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銀 양종희ㆍ장기銀 허인ㆍ국민銀 이동철 부회장 체제
재무ㆍ전략통 선호 여전...연령ㆍ경력 미충족 인사 임기 만료
그룹 내 글로벌 전문가 양성 실패...안정적 내수에만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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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부터 허인 KB금융 부회장 내정자, 양종희 부회장, 이동철 부회장 내정자 (그래픽=윤수민 기자)
KB금융그룹 최고경영진의 진용이 갖춰졌다. 주목을 받았던 올해 계열사 대표이사 추천위원회(대추위)에선 예상대로 또 한 명의 부회장 승진이 나왔다. 회장-부회장-행장 및 계열사 대표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이자 승계구도의 완성이다.
다만 인선을 놓고서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의 한계가 명확하게 보인다는 관전평이 나온다.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탕평형 인사이자, 지금껏 매년 외쳐온 글로벌 진출보다는 국내 1위에 만족하겠다는 안정 지향적 인사의 의도가 강하게 읽힌다는 것이다. 재무ㆍ전략통을 중시하는 기존 기조도 이어갔다.
KB금융지주 이사회는 16일 대추위를 열고 카드ㆍ증권ㆍ보험 등 핵심 계열사에 대한 최고경영자(CEO) 인선을 진행했다. 앞서 1일에 열린 대추위에서는 허인 현 국민은행장이 지주 부회장으로 승진하고, '윤종규 회장의 호위무사'라는 평가를 받는 이재근 이사부행장이 차기 행장으로 내정됐다.
이번 KB금융 계열사 인사의 최대 관심사는 이동철 KB카드 사장의 거취였다. 시장에서 예상했던대로 이 사장은 이번 대추위를 통해 부회장 승진에 성공했다. 이 사장은 허인 부회장 내정자와 1961년생 동갑내기로, 2017년 지주 핵심 보직인 전략총괄(CSO)을 거쳐 2018년부터 4년간 KB카드를 이끌어왔다.
이번 인사를 통해 KB금융지주에는 현 양종희 부회장에 허인 부회장 내정자, 이동철 부회장 내정자까지 모두 3인의 부회장 체제가 만들어졌다.
사내 인사의 균형을 위해선 부회장 승진 인사가 어쩔 수 없었을 거란 시각이 많다. 양종희 부회장은 주택은행 출신이고, 이번에 행장으로 발탁된 이재근 행장 내정자 역시 주택은행 출신이다. 허인 부회장 내정자는 장기신용은행 출신이다. 국민은행 출신인 이동철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돼야 국민은행 출신들의 불안과 불만을 잠재울 수 있다는 논리가 힘을 받고 있었다.
실제로 이달 초 대추위에서 차기 국민은행장이 논의되던 당시, 주요 후보군에는 상당수의 국민은행 출신들이 포함돼있었다. 그 중 최종 발탁된 인물이 주택은행 출신 이재근 행장 내정자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은행 역시 1998년 장기신용은행, 2001년 주택은행을 합병하며 시니어급에선 내부적으로 출신에 따른 계파가 없지 않다"며 "양종희 부회장을 필두로 주요 인사에 주택은행 출신들이 중용됐고, '윤 회장은 결정적 순간엔 주택은행을 고른다'는 국민은행 출신들의 불안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KB금융은 이전부터 인수 후 통합(PMI) 과정에서 '정량적인 균형'을 중시해왔다. 2010년 이후 첫 대형 M&A였던 KB손해보험의 경우, PMI가 거의 완료된 2017년말 기준 상무급 이상 핵심 임원(사외이사 제외)을 KB금융 출신 5명, LIG손해보험 출신 6명, 외부 출신 3명으로 균형있게 맞췄다. KB증권 역시 2018년 현 대표이사로의 교체 직후 이뤄진 고위급 임원 인사에서, 전무 이상 승진자 8명 중 KB금융 출신이 4명, 현대증권 출신이 4명이었다.
이런 균형이 인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지주-은행 CEO급에서는 깨져있던 것이다. 국민은행 출신 중 최고위 임원인 이동철 사장의 부회장 승진 가능성이 언급된 배경이다.
이번 인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1961년생 차기 회장 후보군, 1964~65년생 계열사 대표이사라는 '세대 안배'가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분석이다. 지주 재무ㆍ전략 담당이 '차기 CEO 양성 과정'이라는 기존의 틀도 유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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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부터 이창권 KB카드 사장 내정자, 이환주 KB생명 사장 내정자, 허상철 KB저축은행 사장 내정자
이번 인사에서 임기를 다한 허정수 KB생명 사장은 1960년생으로 나이가 다소 많은데다, KB생명의 미진한 경영성과가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다. 주택은행 출신으로 양종희 부회장과 '탕평 인사' 면에서 입지가 겹친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지주 CFO를 역임하며 CEO로 양성됐고 한때 윤종규 회장의 '복심'이라고도 불렸지만, 아쉽게 부회장으로 발탁되진 못했다.
