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좋은데 왜 파나' 의문 여전…정보 부족 호소
'안전' 추구하지만 기술력 검증 및 확보 불투명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화그룹은 2019년부터 실적 부진을 겪거나 알려지지 않은 해외 기업들을 주로 인수해 신사업 영역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매출이 적은 소규모 회사를 인수합병(M&A)해 초기 투자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으로 규모를 키운 영국 기업 '스라시오(Thrasio)'와 전략이 유사하다는 평이다.
본업과는 이질적인 통신모듈, 파인메탈마스크(FMM) 등의 사업부도 비슷한 전략 하에 인수했다. 투자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보유 기술이 뛰어나다면 매각을 왜 했겠나', '한화그룹이 사업부를 어떻게 일궈내는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화그룹의 정보 공유가 부족하다'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신사업 투자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주력 신사업인 ▲그린에너지 ▲항공우주 ▲디지털 금융 육성을 위한 투자가 주를 이뤘다. 다만 그 외에도 데이터 저장·통신모듈 등 본업과는 다소 무관하게 신사업 지형을 넓히기도 했다.
화학사업을 영위하는 한화임팩트(前 한화종합화학)는 신종 사업 투자를 고민했다. '유전자 편집기술'을 보유한 미국 스타트업 인아리어그리커쳐(Inari Agriculture)에 관심을 보이는가 하면, 미국 데이터 저장기술기업 '카탈로그테크노롤지스'(Catalog Technologies)의 시리즈B 투자자가 됐다.
태양광 부문에 집중하는 듯 했던 한화솔루션은 삼성전기 삼성전기 와이파이·5GmmWave(5G밀리미터파) 모듈 사업부를 인수한다. 일본기업이 독점한 파인메탈마스크(FMM) 시장에 진출하려 관련 기술을 개발한 더블유오에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한화솔루션은 그간 첨단소재부문에서 영위하던 전자소재를 통신영역으로 확장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한화 금융계열사도 블록체인, 가상화폐거래소 등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이었다. 김승연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은 해당 산업들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화자산운용이 블록체인 서비스 개발사인 '람다256' 시리즈A에 투자자로 참여, 한화투자증권이 퀄컴이 보유하던 가상화폐 거래소 두나무의 지분 6.15%를 583억원에 인수했다.
이처럼 한화그룹은 신사업 초기부터 자사가 직접 연구개발을 하기보단 기술을 보유한 기업 지분을 인수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비교적 '안전'한 방식을 취하려 한다는 평가다.
M&A업계에 따르면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은 2020년 중국계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Binance)와 함께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 지분을 인수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한화그룹 측은 2800억원가량을 투자가능 금액으로 제시했지만 빗썸 측에서 4000억원가량을 요구하며 투자의사를 접었다고 전해진다.
이를 두고 한화그룹이 '스라시오 모델'을 구사하는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은 규모의 기업을 투자, 인수해서 가치를 키워 투자금을 회수하거나 자회사로 키우는 방식이다.
-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기술력을 취하는 목적이라곤 하지만, 실적이 부진한 기업이나 사업부를 인수하거나 소수 지분을 인수하려는 경우가 많은 까닭에서다. 미국 수소트럭 기업 '니콜라'처럼 알려진 바가 적은 해외기업을 인수하는 데 '정보 부족'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있다.
먼저 실적이 부진한 기업이나 사업부를 인수하는 데 따른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3450억원에 지분 일부를 인수한 원웹은 코로나로 인한 유동성 문제로 파산위기에 내몰렸던 기업이다. 7월쯤 바르티그룹과 영국 정부의 인수 덕에 위기를 넘겼고 이후 추가적 펀딩을 통해 재무적 어려움에서 벗어났다. 페이저솔루션도 코로나 여파로 경영난을 겪으며 파산 절차에 돌입했고, 이후 한화시스템이 인수에 나섰다.
