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심사 통과는 지연될 듯
현대오일뱅크 비롯 대부분의 심사 미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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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현대오일뱅크가 길어지는 한국거래소의 심사 탓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가는 기록적인 급등세를 보이며 실적만으론 ‘최적의 타이밍’을 맞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전반적인 주식시장 분위기와 깐깐해진 한국거래소의 심사 문턱 탓에 자체적으로 상장 시기를 조율할 가능성도 떠오른다.
지난 2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러시아군 진입을 명령하면서 증시와 유가는 엇갈린 지표를 나타내고 있다. 뉴욕 증시 및 코스피, 코스닥 등 국내외 증시는 잇따라 하락세를 보였다.
반면 국제 유가는 폭등 중이다. 러시아는 천연가스와 유연탄, 알루미늄과, 니켈 등 주요 광물 수출국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발발 위기로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값이 폭등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날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배럴 당 91달러, 브렌트유는 96달러, 중동 두바이유도 96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평균 80달러 수준으로 예상됐던 유가가 100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더욱 심각해진다면 110달러를 웃돌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런 상황 탓에 상반기 상장을 계획하고 있는 현대오일뱅크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있다. 유통시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증시 입성을 계획하고 있는 ‘정유’회사인 까닭이다. 유가 상승세에 따른 실적 성장세는 분명 상장에 호재이기는 하지만, 심상치 않은 증시 분위기 탓에 경계를 늦추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부터 유가 상승에 따른 매출 호조를 경험했다. 지난해 매출 20조6065억원, 영업이익 1조1424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 약 6000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적자를 냈다가 작년 하반기부터 유가 상승으로 창사 이래 최대 흑자를 낸 것이다. 실적만 따져보면 현대오일뱅크는 하루 빨리 상장을 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시각이다.
다만 최근 한국거래소의 깐깐해진 심사 과정 탓에 일정은 다소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의견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K-유니콘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기조 하에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며 상장 기준을 완화했지만 최근 분위기가 다소 달라졌다는 전언이다. 밸류에이션(Valuation) 고평가 논란, 상장 이후 주가 하락세 등의 이어지는 시장 상황을 고려하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로 지난해 대어급 공모주로 인기를 모았던 크래프톤,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 등의 주가가 올 들어 크게 하락한 바 있다. 현재 크래프톤 주가는 28만원대로 공모가 대비 40% 가까이 떨어졌다. 카카오페이 주가는 작년 말 대비 43%, 카카오뱅크 역시 작년 8월 최고 주가 대비 절반 가까이 하락한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거래소의 심사를 받던 중 일정을 다소 연기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작년 말 예비심사를 청구해 둔 원스토어는 아직 승인을 받지 못했고, 마켓컬리는 거래소와 협의 중으로 아직 청구를 하지 못한 상황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거래소가 최근 들어 투자자 보호 기조가 더욱 강화되면서 정해진 영업일 내에 심사를 마치는 사례가 많이 줄어들었다”라며 “발행사 역시 주식 시장 상황이 좋지 못하다보니 상장 시기 조율을 고려하는 회사들도 늘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마냥 상장 시기를 앞당기는 것 역시 현대오일뱅크로서는 부담이긴 마찬가지다. 원하는 공모가 수준을 아예 낮추기도 어려운 데다 상장을 강행했다가 자칫 철회한다면 모멘텀을 잃어버릴 수 있는 탓이다. 실제로 현대엔지니어링은 HDC현대산업개발 사태로 인한 건설주 침체로 상장일정을 미뤘고 이 달 들어 미코세라믹스나 퓨처메디신 등 바이오 회사들은 아예 심사 청구를 철회하기도 했다.
또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019년 사우디 아람코로부터 투자를 받으며 약 8조원 중반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2021년 미국 빅데이터 기업 팔란티어로부터 약 240억원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당시보다는 상장 시 밸류에이션이 이를 웃돌아야할 필요성이 큰 셈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재작년부터 작년까지 이어진 공모주 대박 열풍으로 발행사들도 생각하는 기업가치와 이에 따른 공모가격이 있는데 이를 마냥 낮추는 것은 마치 10억짜리 부동산을 3억~4억 깎아서 팔라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라며 “공모가는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상장만 강행할 수도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