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ㆍ평판ㆍ실적ㆍ원팀 소통력' 기준점
네 가지 기준에서 모두 이슈 있어 '탈락'
'경륜 있고 은행 경험 많은 행장' 손 회장 의중 반영
2년 전 권 행장 밀었던 사외이사들도 연임 고수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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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탁도, 교체도 '깜짝 인사'였다. 우리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 3개월, 새마을금고 신용공제 대표 10개월을 거쳐 우리은행장으로 선임됐던 권광석 행장의 임기는 1+1, 총 2년에 그쳤다. 경영 안정을 위해 '재연임'이 보편화된 시기에 은행장이, 1년 짜리 임기만 두 번 소화한 사례는 희귀하다.
지난달 27일 열린 우리금융지주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에서는 오전에 시작한 논의가 저녁 늦게까지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차기 우리은행장 후보군(숏리스트) 3명이 정해졌다. 권 행장의 이름은 여기 포함되지 않았다.
이사회에선 차기 행장의 요건으로 도덕성ㆍ평판ㆍ업무능력 및 실적ㆍ지주와의 원팀 소통능력 등 크게 네 가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이 날 이사회 논의 결과 권 행장은 적합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았고, 결국 숏리스트에서 제외됐다.
핵심은 '원팀' 여부였다. 권 행장 재임 내내 '지주와 은행이 원팀이 되지 못했다'는 관전평이 안팎에서 제기됐다. 일례로 권 행장도, 지주도 지난 2년간 한 목소리로 '디지털'을 강조했지만, 협업을 통해 구현되거나 결과물이 나온 사례는 찾기 어렵다. 그 사이 경쟁사들은 그룹 통합앱 작업에 박차를 가했고, 일부는 성과를 냈다. 실무단에서는 '협의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애초에 예정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2년 전, 권광석 새마을금고 신용공제 대표는 3인의 최종 행장후보 숏리스트에 뒤늦게 포함됐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자신의 복심(腹心)인 김정기 후보를 지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종 승자는 권 행장이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격'이라고 표현했다.
당시 증권사 계열 과점주주와 사모펀드 계열 과점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들이 권 행장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권 행장이 당시 금융권 인맥의 핵심이었던 '울산 학성고' 출신이었다는 점과, 우리은행 경영권에 관심을 보여온 새마을금고가 한 과점주주측 주요 투자자(LP)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 등이 선임 배경으로 언급됐다. 과점주주 민영화ㆍ회장-행장 분리 이후 첫 행장 선임이었던만큼, 손 회장 역시 과점주주들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하며 겉으로는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권 행장 선임 이후 지주와 은행 사이엔 '각자도생'의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평가다. 지주는 지주대로 비은행 확장에 집중했고, 은행은 디지털과 운용역량 강화에 집중했다. 비은행 비중이 크지 않은 우리금융그룹엔 비효율적인 경영 환경이었다는 분석이 많다.
이번 신임 은행장 선정엔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의 의중이 상당히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금보험공사가 지난해 11월 잔여지분 매각에 성공하며 23년만에 '완전 민영화'에 성공한 상황에서, 손 회장이 이런 비효율을 방치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후문이다.
자추위 위원장이기도 한 손 회장이 행장 교체에 무게를 실으면 사실상 외부인인 사외이사들은 이를 뒤집기가 쉽지 않다. 2년 전과는 달리 푸본생명과 유진PE 측 사외이사들이 합류한데다, 지난 2년 간의 난맥이 드러난 상황에서 권 행장의 연임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물론 실적을 두고 논의가 오가기도 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2년 간 두 자릿 수의 성장세를 보였고, 한때 순이익 규모에서 하나은행을 제치기도 했다. 이것을 권 행장의 실력으로 보느냐, 아니면 부동산 가격 급등 및 투자 열풍에 따른 외부 변수로 보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랐다. 논의의 결론은 '외부 변수의 영향이 더 컸다'에 가까웠다.
부문별 성과도 '현저히 우수하다'고 보기엔 어려웠다는 게 이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2020년 권 행장의 취임 일성은 리스크 관리 강화, 그리고 자산관리ㆍ글로벌ㆍ디지털이었다.
