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병 회장 2020년 연임 후 '리스크 가이드라인'돼
함영주 부회장 외엔 대안 없어...논란 여지 없애
CEO 인력 풀 적은 하나금융 문제점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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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됐던 인물이었지만, 예상보다 빠른 시점에 확정됐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내정될 거란 시각은 많았지만, 그 시점을 2월 상순으로 예상한 시각은 많지 않았다. 빠른 차기 회장 내정을 통해 불확실성을 줄이고, 조직 정비를 노릴 수 있게 됐다는 평이다.
이번 함 내정자 선정에는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연임 케이스가 상당한 영향을 줬다는 후문이다. 함 내정자의 법률리스크가 불거지더라도, 대법원 확정 판결 전에는 회장직 수행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는 게 이사회의 판단이었다.
하나금융지주 회장추천위원회(회추위)는 지난 8일 오전부터 5명의 최종후보군(숏리스트)에 대한 면접을 진행했다. 회추위는 지난달 28일 11명의 잠재후보군(롱리스트) 중 함영주 부회장, 박성호 하나은행장, 윤규선 하나캐피탈 사장, 이성용 전 신한DS 대표, 최희남 전 한국투자공사 사장을 숏리스트로 선정한 바 있다.
회추위는 면접 후 회의를 거쳐 이날 저녁 곧바로 함 부회장을 차기 회장 내정자로 발표했다. 이전까지 금융권에서는 오는 25일 함 내정자가 연루된 채용비리 관련 1심 판결이 나온 이후 회장 후보가 될 것으로 예상해왔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아무리 일러도 16일 파생결합펀드(DLF) 관련 행정소송 판결은 지켜본 후 결정을 내릴 줄 알았다"며 "10일 실적발표와 투자자설명회(IR)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결정할 거라 예상한 시각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하나금융 회추위는 회장의 자격요건으로 ▲경력과 업무성과 ▲적법성·윤리성 ▲기업가정신 ▲글로벌 마인드 ▲비전 및 중장기 경영전략 등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이번 차기 회장 결정의 핵심 키워드는 '믿을만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애초에 '인물'엔 변수가 없다는 평가가 많았다. 지난해부터 김정태 회장의 4연임설이 금융권에서 제기됐지만, 숏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으며 사실무근으로 결론났다. 남은 인물은 은행장을 거쳐 지주 부회장으로 그룹 경영 경험을 쌓은 함 부회장 정도였다. 재임 1년차인 박성호 행장을 비롯, 나머지 후보군은 구색 맞추기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이사회 역시 이 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말부터 함 부회장의 가장 큰 리스크 요인인 법률 이슈를 세부적으로 검토해왔다. 오랜 검토 후 최종적으로 '문제 없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는 조용병 회장 케이스를 참고했다는 후문이다. 조용병 회장은 지난 2020년 1월 채용비리와 관련,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보다 한 달 앞선 2019년 12월, 신한금융 회추위는 조 회장의 연임을 결정했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련 법률 및 신한금융 지배구조 내부규범은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집행유예 중에 있거나, 형이 끝난지 5년이 되지 않은 인사를 경영진으로 선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당시 신한금융 회추위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확정된 선고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조 회장의 연임은 주주총회에서도 큰 문제없이 받아들여졌다. 선임 전에는 다소 예민한 목소리를 내던 금융당국도 주총 이후 별달리 반발하지 않았다. 이후 이 기준은 금융회사 임원 법률리스크의 가이드라인이 됐다는 평가다. 조 회장은 지난해 11월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DLF 관련 행정소송은 앞서 가처분 신청에서 함 부회장이 승소한데다, 비슷한 혐의로 소송을 진행한 손태승 회장이 지난해 8월 1심에서 승소하며 부담이 덜한 상태다. 남은 건 채용비리 관련 소송이다. 조 회장 케이스에 따르면, 1심에서 함 부회장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더라도 회장직 수행에는 법적인 무리가 없는 셈이다.
남은 건 주주총회의 의결이다. 앞서 2020년 조 회장은 물론, 우리금융 손태승 회장도 비슷한 이슈로 주주종회에서 이슈가 있을 거란 전망이 제기됐었다. 결과는 두 최고경영자 모두 큰 무리 없이 연임에 성공했다. 당시 법률리스크를 근거로 ISS 등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이 반대를 권고했음에도, 주주들은 경영 안정에 무게를 두고 회추위의 결정을 지지했다.
이번 함 내정자의 주주총회 승인 역시 현 시점에서는 큰 무리가 없을 거란 전망이 주를 이룬다. 하나금융 이사회가 당시 최흥식 금융감독원장과 극한까지 대치한데다, '셀프연임' 등의 부정적인 구도가 만들어지며 반(反) 김정태 회장 세력이 결집했던 2018년 회장 선임 때에도 참석 주주 78.9% 가운데 반대표는 15.0%에 그쳤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2012년부터 재직한 김정태 회장의 이사회 및 주주 장악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함 내정자가 김 회장의 후계자라는 인식이 2~3년전부터 꾸준히 쌓여온만큼 주총에서도 큰 변수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함 부회장으로의 안정적인 승계와는 별개로, 법률 리스크가 있는 인물을 차기 회장으로 내정할 수밖에 없는 하나금융의 최고경영자 후보 풀(pool)의 한계는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신한금융은 아직 조용병 회장이 2연임 중으로 시간이 남아있다. KB금융의 경우 지주 전략ㆍ재무담당-계열사 대표이사-지주 부회장이라는 육성 루트를 통해 차기 경쟁 구도를 마련했다. 하나금융은 가장 먼저 3인의 부회장 구도를 도입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김정태 회장-함영주 행장(2016년부터 부회장)의 구도가 오랫동안 지속돼왔다는 평가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합병한 '격변기'에 행장을 맡았던 김병호 행장과 김한조 행장이 임기 후 그룹에서 별 역할을 하지 못하며 자리에서 물러난 까닭이다. 이를 통해 김정태 회장의 조직 장악력은 강화됐지만, 깜짝 발탁된 함영주 당시 행장 외에는 무게감 있는 인사가 자취를 감추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다.
함 행장 역시 발탁 당시 충청영업그룹 부행장으로 무게감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회장 내정자가 된 지금도 비은행 계열사 경영 경험이 없다는 점이 최대 약점으로 꼽힌다.
여기에 지난 2020년 지주 부사장ㆍ은행 부행장 및 전무 임원 수를 크게 줄이며 인력 풀이 한층 더 줄어들었다. 당시 하나금융은 조직을 슬림화하며 겸직 임원을 늘려 그룹 통합 경영을 가속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이로 인해 차기는 물론, 차차기 최고경영자 후보군이 크게 줄어든 것 역시 사실이다.
한 금융그룹 관계자는 "2020년 당시 고위 임원을 10명 이상 줄인 인사는 김정태 회장의 뜻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 임원 풀을 보면 함영주 회장 이후 차기 후보는 또 다시 박성호 행장 단 한 명만이 남게 되는 구도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