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고려해 판매 자제했다"…예상 밖 전략 변화
메모리 시장 변화…연간 전망·투자 계획도 미제시
파운드리 집중 위한 메모리 업황·수익성 관리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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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삼성전자가 지난 4분기 메모리 반도체 판매를 의도적으로 줄였다. 그간 주장해온 것처럼 업황 주기가 짧아지고 응용처가 다양해지며 메모리 가격을 높여 받는 전략을 펼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성장을 위해 이미 왕좌를 차지한 메모리 시장 안정화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27일 삼성전자는 실적발표회를 열고 지난 4분기 D램과 낸드플래시 반도체 판매량이 기존 예상치보다 낮았다고 전했다. 향후 시장 전망을 고려해 무리한 판매를 자제했다는 설명이다. 원래 삼성전자는 지난 10월 3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4분기 중 D램과 낸드 모두 시장 전체 빗그로쓰(bit growth, 비트 단위로 환산한 생산량 증가율)를 상회할 것이라 전망했었다.
반도체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4분기 D램 빗그로쓰가 경쟁사인 마이크론, SK하이닉스보다 낮았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낸드의 경우 중국 시안 공장의 봉쇄 조치로 인한 생산 차질로 삼성전자가 재고를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D램의 경우 출하량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관련 업계에선 예상치 못한 변화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그간 반도체 시장에 비춰봤을 때 삼성전자의 전략 변화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원래 삼성전자의 연간실적 발표는 업계 전반이 새해 투자 계획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받아 가는 자리로 꼽힌다. 삼성전자가 얼마나 투자하느냐에 따라 메모리 시장의 업황과 경쟁 업체, 고객사 수익성까지 달라질 수 있는 탓이다.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도 삼성전자의 발표는 시장 투자 전략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이번 실적 발표에서 연간 메모리 업황 전망은 물론 투자 계획도 전혀 밝히지 않았다. 시장이 바뀌었으므로 고객에게 안정적으로 필요한 반도체를 공급할 수 있는 전략을 선택하겠다는 원론적 답변만 내놨다. 이날 한 기관투자가는 "경영진 교체에 따른 전략 변화로 볼 수 있느냐"라고 질문했고, 삼성전자 측은 "시장 성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략을 바꿨다고 이해해달라"라고 답했다.
삼성전자가 시장 변화를 따라가기보단 업황 안정을 주도하기 위해 적극적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지난해 메모리 업황을 두고 벌어졌던 갑론을박에서 결국 삼성전자의 견해가 맞아 들어간 상황이기도 하다. 작년 하반기 외국계 증권사를 중심으로 업황 악화로 인한 메모리 가격이 하락할 것이란 부정적 견해가 부상한 바 있다. 당시 삼성전자는 메모리 업황 주기가 짧아지고 있고 응용처가 다양해져 수익성 중심 대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4분기 수익성 중심 대처에 나섰고, 두 달여 만에 메모리 가격은 상승세로 전환했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업황 안정을 이끌 수 있다면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부문에 집중하기도 유리해진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51조6339억원으로 집계됐다. 매 분기 사상 최대 매출액을 경신했음에도 영업이익은 지난 2018년의 90% 수준이다. 그나마 지난 2년간 수익성을 회복한 결과지만 초호황기에는 못 미친다는 이야기다.
메모리 사업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파운드리 시장에 집중하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삼성전자의 주요 승부처는 메모리 시장이 아닌 파운드리나 시스템 반도체 등 비메모리 시장이다. 파운드리 사업이 시장 평균치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수익성을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2030년까지 1등을 목표로 세웠지만 현장에서 보자면 경쟁사 TSMC의 벽이 너무 높은데 기술력 외 투자 규모의 차이도 상당하다"라며 "자본과 기술 양 측면에서 규모 경쟁이 필요하기 때문에 파운드리에 과감하게 투자하기 위한 수익성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