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약 8조원 발행으로 '최대’
LG화학·SK하이닉스,조단위 발행
제약·게임사 데뷔…희비 엇갈려
KB證,전체 주관 1위…NH證 추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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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회사채 시장은 시장은 비교적 일찍 문을 닫았다. 12월 초 막판까지 대기업들이 곳간 쌓기를 이어갔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11월에 사실상 마무리됐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서 10월부터 금리가 치솟았고, 11월 들어 회사채 발행 시장의 투자 심리가 급랭한 탓이다. 기관투자가들도 금리 불안정성에 적극적인 매수를 꺼리면서 수요 확보가 어려워지자 기업들은 내년 초로 발행을 미뤘다. 10월부터 일부 신규 발행사들과 우량기업들만 발행을 했고, 11월 수요예측에 나선 우량 일반기업으로는 LG유플러스, SK㈜에 그쳤다.
인베스트조선이 집계한 올해 증권사 주선 전체 회사채 발행 물량(12월10일 증권신고서 기준)은 총 70조원 규모로, 재작년(66조원)과 지난해(68조원)에 이어 호황을 이어갔다. 코로나19 2년차인 올해, 대기업들의 투자재원 마련을 위한 조달이 많았다.
내년초 미국 연준의 테이퍼링 속도를 높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고 한국은행의 금리 추가인상이 예상되는 등 금리 변동성이 계속되면서 연초 효과 기대감은 다소 미미한 분위기다. 발행 여건 개선은 우량기업 위주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채권시장 분위기도 경계심이 올랐다. 이달 초 중국의 부동산 개발회사 헝다가 달러채권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며 사실상 디폴트 상태에 빠졌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헝다의 신용등급을 ‘제한적 디폴트(채무불이행)’으로 강등했다. 공식 디폴트가 선언되면 192억3600만달러(약 22조7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전체 달러 채권 연쇄 디폴트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2월 발행은 신종자본증권(영구채) 정도가 주를 이뤘다. 영구채는 장기 신용등급보다 등급이 한 단계 가량 낮기 때문에 고금리에도 불구하고 투자자 입장에서 부담이 크다. 이달 2일 CJ CGV(A-)는 1600억원의 영구채(BBB+)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 나섰지만 293억원의 주문만 들어왔다. 이어 8일 롯데손해보험(A-)은 400억원 영구채(BBB+) 수요예측에 나섰지만 ‘0건’의 주문을 기록했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올해 금리 변동성이 너무 커 기관들이 12월 전 북클로징을 했다”며 “연말 우량채들은 수요가 있었지만 A급 이하 회사채들은 수요를 찾기가 어려웠고, 시장이 좋지않아 주관사들도 인수 부담에 발행을 독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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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반으로는 ‘빅이슈어(Big issuer)’의 적극적인 시장 자금 조달이 나타났다. 올해 가장 큰 규모의 회사채 발행은 2월 LG화학(AA+)의 1조2000억원 발행으로, 국내 일반기업 발행 중 최대 규모다. 4월 SK하이닉스(AA)가 1조1800억원 회사채를 발행하며 뒤를 이었다. 당시 ‘국내 일반기업 중 ESG채권 최대 규모 발행’ 타이틀을 두고 SK하이닉스와 LG화학이 신경전을 벌이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오랜만에 찾은 공모채 시장에서 7000억원을 조달한 네이버(AA+)도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SK그룹은 18개 계열사가 총 7조8000억원 규모를 발행하며 최대 발행 그룹 자리를 지켰다. SK㈜·SK하이닉스·SK에코플랜트·SK텔레콤·SK이노베이션·SK E&S 등은 각각 공모채로 5000억원 이상 유동성을 마련했다. 내년에도 2차전지, 신재생에너지 등 신성장동력 위주 대규모 투자가 이어질 예정이라 적극 발행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롯데와 LG그룹은 각각 3조원 규모를 조달했다. 롯데그룹은 호텔롯데, 롯데지주, 롯데쇼핑, 롯데케미칼, 롯데건설, 롯데렌탈 등 계열 전반이 회사채를 발행하며 빅이슈어 지위를 이어갔다.
LG그룹은 대규모 자금 수요가 있는 계열사 중심으로 발행했다. 전기차 배터리 등 신사업 투자가 예정된 LG화학(AA+)이 지난해 9000억원에 이어 조단위 발행을 했고 LG유플러스(AA)도 5G 투자 관련 수요로 상반기에 이어 11월에도 발행에 나섰다. LG전자(AA)는 올해 2년만에 회사채 시장을 찾아 5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적자 스마트폰 사업부를 정리한 점이 투심을 끌었다.
