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사 설립·신사업 투자 수요 등이 견인
뭉치는 모습도…플랫폼 아닌 투자처 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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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2021년은 유독 1990년대생 벤처캐피탈(VC) 투자심사역이 늘어난 한 해였다. 유동성이 풍부해지며 신기술투자조합(이하 신기사)이 늘어나고 신사업 평가를 위한 특정 이력의 심사역 수요가 증가한 것이 그 배경으로 꼽힌다.
현재 VC업계를 주름잡은 세대는 80년대 초중반생이란 평이다. 이들은 당근마켓, 비바리퍼블리카, 마켓컬리 등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수익을 올려왔다. 그러나 플랫폼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이 90년대생 투자심사역의 주된 토로다. '뭉치면 산다' 기조 아래 대체불가능토큰(NFT), 메타버스 등 유망 시장에서 매물을 찾는 분위기다.
22일 VC업계에 따르면, 올해 업계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가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생 투자심사역 수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등 대기업에서 경력을 쌓고나서 심사역 자리로 이직을 하거나, 데이터 분석 등 특정 분야에서의 풍부한 경험을 지닌 인력들이 VC 하우스로 둥지를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는 평가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아무래도 빠른 변화 속도에 맞춰 신사업을 영위하는 스타트업들을 분석하려면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라며 "이 때문에 금융권 출신이 아니더라도 특정 분야에 경력이 있는 것을 선호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빗장이 풀린 것도 VC 입사 문턱을 다소 낮췄다는 분석이다. 에이치피오가 105억원을 들여 '피오인베스트먼트'를 세우거나 제주맥주가 '카스피안캐피탈'을 설립하는 등 올해 상장한 기업들이 신기사를 세우면서 투자심사역 채용이 늘었다. 해당 자리에 상장 당시 주관을 담당했던 IPO 실무진을 채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들 90년대생 심사역들의 행보는 '뭉치면 산다', '신사업' 등으로 요약된다.
최근 VC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심사역들은 대부분 80년대 초중반생이다. 이들은 당근마켓, 마켓컬리 등 디지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상품 및 서비스 거래를 중개하는 기업들에 투자하면서 큰 수익을 올렸다. 아직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하지 못한 기업도 여럿이지만 기업가치가 크게 성장한 스타트업을 포트폴리오로 보유해도 명성에 보탬이 된다는 전언이다.
90년대생 심사역들은 비슷한 나이대의 심사역들과 클럽딜(공동투자) 형태로 투자하려는 시도도 한다. 출생연도별로 작은 모임을 가지는 것 뿐만 아니라 90년대생들과 만나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생긴 공감대다. 당초 주변에 신세진 곳들을 재무적투자자(FI)나 전략적투자자(SI)로 끼워주는 VC업계 양상과 유사하단 평가가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VC업계에 90년대생들이 늘어나면서 이들끼리 뭉치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라며 "클럽딜 문화가 이미 형성돼 있다보니 이들끼리도 투자처 발굴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그 출발점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90년대생 스타트업 대표가 늘어난 것도 일종의 호재다. 해외대학교에서 만난 인맥을 바탕으로 투자처를 발굴하거나 이전에 재직한 직장에서의 인맥이 스타트업을 꾸리는 경우 투자에 참여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군생활 당시 만났던 인맥을 바탕으로 스타트업 대표들과 접촉점을 늘리는 사례도 있다.
투자처는 고민거리다. 플랫폼 시장은 새로운 영역을 개발하는 것이 아닌, 기존 시장에서 세분화된 영역을 타깃(Target)으로 한 플랫폼 기업만 남은 등 이미 포화됐다는 평이다. 이에 90년대생들은 최근 유망분야로 떠오른 NFT나 메타버스와 관련된 기업 위주로 살피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 관련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기업은 오래 전에 씨앗을 뿌려둔 채로 성장한 것이기 때문에 이제 투자에 나서면 늦었다는 평가가 많다"라며 "현재 유망한 NFT나 메타버스 관련 기업들에 먼저 씨앗을 뿌려두려 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