거는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를 수습하고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이기도 하다. 영업그룹에 부행장이 아닌 젊은 상무급 임원을 앉히고, 손태승 지주 회장과 같은 한일은행 출신들을 중용한 지난해 7월 임원 인사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실적이 권 행장의 솜씨냐는 점에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우리은행을 비롯해 올해 거의 모든 은행ㆍ금융회사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은행의 경우 지난해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 투자) 열풍이 불며 자산 규모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올해 매파적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로 마진이 껑충 뛴 덕을 톡톡히 봤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올해 은행 실적은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이 만들어줬다는 걸 모르는 은행 구성원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며 "특정 리더 한 명의 기여라고 보기엔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올해 2월 제기된 '블라인드 의혹' 역시 파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익명앱 '블라인드'에 권 행장의 사생활과 관련된 사진이 올라온 게 이슈의 시작이었다. 권 행장은 지난 4월 명예훼손과 영업방해로 앱 운영사 및 게시물 조회자를 형사고소하는 한편,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여기에는 우리은행도 공동으로 소송에 참여했는데 허위사실을 올렸다는 주장이었다.
올해 7월 블라인드 운영사가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북부연방법원은 앱 운영사에 '사실조회요청 소환장'을 송부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앱 운영사는 8월 '사진에 위변조된 흔적이 없다'는 감정서까지 제출했고, 이어 9월 원본 사진과 권 행장이 동일인일 가능성이 '97.9% 이상'이라는 감정서도 제출했다. 그러자 권 행장과 우리은행은 앱 운영사에 대한 민사소송 및 형사고소를 모두 취하했다.
우리은행은 여전히 "블라인드측 감정서는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차기 행장을 결정해야 하는 이사회 입장에선 중요한 시점에 개인적인 추문에 연관된 권 행장에 대해 평판과 자격요건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개인 추문에 은행의 평판까지 엮이는 사태가 됐기 때문.
은행장이 2년의 임기를 끝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건 드문 일이지만, 사례가 없진 않다.
당장 지난해 지성규 하나은행장이 2년의 임기를 끝으로 연임 없이 물러났다. 지난 2018년 위성호 전 신한은행장 역시 2년 재직 후 연임에 실패했다. '1+1' 임기는 드문 사례지만, 어쨌든 2년의 임기를 소화했다는 점에서 임기 관련, 이사회가 결정을 내리는 데 부담은 덜한 셈이다.
결국 자회사 대표이사를 결정할 자추위의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평가다. 특히 우리금융은 내부 규정상 자추위에서 현직 지주 회장의 발언권이 크다. 우리금융은 자추위 위원장을 대표이사(지주 회장)가 당연직으로 맡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사외이사 비중 역시 과반수로만 규정하고 있다. 임원추천위원회의 경우, 사외이사 수 3분의 2 이상으로 더 강하게 사외이사 견제권을 보장한다.
만약 권 행장이 연임에 실패한다면, 차기 행장으로는 '손 회장의 사람들'이 최우선적으로 언급된다.
은행에서는 박화재 여신지원그룹 집행부행장, 지주에서는 이원덕 지주 수석부사장 등이 언급된다. 박 부행장은 영업전문가로, DLF 사태를 원만하게 수습하며 사내 차기 CEO 후보군으로 부상했다는 평가다. 이 수석부사장은 지주 사내이사이자 '업무총괄' 담당으로 손 회장에 이은 그룹 내 '2인자'로 불린다. 손 회장과 같은 한일은행 출신이기도 하다.
계열사 대표 중에서는 김종득 우리종합금융 대표, 김정기 우리카드 대표 등이 꼽힌다. 이외에 지주사 전환 실무를 담당했던 최동수 지주 부사장, 지주의 재무를 담당하며 비은행 인수합병을 책임졌던 박경훈 우리금융캐피탈 대표 등의 이름도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