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R 바스켓 편입이 기축통화 인정받는 것 아냐
논의의 핵심은 '국채 더 발행해 돈 풀어도 되느냐'
한국 국가 채무 비율 이미 위기...건전하지 않아
성장률 하락ㆍ시장금리 급등ㆍ외국인 이탈 등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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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가 기축통화가 되느냐 마느냐는 본질이 아니다. 현 시점에서 정부가 국채를 더 발행해, 국가 채무를 크게 늘려서, 자영업자 지원 등 돈을 푸는 데 써도 되느냐가 핵심이다.
결론적으로는 쉽지 않다.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위험 단계에 들어섰다는 징후가 여기저기서 포착되고 있다. 한다 해도 외화자금 이탈, 국가신용등급 하락 등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경제 성장률도 희생될 수 있다. 금융권에선 '선거를 위한 정치 논리에 국가의 미래를 걸고 도박을 하는 셈'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기축통화 논란은 지난 21일 열린 대선 주자 TV 토론회로부터 촉발됐다. 기축통화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보니 해석하는 과정에서 여러 시각이 혼재됐고, 덕분에 결론 없이 논란만 가열되고 있는 상황이다.
SDR 편입≠기축통화 인정...타국의 외환 보유ㆍ국채 매수가 핵심
일단 '원화가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을 구성하는 통화에 포함되면 기축통화의 지위를 얻게 되느냐'부터 따져보자.
좁은 의미의 기축통화는 미국 달러 단 하나다. 1974년부터 가동된 '페트로 달러'(petro-dollor) 시스템 때문이다. 국제 원유는 달러로만 거래된다. 이외에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세계 각국이 외환 보유액을 어떤 통화로 보유하고 있는지, 어떤 통화가 교역에 많이 쓰이는지를 통해 자연스레 지위가 생긴다. 현 시점에서 이런 지위를 가진 통화는 달러화 외에 유로화,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화 정도다. 한국은행에서는 이들을 교환성 통화라고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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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개념이 워낙 상대적이다보니, 일부 학술 연구 자료에서는 편의를 위해 IMF의 SDR 편입 여부로 기축통화를 구분하기도 한다. 이번 논란은 여기서 파생된 오류라는 시각이 많다.
SDR이란 IMF의 유가증권으로, 흔히 아는 '구제금융'이 이 SDR의 형식으로 지원된다. SDR 자체는 단순한 유가증권에 불과하다. 편입하는 통화 및 편입 비중을 해당 통화 사용 국가의 무역 규모 및 발행량을 고려해 결정할 뿐이다.
이를 두고 한 금융권 전문가는 "달러ㆍ유로ㆍ엔ㆍ파운드는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SDR에 편입됐지만, SDR에 편입됐다고 해서 기축통화인 건 아니다"며 "중국 위안화는 2016년 SDR에 편입됐지만 중국 위안화가 세계 각국 외환 보유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기축통화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적정 국가 채무 비율 연구 '결론 안 나'...기축통화국이 2배기축통화 여부는 '국채를 더 발행해도 되는가'는 논의로 넘어가기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기축통화로 인정받는 통화를 사용하는 국가는, 그렇지 않은 국가에 비해 국가 부채 비율이 높다. 통화가 전 세계에서 활발히 유통되기 때문에, 일정 수준까지는 돈을 찍어내도 이를 매입하려는 수요가 꾸준히 따르는 까닭이다. 이를 기축통화국의 '발권력'이라고도 표현한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IMF 자료 기준, OECD 37개 회원국 중 달러화ㆍ유로화 등 주요 기축통화를 사용하는 23개국의 평균 국가 채무(정부 부채) 비율은 80.4%였다. 한국을 포함한 나머지 14개 비(非)기축통화국의 평균 국가 채무 비율은 41.8%였다. 기축통화국이 되면 일정 수준의 부채를 감당할 수 있고, 따라서 국채를 더 발행해 돈을 풀어도 된다는 주장의 배경이다.
적정한 국가 채무 비율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라는 주제는 오랜 기간 경제학의 핵심 논란거리 중 하나다. 명확한 결론 역시 나오지 않았다.
앞서 지난 2020년 한국경제연구원은 소국 개방경제의 적정 국가 채무 비율을 41.5~45%로, 이 중 비기축통화국일 경우 37.9~38.7%로 제시하기도 했다. 정부 역시 2018년까지만 해도 재정건전성의 마지노선으로 국가 채무 비율 40%를 고수했던 것이 사실이다.