LG디스플레이(A+)도 중소형 OLED 시설투자 자금 마련을 위해 9월 2년만에 공모채를 발행했다. 수익성이 악화했던 LG디스플레이는 OLED 전환에 속도가 붙으며 신용 불안이 완화됐다. 올해 5월 NICE신용평가는 LG디스플레이의 장기신용등급 등급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조정했고, 한국신용평가는 9월 등급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변경했다.
신세계그룹의 이마트는 4월 6000억원, 8월 5200억원 회사채를 각각 발행하며 적극적인 조달을 했다. 이마트는 올해 빅딜(big deal)인 이베이코리아 인수, 스타벅스코리아의 미국 본사 지분 인수와 더불어 SSG랜더스(옛 SK와이번스)와 W컨셉(SSG닷컴) 인수까지 공격적인 M&A(인수합병)를 펼치고 있다. 현재 자회사 이마트24가 편의점 미니스톱 인수 예비입찰에도 참여한 상황이다. 이마트는 11월 성수동 본사 매각(1조2000억원), 대출채권 유동화(3200억원) 등 전방위적인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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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공모채에 도전하는 ‘뉴이슈어(New issuer)’들도 눈에 띄었다. 코로나와 함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제약·바이오업체이 회사채로 자금 조달 통로를 넓혔다. 9월 삼성바이오로직스(A+)가 설립 후 처음으로 발행에 나서며 주목을 받았다.
회사채 시장에서 생소한 게임사들도 발행에 나섰다. 지금까지 공모채 발행을 한 게임사는 엔씨소프트, 넷마블 정도였다. 7월 엔씨소프트가 2년 반 만에 발행에 나섰다. ‘뉴플레이어’의 데뷔전은 명암이 갈렸다. 펄어비스(A/A-)와 컴투스(A)는 초과 수요로 증액 발행했고, 더블유게임즈(A/A-)는 10월 수요예측에서 대규모 미매각을 기록했다.
신산업 기업들은 실적 변동성이 크다보니 ‘안정성’을 중시하는 채권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기업이 커지면서 대규모 M&A, R&D·시설투자 자금 수요가 많아져 시장 조달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 네이버 등 IT 기업을 향한 크레딧 시장의 분위기가 반전된 것처럼, 뉴이슈어들도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성적표'를 준비해야 한다.
KB증권은 올해도 채권발행시장(DCM) 1위를 이어갔다. 일반회사채, ABS(자산유동화증권) 주관 모두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만년 2위’ NH투자증권이 바짝 뒤쫓고 있다. 전체 주관 기준 KB증권과 NH투자증권의 격차는 지난해 약 4조5000억원에서 올해 약 3조9000억원 규모로 줄어들었다. 증권업계에서 ‘KB증권=DCM 강자’가 불문율이지만, 최근 지주 차원에서 대기업 계열의 IPO(기업공개) 등 시장의 관심이 높은 딜에 공을 들이며 KB증권 내부에서 ECM부서의 위상(?)이 두드러진다는 평도 나온다.
3위는 지난해 SK증권에 3위 자리를 내줬던 한국투자증권이 올랐다. 채권 부문을 계속 축소해 온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5위에서 올해 7위로 내려왔다. 채권 주관업무 자체보다 그룹 및 기업과의 관계 유지와 형성을 위한 딜들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미래에셋증권은 올해 SK하이닉스·SK텔레콤 LG전자·LG화학·LG유플러스 등 주요 대기업 계열사의 회사채 발행에 대표 주관사로 참여했다. 1분기 네이버가 창사 후 처음 발행한 외화채권 주관사에 모건스탠리와 함께 국내 증권사로는 단독으로 이름을 올렸고, 10월 말 하이브의 4000억원 규모 사모 전환사채(CB) 발행을 단독 주관했다.
지난해에 이어 산업은행이 전체 주관 기준 순위권에 자리했다. 이달 한국은행 등 관계부처는 올해 12월 31로 종료 예정인 기업 유동성지원기구(SPV)의 추가 연장 여부를 논의 중이다. 정부는 지난해 7월 SPV를 도입하고 코로나 장기화로 2차례 추가 연장을 거쳐 오는 연말까지 운영하기로 한 바 있다.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코로나 확산이 계속되고 있고 회사채 시장 불안정이 나타면서 실효성보다는 ‘시장 심리 안정감’을 위한 SPV 연장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