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기업 인적분할 및 자사주 활용해 지배력 강화 가능
상당수 기업 이미 지주체제…삼성·현대차 움직이기 어려워
신설 지주사 규제 강화 부담…중소기업 지주 전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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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주회사 설립을 위해 주식을 현물출자할 경우 발생하는 세금을 이연해주는 제도의 일몰 시한이 올해 말에서 2023년까지로 연장됐다. 여러 기업이 지주회사 체제 전환시 누린 ‘자사주 마법’의 유통기한도 2년 더 늘어났다. 아직 지주사 체제가 아닌 기업들이 시간을 두고 지배력 강화 방안을 고민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에선 외환위기 후 기업 지배구조 개편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지주사 설립이 허용됐다. 지주사 전환은 주로 인적분할 방식으로 이뤄졌다. 오너가 대주주인 회사를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눈 후, 오너의 사업회사 지분을 지주회사에 현물출자하면 오너의 지주회사 지분율이 높아진다. 기존 자사주는 지주사의 자사주와 지주회사의 사업회사에 대한 지분으로 바뀌며 의결권이 부활한다. 지주사의 자사주는 오너의 사업회사 지분과 교환할 수도 있다. 오너의 지주사 지분율과 지주사의 자회사 지배력이 동시에 높아지는 ‘자사주 마법’이다.
이 과정에서 각종 세금 부담이 생긴다. 오너가 주식을 현물출자하는 경우 주식매도로 보기 때문에 양도차익이 생기고, 지주사가 자사주를 처분할 때도 처분 이익이 발생한다. 막대한 양도소득세와 법인세 부담이 생기면 기업들이 지주사로 전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오너가 지주사 지분을 처분해 실질적인 이익이 발생하기 전까지 과세를 이연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다만 이런 과세 혜택은 점차 축소되는 분위기다. 지주 전환 과세이연 특례도 올해 말까지만 적용하기로 했다. 2022년 이후 현물출자로 취득한 지주사 지분은 계속 보유하더라도 4년간 과세이연 후 3년간 세금을 나눠 내도록 했다. 올해 셀트리온헬스케어홀딩스와 셀트리온홀딩스 합병을 통한 지주사 체제 정비를 서두른 것도 과세이연 특례를 받기 위한 것이란 평가가 있었다.
올해 이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 늦어도 전환 후 7년 안에는 세금을 모두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지난 2일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이 개정되며 특례 일몰 시기가 늦춰졌다. 2023년 말까지 적격 요건을 갖춰 주식 현물출자 등 방식으로 지주사를 전환할 경우 과세이연을 허용하기로 했다.
올해까지 지주사 전환에 나서지 못했던 기업 입장에선 2년의 말미를 더 얻게 된 셈인데, 얼마나 두드러진 움직임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SK, LG, 롯데, GS, 현대중공업, CJ, 한진, LS, DL 등 대기업 상당수가 이미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60대 그룹으로 넓혀도 3분의 2에 달하는 기업이 지주사 체제를 갖췄다. 10대 그룹 중에선 포스코가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데 철강부문 물적분할 방식이고 오너가 있는 기업도 아니라 다른 대기업 집단과는 상황이 다르다.
삼성이나 현대차, 한화처럼 아직 지주사 전환을 이루지 못한 곳들도 있다. 이들은 금융 계열사들을 보유 중이다. 지주사로 전환하면 과거 SK나 롯데처럼 금융사 지분을 처분해야 할 수 있다. 견제와 감시를 많이 받는 삼성은 이제와서 지배구조를 바꿀 이유가 많지 않고, 현대차는 현대모비스 지주사 전환을 고심했으나 현실화하지 않았다. 한화그룹은 김동관·김동선·김동원 3형제가 한화에너지를 통해 ㈜한화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고 있어 향후 지주사 체제 전환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있다.
주요 대기업 중에선 신세계 정도가 지주사 체제 전환 시 이익을 볼만한 곳으로 꼽힌다. ㈜신세계 아래 신세계인터내셔날·광주신세계·신세계센트럴시티, 이마트 아래 스타벅스커피코리아·쓱닷컴·이마트24 등을 거느린 지주사와 유사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반면 오너 일가의 지분율도 높지 않은데, 자사주를 늘리다가 지주사 전환에 나서면 지배력을 더 공고히 할 수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웬만한 대기업은 지주사로 전환했고 현대차나 한화, 태광 등은 금융사 때문에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며 “여러 자문사들이 지배구조상 지주사고 일가 지분율이 낮은 신세계그룹에 지주사로 전환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그룹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선 지주사 관련 규제가 강화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에 따라 내년부터 새로 출범하는 지주회사는 자회사·손자회사 지분율을 상장사 30%, 비상장사 50%(현행 상장사 20%, 비상장사 40%) 이상 보유해야 한다. 애초 과세이연 제도 일몰을 추진한 것도 ‘지주사 전환 유도 정책’의 폐기라는 평가가 있었다. 회사 분할과 현물출자 등을 추진하는 데 반년에서 1년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대기업보다는 오너 지분율을 높이고자 하는 중소형 기업들이 지주사 전환을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