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도 과다한 낙관론...연초 이후 하락세 뚜렷해
테이퍼링-타이트닝 시차 줄어들 거란 우려가 현재 핵심
반도체는 올 1분기 실적 확인해야 방향성 판별 가능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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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막이 공개되자 발작이 일어났다. '이미 다 반영된 것'이라던 관측은 모두 빗나갔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대확산으로 인해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을 것이라던 기대도 무너졌다. 지난해 하반기 국내 증시의 버팀목이었던 반도체는 글로벌 수요 변화로 더 이상 제 몫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짧게는 이달 말부터 시작될 지난해 4분기 실적 시즌, 길게는 올해 4월 시작될 올해 1분기 실적 시즌을 통해 시장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진 관망하라는 조언이 힘을 얻고 있다. 올해 상반기 코스피 지수는 좁은 범위에서 등락을 반복하며 3000선을 둘러싼 신(新) 박스권이 펼쳐질 전망이다.
12월 FOMC, 그땐 '안도' 지금은 '우려'
지난해 1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OMC) 직후 글로벌 증시는 안도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의견을 철회하고, 양적완화를 축소(테이퍼링)를 더 빠른 속도로 진행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이는 시장이 예상하던 범위였던 까닭이다. 지난해 연말의 '산타 랠리'는 12월 FOMC 이후 형성된 낙관론에 바탕을 뒀다.
지난해 12월 FOMC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에 대한 의사록이 5일 공개됐다. 문제는 의사록에 시장 예상보다 더 많은 긴축 논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시장은 이전까지 올해 3월 테이퍼링 완료 후 5월쯤 첫 금리인상을 가격에 반영하고 있었는데, 의사록 공개 이후엔 테이퍼링 완료 직후인 올해 3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급히 반영하기 시작했다.
오미크론 대확산은 오히려 긴축의 근거가 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하며 최근 일주일 신규 확진자 수가 400만명을 넘어섰다. 1분에 400명씩 감염되는 추세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오미크론 확산이 연준의 긴축을 더디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의사록은 이런 관측을 뒤집었다.
오미크론 변이가 현재 물가 상승의 배경으로 꼽히는 공급망 이슈에 또 다른 위협이 되고 있고, 이는 인플레이션 상승 리스크라고 명시한 것이다. 오히려 빠른 긴축을 통해 오미크론 확산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위협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지금 연준은 공급망 교란과 임금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최근 미국 맥도날드 아르바이트 시급이 25달러(약 3만원)라고 적힌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회의록에서도 임금 상승에 대해 상당 부분 우려하는 모습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테이퍼링 종료와 긴축 사이에 예상보다 기간이 짧을 수 있다는 내용도 시장에 충격을 줬다. 유동성을 푸는 속도를 줄이는 양적 완화(테이퍼링)와, 아예 시중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긴축(타이트닝)은 다른 개념이다. 당초 테이퍼링과 타이트닝 사이에 상당 기간 여유를 둘 것으로 봤는데, 의사록 공개 이후 타이트닝이 올 상반기 곧바로 진행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퍼지기 시작했다.
다만 연준이 이 같은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건 역레포(逆Repo) 시장의 과잉 유동성 때문이다. 연준이 시중에 자금을 풀어도, 금융기관들이 이를 투자하거나 대출해주지 못해 다시 단기로 연준에 돈을 맡기는 것이 역레포다. 현재 하루 역레포 규모는 1조5800억달러(약 1900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8월 이후 단 한 번도 1조달러 아래로 내려온 적이 없다.
