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기피 현상에 연봉은 두 배로 올라
'재해 방지'라는 목적 달성까지 시일 걸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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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건설사들이 떨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이 시행됐고, 주주들도 지속가능경영ㆍ안전경영에 대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새해부터 연일 터지는 현장 사고에 당장 건설사 최고경영자(CEO)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평가다.
일부 중견 건설사가 잇따라 전문경영인 체재로 전환하며 오너들의 책임회피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CEO를 꺼리는 풍조가 만연하며 연봉을 두 배로 올려 부르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중대재해법 시행에도 불구, 실질적인 사고율 감소로 이어지기에는 다소 시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7일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사이 삼표산업, 요진건설산업, 여천NCC, 쌍용C&E 등 여러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승강기, 채석장 붕괴, 현장 추락 등 사고 경위도 모두 다르다. 삼표산업, 요진건설산업, 여천NCC 등은 현재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법을 적용해 수사 중이며 쌍용C&E는 중대재해법 적용 여부를 판단 중이다.
현장 안전관리를 향한 외부 규제가 강화되자 건설업계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실질적인 사고 감소라는 원래 목적과는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오히려 책임자 ‘공백’ 사태가 벌어지는 데다 실제 건설현장의 목소리를 담기보다 겉핥기식 조치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인명사고 발생 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중대재해법으로 인해 '책임 공백'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건설사 CEO를 모두가 기피하는 탓에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일부 건설사에선 CEO 연봉이 두 배 가까이 올랐다는 후문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 CEO가 돈과 명예를 보장해주는 시절은 옛말”이라며 “아무리 연봉을 많이 준다고 한들 자칫 잘못하면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는 자리를 누가 기꺼이 맡으려고 하겠느냐”라고 말했다.
일부 발 빠른 건설사들이 전문경영인을 대표이사로 앉히며 ‘꼬리 자르기’ 논란도 일고 있다. 요진건설산업은 작년 말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오너 일가인 최은상 부회장 대신 전문경영인인 송선호 사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이외에 김상수 한림건설 회장, 태기전 한신공영 부회장, 권민석 IS동서 사장이 지난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건설사를 향한 주주 제안 역시 발등의 불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 지분을 1% 이상 보유한 네덜란드연기금(APG)은 지난 8일 ▲지속가능경영, 안전경영, 건설 관련 법령 준수 등에 관한 회사의 의무를 명문화하는 전문(Preamble) 신설 ▲ESG에 관한 권고적 주주제안권 도입 ▲이사회 내 안전보건위원회 설치 ▲지속가능경영 공시 도입 등을 제안했다. 이 가운데 이사회 구성원으로 안전전문가 선임 촉구 등이 주요 내용으로 꼽힌다.
건설사들은 최근의 건설 현장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볼멘 소리를 내고 있다. 외부 전문가 영입 등 원론적 대안 만으로 현장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될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해외 노동자와의 소통 문제가 현장 관리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수년 간 이주노동자 수가 크게 늘면서 문화 및 언어 차이로 현장 통솔에 애로사항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방 현장으로 갈수록 하도급 회사와 지역 행정기관의 유착 관계도 심하다는 의견이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현장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외부 전문가를 선임한다고 해서 사고를 막을 수 있을지 의심하는 시선들이 많은 이유다.
이와 관련, 네덜란드연기금(APG) 측은 “APG는 사고 당시 HDC현대산업개발의 주주로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사고에 그만큼의 도의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라며 “이번 주주제안은 지배주주를 포함하여 경영진과 이사회에 책임을 물어 현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라는 촉구다. 실효성이 크지 않을지는 모르겠으나 주주로서 가능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