현재 기획재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재정준칙은 국가 채무 비율 60%,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 적자 마이너스(-) 3% 이내다. 이는 유럽연합(EU)이 회원국들에게 권고하는 '안정과 성장에 관한 협약상 재정준칙'과도 동일하다.
적정 국가 채무 비율에 대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지만, 국가 채무 비율과 경제 성장과의 상관관계는 어느정도 입증된 상태다. 미국의 경제학자 카르멘 라인하트와 케너스 로고프의 연구에 따르면, 국가 채무 비율이 60% 수준에 도달하면 국가 연간 성장률이 평균 2%포인트 감소하고 90%를 초과하면 대략 절반으로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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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기획재정부가 전망한 한국의 국가 채무는 올해 1075조원으로,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50.1% 수준이다. 2018년 '마지노선'이던 40%를 넘긴 뒤 불과 4년만에 10%포인트 증가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IMF의 주요국 재정지출 전망을 바탕으로 2026년엔 국가 채무 비율이 66.7%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추가 국채 발행 및 재정 확장 없이, 현 시점에서 예상 가능한 수치만으로 전망한 수준이 이 정도라는 이야기다.
2014년 새 기준 따르면 한국 국가 채무 비율 이미 100% 넘어
이미 한국 국가 채무 비율이 100%를 넘어섰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은 IMF가 1986년에 제정한 좁은 의미의 국가 채무 개념을 따르고 있다. 정부의 회계와 기금만을 부채로 산정하는 방식이다. IMF는 2014년 이를 개정해 정부재정통계(GFS) 기준을 적용했고, EU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이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여기엔 21개 공공기관 관리기금과 연금 충당 부채까지 들어간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이 GFS 기준을 적용할 경우, 이미 2018년에 국가 채무 비율이 106.5%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재정준칙상 기준인 60%는 물론, 2017년 IMF가 제시한 선진국 국가 채무 비율 관리 기준 85%도 한참 넘은 수치다.
일각에선 국가 채무 비율이 200%가 넘는 일본을 사례로 들며 국가 채무 비율이 큰 의미가 없다는 논리도 나온다. 다만 일본의 경우, 엔화가 이미 세계 3대 통화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일본의 2020년 기준 대외순자산 규모는 약 3조247억달러(약 3900조원)으로, 한국의 7배에 달한다.
게다가 일본 국채의 90%는 국내에서 소화된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절반을 매입한다. 정부의 부채는 커지고 있지만, 해외에 빌려준 돈이 워낙 많은데다 채무자가 대부분 일본 국내에 있으니 위기가 외부로 퍼질 리스크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부채는 정부의 비중이 다른 주체들과 비교해 크게 작은, 기형적인 구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국내 민간신용(가계부채+기업부채)의 GDP 대비 비율은 219.9%에 달했다. 1년 새 10%포인트 가까이 급증했다. 특히 가계부채 비율이 106.5%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일본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2분기 말 기준 63.9%, 기업부채 비율은 113.5%였다. 민간신용 비율이 177.4%에 불과하다. 경제를 실제로 돌리는 원천인 민간의 체력은 한국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GFS 기준 적용시 한국 정부의 부채 비율은 GDP 대비 110%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고려하면 일본보다 나라의 재정이 크게 건전하다고 판단하기 어려울 거란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GDP 규모는 약 1900조원이었다. 일부 대통령 후보의 주장대로 국가 채무 비율에 30%포인트의 여력이 있다면, 정부가 약 580조원의 빚을 더 져도 괜찮다는 논리가 된다. 2020년 한국 국채 발행량이 180조원이었고, 올해 발행 예정 물량은 166조원이다.
여기에 수백조원의 발행계획이 갑자기 추가된다면 시장이 이를 소화할 수 없으리란 예상이 나온다. 유상증자로 주식 공급이 늘어나면 주가가 떨어지듯, 채권 역시 공급이 늘면 채권 금리가 상승(=채권 가격이 하락)한다. 안 그래도 인플레이션때문에 치솟은 시장금리가 한 차례 더 폭등 충격을 겪을 가능성이 생긴다. 보유 중인 채권의 가치가 하락할 게 뻔한 까닭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탈할 가능성 역시 크다.
국채 발행이 크게 늘어 국가 채무 비율이 치솟으면 국가 신용등급 역시 유지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는 국채 금리를 더 높일 수 있다. 신용등급이 낮으면 더 많은 금리를 보장해줘야 투자자들이 매수에 나서는 까닭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달러로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조차 돈을 무제한 발행해 경기를 부양해도 괜찮다는 현대통화이론(MMT)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데 '한국 지역 통화'인 원화로 비슷한 정책을 펼치겠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