어차피 돈을 풀어도 바닥까지 흘러가지 못하는데, 풀리지 못하고 다시 연준으로 돌아오는 자금은 천문학적인 규모이니 타이트닝을 빠르게 해도 괜찮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던 것이다.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그럼에도 시장은 타이트닝이라는 단어에 극심한 텐트럼(발작) 증세를 보였던 것 같다"며 "연준에서 가장 비둘기파(완화)적인 위원마저 올해 두 차례 금리 인상을 지지하고 있을 정도이니, 지난 2년과는 시장 상황이 완전히 다르긴 하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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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좋고 환율도 오르면 코스피는 올라야? '예상보단 덜 좋다'
미국이 유동성 조절에 나선다는 말은 곧 달러가 귀해진다는 말과 같다. 이는 원달러 환율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지난 6일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200원을 넘어섰다. 코로나19 팬데믹 리스크가 번졌던 지난 2020년 3월 이후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넘어선 건 처음이었다.
반도체 업황이 호전되는 가운데 환율이 오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주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실제로 지난해 1분기에도 비슷한 전망이 제기됐고, 조금 늦긴 했지만 하반기 반도체 가격이 오르며 반도체주의 가격도 급등세를 연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절대적인 비중을 고려하면, 반도체 기업들의 긍정적인 실적은 지수에 버팀목이 돼줄 수 있다. 실제로 지난 12월 변동성이 커진 와중에도 코스피 지수가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 건 반도체주의 호조 덕분이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새해가 시작된 이후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가 보여준 모습은 정 반대였다. 지난 6일 종가 기준 삼성전자는 연말 대비 1.8%, SK하이닉스는 4.6%의 하락율을 보였다. 이 기간 코스피는 1.9% 하락했다.
시장에 알려진 것보다 반도체 업황이 긍정적이진 않다는 우려가 외국인을 중심으로 반도체주 매도세를 이끌었다는 평가다. 주요 메모리반도체 거래 품목인 8기가바이트 디램(8Gb DDR RAM) 기준 현물가격(Spot price) 상승 추세는 이미 지난해 7월 끝났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세 차례 올랐던 평균 계약가격(Contract price)는 지난 10월 다시 한 차례 하향 조정됐다.
현물가격과 계약가격간의 차이인 현물가격프리미엄은 지난해 8월 이후 줄곧 음수(-)인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현물가격프리미엄이 양수(+)면 호황, 반대면 불황으로 해석한다. 지난해 11월엔 현물가격이 뚝 떨어지며 현물가격프리미엄이 마이너스(-) 15% 가까이 내려가기도 했다. 연말 수요가 반영되며 현물가격도 12월부터는 회복세를 보이곤 있지만, 증시의 기대만큼 강력한 추세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베스트증권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은 여전히 비메모리 부문에 집중돼있다. 2022년 디램 수요 증가율은 17%로 공급 증가율 19%를 하회할 전망이다. 다시 공급과잉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구매자 측에서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원가 상승이 반영되기 시작하며, 반도체 수요가 오히려 감소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증권사 평균 목표가까지 가면 코스피도 4000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며 "최근의 반도체주 수급 상황을 보면 증권사들의 반도체 전망에 과도한 낙관론이 자리잡고 있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매크로 변수에 휘둘릴 듯...예측 말고 실적 봐야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일단 국내 증시, 작게는 코스피 지수로 범위를 한정하면 실적 시즌의 추이를 보며 무리한 베팅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매크로 변수가 너무나 많은데다, 미국 연준 역시 변수의 추이를 보며 속도를 조절하고 있기 때문에 중기 이상 예측은 어긋나기 쉬운 상태라는 분석이다.
코스피 지수의 방향을 결정할 반도체주의 경우 길게는 올해 1분기 실적이 나올 4월까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예상보다 매출이나 이익의 폭 감소세가 크지 않다면 다시 희망을 걸어볼만 하지만, 만약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상당 기간 코스피 역시 횡보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오는 25~26일 미국의 올해 첫 FOMC를 앞두고 연준 인사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시장의 가격에 바로바로 반영되며 변동성은 여전히 심할 전망이다. 현지시간 6일에도 제임스 블라드 세인트루이스연준 총재가 내놓은 "인플레이션이 둔화된다면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말에 나스닥 지수가 반응하는 모습이 관측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