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는 SK vs. 특혜 없었다는 두산
'수소법 개정안' 놓고도 충돌, SK 흑색선전 의혹도
내수 타깃 아니라는 SK에 두산 혼란…신경전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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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향후 급성장이 예상되는 수소연료전지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 두산퓨얼셀과 블룸SK퓨얼셀(SK에코플랜트 지분 49%)의 신경전이 지속되고 있다. 수소법 개정안이 아직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사 모두 '시장 주도권을 쥐고자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에 입김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는 '네거티브 전략'도 불사하는 모양새다.
두 기업의 갈등이 촉발된 것은 2019년부터다. 그해 SK에코플랜트가 미국기업인 블룸에너지와 SOFC(고체산화물 연료전지) 생산 합작법인(JV) 및 국내 생산공장 설립에 대한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하며, 이미 PAFC(인산형 연료전지) 사업에 뛰어든 두산퓨얼셀과 경쟁구도에 놓이게 됐다.
수소연료전지는 말 그대로 '수소를 연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장치'다. 종류는 4개 정도인데 두산퓨얼셀 연료전지는 PAFC로, 부산물로 나오는 '온수'를 통한 열병합 발전도 가능해 에너지생산 효율이 좋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다만 열병합을 위한 부지가 필요해 입지가 제한적이다. 블룸SK퓨얼셀은 전기생산 효율은 높지만 가격은 비싼 'SOFC(고체산화물 연료전지)'에 주력해왔다. 최근 두산퓨얼셀은 온수가 아닌 전기만을 필요로 하는 발전사의 최근 수요를 반영, SOFC 개발에도 착수한 상태다.
SK "기울어진 운동장"…두산 "특혜?, 실익 없었다"
시장에 뒤늦게 진입한 SK에코플랜트 측 관계자는 지난 4년을 '두산퓨얼셀에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라고 평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그 배경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먼저 '국산화'다. 산자부가 국산화에 성공한 두산퓨얼셀의 연료전지 활용을 권장해왔다는 주장이다. 통상 남부발전 등 5개 발전 자회사들이 재생에너지 발전사와 공급인증서(REC) 장기계약을 맺는데, 블룸SK퓨얼셀 연료전지가 쓰인 사업의 계획에 대해선 보류 의견을 내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SK에코플랜트는 블룸에너지와 합작사를 만들고 국내에 공장을 짓긴 했지만, 국산화는 늦어지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블룸에너지 측에서, 한국에서 개별적으로 부품을 개발하면 기술이 넘어갈 것이란 우려에 국산화에 동참하지 않으려 한다고 안다"라고 말했다.
종합효율을 끌어올린 연료전지 REC에 가중치를 주는 것도 두산퓨얼셀에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에너지종합효율 개선을 통한 온실가스 절감을 위해 종합효율 65% 이상을 만족하는 경우 추가 가중치를 부여하도록 했다. REC 가중치가 높을수록 발전소 수익도 올라간다. 두산퓨얼셀의 연료전지는 전기에너지 뿐만 아니라 열병합 발전도 병행해 전체적인 에너지생산 효율이 높은 편이다.
두산퓨얼셀이 탈원전기조 '덕'을 봤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산자부가 일종의 부채의식으로 두산퓨얼셀의 편을 들었다는 주장이다.
두산퓨얼셀 측은 특혜는 없었다고 설명한다. 두산퓨얼셀 한 관계자는 "PAFC를 비롯한 SOFC 등 모든 연료전지는 전기와 열을 활용해 효율을 높일 수 있다"라며 "발전공기업 입찰시 LCOE(균등화발전원가)가 낮을수록 유리할 뿐이며 국산화 관련 베네핏(Benefit)은 없었다"라고 선을 그었다. 블룸SK퓨얼셀의 연료전지는 LNG(액화천연가스)를 원료로 해, LCOE가 다소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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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수소법 개정안도 불리"…두산 "로비왕은 SK"
수소법 개정안을 두고도 두 회사는 신경전을 벌여왔다. 산자부 측은 개정안이 통과돼야만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쿼터제 시행을 통해 매년 300~400MW 연료전지 발주 ▲ 청정수소인증제(CHPS) 도입으로 청정수소 활용 비중 10%에서 점차 확장 ▲ 수소발전의무화제도(HPS) 도입을 통한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단독 공개입찰 등을 개정안 내용으로 언급하고 있다.
