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중견기업 오너 일가 지배력 유지 어려울지도
국내 사모펀드 대상 구주매출 수요 확대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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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이 달부터 전환사채(CB) 관련 규정이 바뀌면서 중소·중견기업 오너들의 상속 및 증여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그동안 오너 일가의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사모 전환사채(CB)가 주로 쓰여왔는데, 규제가 시행되며 사실상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상속을 염두에 뒀던 기업들이 일부 지분을 시장에 내놓는 사례들이 더욱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CB 관련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 지난 1일부터 시행됐다. 골자는 상장사의 CB 발행과 관련해 전환사채매수선택권(콜옵션)의 한도를 정하는 내용이다. CB 발행 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에 부여할 수 있는 한도를 콜옵션 발행 당시의 지분율로 제한했다.
예를 들어 한 회사의 총 주식수가 100주고 CB 발행수가 50주라고 가정하고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각각 30%, 20%라고 하면, 콜옵션 행사한도는 각각 15주, 10주가 된다. 최대주주는 45주, 특수관계인은 30주로 각각 지분율이 CB 발행 전과 동일한 30%, 20%로 유지돼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소·중견기업들은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늘리는 데 다소 애를 먹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그동안 CB 발행이 오너 지분을 확대하는 데 공공연한 방법으로 사용되어 왔지만, 앞으로는 활용이 어려워진 까닭이다.
실제로 그동안 국내 기업들 가운데 CB 발행 후 콜옵션 행사를 통해 오너 일가의 지분을 확대하는 사례가 다수 있었다. 지난 5월 유유제약은 유원상 현 사장의 단독 대표 체제로 전환한 뒤 이전에 발행해뒀던 CB 일부를 꾸준히 활용해 지분을 늘려왔다. 유유제약 주가가 전환가액을 웃돈 틈을 타 유유제약은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을 콜옵션 행사권자로 지정해 물량을 배정했다. 이 결과 유 대표 포함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지난 상반기 약 4.1%포인트 늘어난 바 있다.
그러나 콜옵션 기반 지분 확대의 길이 사실상 막히면서 중소·중견기업 위주로 자본시장에 나오는 구주매출 건수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가뜩이나 최근 오너 일가 자녀들은 가업을 이어받기보다 투자회사 설립이나 신사업 모색 등의 방안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오너 일가의 지배력 유지가 더욱 어려워진 만큼 오너 입장에서는 사모펀드(PE) 등 자본시장에 지분을 매각하려는 유인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사례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국내 한 제지회사는 최근 한 PE와 손잡고 일부 지분 매각에 나선 상황이다. 2세 경영 체제보다는 전문경영인을 도입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고급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한 중소기업 역시 지난해부터 국내 PE들을 대상으로 구주 매각에 힘써왔다는 후문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국내 중소기업들 가운데 오너 일가 지분율이 얼마 안 되는 곳들이 많이 있다”라며 “2세나 3세에 지분을 일부라도 물려주려면 CB 활용 등 여러 방안을 고려해야 하는데 콜옵션 제한이 생기고 전환가액(리픽싱) 상향 조정 등 규제가 생기면서 지배력 유지 및 확대에 대한 고민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