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금 보장 상품 포함…취지 무색 우려
OCIO 확대 ‘열쇠’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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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근로자 퇴직급여에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을 도입하는 퇴직연금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디폴트옵션 도입이 코앞으로 다가오며 운용업계의 지각변동이 함께 예상된다.
다만 디폴트옵션 도입만으로는 투자업계에서 기대해왔던 외부위탁운용(OCIO) 시장의 즉각적인 확대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단은 타깃데이트펀드(TDF) 위주로 수혜가 돌아갈 전망이다.
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에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 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이 이달 중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내년에 본격적으로 디폴트옵션이 시행될 전망이다. 여야 쟁점이 해소된 상황으로 개정안은 이달 중 본회의 통과가 유력하다.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면 DC형 가입자는 TDF·혼합형펀드·머니마켓펀드(MMF)·부동산인프라펀드·원리금보장상품 등 정부가 정한 디폴트 상품 중 한 가지 이상을 사전에 선택하게 된다. 기존 상품이 만기 돼 퇴직연금사업자가 가입자에게 알렸지만, 가입자가 4주간 운용 방법을 스스로 선정하지 않을 경우 2주 후 사전에 지정한 상품으로 운용된다.
현 시점에선 대부분의 DC형 가입자가 TDF를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작년 말 4조원 규모였던 국내 TDF 설정액은 약 7조6000억원으로 1.9배 증가했다. 미국 뱅가드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으로 미국 DC형 가입자의 TDF 보유 비율은 78%에 이른다.
TDF 시장이 더욱 커지며 TDF를 다루는 운용사의 지각변동이 생길 것으로 전망되자, 중소형 운용사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기준 TDF 시장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이 44%, 삼성자산운용이 23%를 차지하고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삼성자산운용이 ETF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가지다가, 최근 여러 운용사에서 다양한 ETF가 출시되며 삼성자산운용의 점유율이 낮아졌다”며 “TDF 시장도 미래와 삼성이 주도하고 있는 점유율은 점점 낮아질 것”이라 밝혔다.
투자업계의 초미의 관심인 OCIO 시장 확대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분석이다.
디폴트옵션 도입만으로는 OCIO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이유에서다. 디폴트옵션에서 파생될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OCIO 시장 규모를 확대할 수 있는 ‘열쇠’라는 분석이다.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란 외부 기금을 설립해 퇴직연금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제도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국회에 계류돼있는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통과되기 전까지는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더라도 OCIO 시장으로 자금이 흘러들어올 것 같지는 않다"며 "다만 디폴트옵션 법안 통과는 첫 단추이며 실적 자산형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게 대세가 되면 기금형 퇴직연금에 대한 ‘니즈’가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볼멘 소리도 나온다. 디폴트옵션에 원리금 보장 상품이 포함돼 취지가 다소 무색해졌다는 것이다.
기존에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 퇴직연금을 굴리는 가입자가 많다 보니, 디폴트옵션이 도입되더라도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해외에서 디폴트옵션에 원리금 보장형을 포함한 곳은 일본이 유일하며, 퇴직연금의 평균 수익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저조하다는 평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DC형 적립금 67조2000억원 중 83.3%(56조원)이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 운용되고 있다. 실적 배당형 상품은 16.7%(11조원2000억원)에 그친다.
퇴직연금 대부분이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 운용되다 보니 작년 수익률은 3.47%로 낮다. 실적 배당형 상품의 수익률은 13.24%인데 반해, 원리금 보장형은 1.69%에 그쳤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수익률 30.8%를 기록했다.
한 운용사 OCIO 관계자는 “원리금 보장 상품에 방치돼있는 퇴직연금을 실적 배당형으로 옮겨와 수익률을 올리는 디폴트옵션의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며 “정치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지만, 차차 원리금 보장 상품은 디폴트옵션에서 제외하는 방안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