역시 주택은행 출신인 신홍섭 KB저축은행 대표는 민병덕 행장 시절 비서실장 출신으로, 전략ㆍ재무쪽 커리어가 부족하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목돼왔다. 1966년생 국민은행장이 발탁된 시점에서 1962년생이라는 나이도 인사에 영향을 끼쳤을 거란 지적이다.
차기 계열사 CEO로 선정된 이창권 현 지주 최고전략책임자(CSO), 이환주 현 지주 재무총괄(CFO), 허상철 국민은행 스마트고객그룹대표는 1964~1965년생, 1990년 전후 입행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 재무통 혹은 전략통이라는 점도 이전 CEO 인사와 비슷한 점이다.
이창권 KB카드 대표 내정자는 그룹 내 대표적인 전략통으로, 2016년말 상무로 승진하며 임원이 된지 불과 5년만에 계열사 대표이사로 발탁됐다. 이환주 KB생명 대표 내정자는 기획 부문 요직을 두루 거쳐 지난해 초 경영기획그룹 부행장으로 승진 후 1년만에 지주 CFO로 자리를 옮겼고, 다시 1년만에 계열사 대표이사에 오르게 됐다. 허상철 KB저축은행 대표 내정자 역시 국민은행 전략기획부장, 전략본부장을 거친 전략통으로 통한다.
문제는 이런 인사가 불러올 그룹의 방향성이다.
당장 금융권에서는 '외연 확장보다는 국내 1위에 만족하려는 인사'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부회장 인사 구성 자체가 다분히 정치적인데다, 인사를 통해 보여주려는 방향성도 현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평가다.
당장 지주 핵심 임원급에 글로벌 전문가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글로벌부문장을 담당하고 있는 양종희 부회장은 보험 부문장을 겸임하고 있는데다, 부장 이후 핵심 커리어가 전략ㆍ보험에 치우쳐있다. 글로벌 현장 실무 경험이 부족한 것이다.
글로벌 부문에 역량이 있다고 평가되던 조남훈 전 글로벌전략총괄 전무는 올해 초 국민은행으로 보직을 옮겼다. 조 전무는 대우증권 국제영업본부장 출신으로, KB증권에 합류했다가 2018년 지주로 영입된 케이스다. 올해부터 은행으로 자리를 옮겨 KB부코핀은행 등 해외 은행 자회사의 관리를 맡고 있다.
지주 내부에서 글로벌 확장ㆍ관리를 담당할 고위급 경영자를 양성해내지 못한 것이다.
다른 금융지주 임원급 관계자는 "KB금융은 2008년 카자흐스탄 BCC은행을 인수했다가 1조원의 손실을 봤고, 당시 강정원 행장이 중징계까지 받으며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다"며 "이후 해외 부문이 축소됐고 이렇다 할 전문가를 육성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종규 회장은 취임 이후 매년 '글로벌'을 강조해왔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경영전략 키워드 중 두 번째로 '글로벌 & 신성장동력 확장'을 꼽았다. 2020년엔 '사업영역 확장'이라는 키워드로 '글로벌 사업'을 비중있게 언급했고, 2019년에도 '글로벌 비즈(Biz) 확대'가 네 가지 경영전략 중 하나였다.
포석(布石)은 있었지만, 막상 움직일 말이 없었던 셈이다.
한편 이날 대추위에선 증권(박정림, 김성현)ㆍ캐피탈(황수남)ㆍ운용(이현승)ㆍ인베스트먼트(김종필)의 현직 대표이사 연임을 결정했다. 국민은행을 포함, 올해 말 CEO 임기 만료를 맞이한 8개 계열사 중 절반인 4곳을 교체하고, 4곳은 연임시킨 셈이다. 이 역시 '안정적 변화'를 추구하는 윤종규 회장의 인사 스타일이라는 평가다.
이제 남은 관심은 일련의 승진 인사 뒤, 남은 지주ㆍ은행 핵심 보직을 어떤 인물들로 채우느냐다. 당장 '차기 CEO 양성과정'인 지주 CSO와 CFO가 모두 공석이 됐다.
일단 지주 안팎에서는 윤 회장이 기존 방식대로 재무ㆍ전략 부문에서 수업을 쌓은 1960년대 중후반 출신 임원들을 기용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윤 회장이 3연임에 성공하며 체제가 안정된데다, 그룹 안팎의 변화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외부에서 전문가를 영입해 조직을 보완하고 긴장을 불어넣을 가능성도 만만치 않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