파생결합펀드(DLF) 후속 조치로 은행에서 고위험 상품 판매가 사실상 어려워지며 리스크 관리는 큰 의미가 없어졌다. 자산관리 부문은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권 행장 취임 이후 눈에 띄는 변화가 있진 않았다는 평가가 많다. 권 행장이 3000억원이 넘는 증자를 집행하며 공들인 글로벌 부문도 마찬가지였다. 해외 법인이 지난해 3분기까지 1300억여원의 수익을 내며 2019년 1150억여원을 넘어섰지만, 은행 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5%에서 6.5%로 오히려 줄었다. 해외법인 포트폴리오의 절반 이상이 고(高)성장 지역인 동남아시아 부문인데도 그랬다.
도덕성 및 평판 부분 역시 지난해 불거진 이른바 '블라인드 사건'이 일부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권 행장은 사실무근이며 조작된 사진이라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회사의 평판에 완전히 영향이 없다곤 볼 수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는 후문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이슈 자체의 논란은 뒤로 하고, 이에 대한 대응에 은행을 개입시켰다는 데 대해 말이 나왔다"며 "조직보다는 개인을 앞세우는 게 아니냐는 평판도 그룹 안팎에서 이슈가 됐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2년 전 권 행장을 행장으로 추천했던 사외이사들은 이번 이사회에서 연임을 고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곳은 이번에 지주 사장 자리에 오른 다른 후보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실적은 인정받지 못하고, 평판엔 상처를 입은 상황에서 가장 큰 지지 세력이 철수하며 결국 연임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이원덕 행장 내정자의 선임 역시 손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인사로 전해진다. 지난 2020년 12월 인사에서 이 내정자를 지주 수석부사장으로 앉힌 인사를 보고, 그룹 안팎에서는 '차기 행장으로 키우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손 회장은 차기 행장으로 '은행 경험이 많고, 경륜이 있는 인사'를 원했다. 여기에 부합하는 인물이 이 내정자였던 셈이다.
권 행장은 평소 소탈하고 평직원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성격의 리더로 알려져있다. 이 때문에 영업일선에선 권 행장을 선호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실제로 27일 숏리스트가 결정되자 영업을 담당하는 일부 은행 본부장급 인사들은 '주목도가 떨어지는 명절 연휴 직전에 날치기로 결정했다'며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다만 경쟁자를 포함한 금융업권 전체로 귀를 넓혀보면 '교체할만 했다'는 목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권 행장은 수 년간 '능력'과 관련해 가장 많은 논란에 휩싸였던 금융인이기도 하다. 애초에 우리PE 경력 자체가 전문성 보다는 당시 행장이었던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이 적폐로 몰리며 자신의 라인이었던 권 행장을 피신시켜준 것이라는 평이 많았다. 자리를 옮긴 후에도 불과 3개월만에 새마을금고로 적을 옮기며 우리PE 임직원들을 허탈하게 했다.
새마을금고 신용공제 대표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도 경쟁후보 없이 단독후보로 후보자리에 올라 일사천리로 선임이 결정됐다. '투자 전문가'로 포장했지만, 임원으로 승진한 이후 리더로서 투자 부문을 이끈 경력은 우리은행 IB그룹 집행부행장 1년, 우리PE 대표 3개월이 전부였다. 행정안전부 감사결과에 따르면, 권 행장이 신용공제 대표를 맡은 2018년 자금운용부문 운용수익률은 2.74%로 직전년도 3.20%대비 0.46%포인트 뒷걸음질쳤다.
이후 10개월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우리은행장 경쟁에 입후보했고, 실제로 행장에 올랐다. 지난해 초 기준으로 보면 차기 우리금융그룹 회장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도 했다. 은행장 1년차가 차기 회장 후보라는 것 자체가 우리금융지주의 위기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 예보 지분 추가매각에 참여한 한 과점주주가 추가 지분 확보에 성공해 사외이사 추천권을 한 자리 더 손에 넣으면, 권 행장이 연임될수도 있을거란 시각이 있었다"며 "정부에서 기존 과점주주에게 추가 추천권을 허용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권 행장은 운명이 결정된 것일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