최근 인수한 삼성전기의 와이파이·5G밀리미터파 모듈 사업은 '카메라모듈' 중심인 삼성전기 통신모듈 사업부에서 존재감이 미미했고, 5G밀리미터파는 기지국 등 설비 투자가 선제돼야 성장이 가능한 사업이다. 투자 주체는 '통신사'가 돼야 한다지만, 최근 실적 부진으로 이들의 투자는 지체되고 있다. 통신모듈 시장 자체가 침체돼있어 그룹이 어떻게 키울 지 관심이다.
일각에선 지난해 중순부터 한화솔루션이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고민하던 '첨단소재부문 물적분할 후 지분 매각'을 위한 사전 밸류업 작업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화솔루션 전체 매출에서 첨단소재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3분기 기준 5~6%에 그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삼성전기 모듈사업부 인수의 경우 이미 한 차례 딜이 무산된 전력이 있고 삼성전기도 비주력사업 정리 차원에서 매각한 사업부다. 작년 초 매각하려던 가격보다 낮게 매각가를 형성한 분위기인데 해당 기술이 중요했다면 팔 생각이 없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라며 "결국 첨단소재부문에 붙여 기업가치를 키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더블유오에스의 경우 회사를 매각한 '웨이브일렉트로'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더블유오에스의 FMM 개발 프로젝트는 2019년 개발 완료됐다. 그러나 이후 영업현금흐름이 발생하지 않으면서 개발비 회수가능액이 장부금액에 미달하면서 손상차손을 인식했다.
해외기업 위주의 인수도 눈에 띈다. M&A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 내에서는 해외기업 위주로 투자를 하라는 기조가 형성돼 있다. 이에 실무진들은 출장을 직접 다녀오거나 검색을 통해 인수 대상 기업을 리스트업(List-up)하기도 한다.
해외 기업 위주의 항공우주 부문 투자에 투자자들은 정보 부족을 호소한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투자한 원웹을 비롯해, 오버에어, 페이저솔루션, 카이메타 등의 지분을 인수해 저궤도 위성사업과 에어모빌리티 사업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물론 항공우주 관련 기업을 국내에서 찾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정보 공유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딜(deal)들이다 보니, 한화시스템 등이 항공우주 기업들에 투자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긴 하는데 이것이 큰 결실인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전략적 지분 인수를 통해 필요한 만큼 기술을 공유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디지털 금융 확장을 위해 한화그룹 금융계열사들이 관련 기업들의 지분을 인수하곤 있지만, 디지털 관련 기술을 공유받기보단 '투자 및 배당수익'을 얻을 뿐일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한 로펌업계 관계자는 "신주 발행 및 인수 대가로 기술 접근 권한을 주는 조건을 달 순 있겠지만, 기술기업에 소수지분 인수해봤자 기술은 구경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20% 주요주주가 된다해도 회사 사업에 중요한 기술 자체에는 접근권한이 없을 수 있다. 소수지분만을 보유한 주주에게 기술 접근권을 주기엔 리스크가 큰 까닭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한화그룹의 역량에 대한 높은 의존', '소수지분 투자에 따른 기술 확보 불확실성', '정보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짙은 모양새다. 수익화 시점은 투자업계의 가장 큰 관심사다. 실제로 증권사 리서치센터 연구원들은 IR에서 "신사업으로 인한 손실은 언제 줄어들며, 수익화는 언제쯤 가능한가"라고 질문하거나 각 계열사마다 주력하는 신사업의 수익이 줄어들면 투자 전망 하향조정을 단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한화솔루션이 REC실리콘을 인수하기 직전까지 '태양광 사업 부진'에 대한 지적을 이어가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화그룹 한 관계자는 "사업부마다 수익화 시점이 다를 것 같다"라며 "해외에서 진행되는 딜이나 전략적 지분투자를 하는 경우, 기술공유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지 여부는 공유되지 않아 파악이 어렵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