블룸SK퓨얼셀엔 불리한 내용들이라는 주장이다. 일단 CHPS 도입으로 청정수소 비중 10% 의무화가 진행되면, SK에코플랜트는 해당 비중만큼 자사제품을 쓸 수 없다. LNG만 쓸 수 있는 블룸SK퓨얼셀 연료전지는 청정수소 활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령 40MW 규모의 발전소를 건설하면, 10%에 해당하는 4MW 정도는 두산퓨얼셀의 연료전지를 깔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셈이다.
SK의 로비활동에도 제약이 생길 수 있다. SK에코플랜트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SK에코플랜트는 그간 5개 발전 자회사를 대상으로 영업을 해왔다. 'SK그룹 임원 자리'를 주겠다며 각 발전 자회사에 '타 발전사와의 비교'를 단행, 적극 영업을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HPS 도입에 따라 전력판매사인 한전이 단독으로 공개입찰에 나서게 되면 이같은 로비는 더이상 불가능해진다.
SK에코플랜트 측은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로비력이 실제로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우리는 수소 사업 비중이 낮아서 주택사업에 대관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SK그룹 전반의 대관도 SK텔레콤이나 SK이노베이션 등 통신·에너지 사업에 집중된 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두산퓨얼셀이 산자부를 꽉 잡고 있다'는 등 두산그룹의 대관 활동이 활발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산그룹 출신 인사와 산자부 전 차관이 재직 중인 컨설팅펌에서 산자부에 두산그룹에 유리한 내용의 안건을 제안하거나 수소법 설계에 있어 입김을 행사했다는 주장이다.
두산퓨얼셀 측은 이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SK에코플랜트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해당 컨설팅펌에서 수소법 설계를 했고 설계 과정에서 SK에 불리한 내용이 나오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SK그룹 역시 해당 컨설팅펌과 관계가 없지 않았다는 증언도 있다.
이처럼 수소법과 국내 연료전지 생태계를 둘러싼 양사 이해관계가 첨예한 만큼 업계 각처에서 발생하는 잡음의 출처를 문제삼는 목소리도 자연스레 커지고 있다. 대부분 SK에코플랜트의 불리를 강조하는 내용이다 보니 출처도 SK그룹 아니겠냐는 의심이다. 두산퓨얼셀을 둘러싼 후문에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관을 할 만큼의 자본력을 갖췄다고 보긴 힘들다는 평가도 있다. SK에코플랜트의 경우 배성준 산자부 전 과장을 에코에너지전략 담당으로 영입하고 수소법 관련 목소리를 내온 것으로 파악된다.
두산퓨얼셀 측은 수소법 개정안이 자사에 무조건 유리한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SK와 마찬가지로 SOFC를 개발 중이고 장기적으로는 같은 입장에 놓이게 된다는 설명이다. 두산퓨얼셀 한 관계자는 "정책상 PAFC에 당장 유리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제살 깎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수시장 관심없어' vs '투자여력 있어'…신경전 지속
수소법 개정안 통과까지 양사의 물밑 신경전은 지속될 전망이다. SK에코플랜트 한 관계자는 국내보단 해외 시장에 더 관심이 있어 수소법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전해왔는데, 두산 측은 이를 '솔직하지 못한 태도'라고 봤다.
SK에코플랜트는 수소법 개정안이 나오면 그에 대응은 할테지만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국내보단 해외시장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서다. 그러나 두산퓨얼셀 측은 "블룸SK퓨얼셀 측 연구개발 인원이 상당하다. 기술 개발 투자도 하고 인건비도 감수하는 것 보면 국내 시장도 커질 것이니 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밝혔다.
되레 두산퓨얼셀 측은 SK에코플랜트가 자금력을 기반으로 추후 국내 시장 점유율을 늘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SK에코플랜트의 가장 큰 장점은 '자금력을 기반으로 시행과 시공까지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이다. 발전사 대상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두산퓨얼셀은 결국 블룸SK퓨얼셀에 점유율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게다가 수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내 수소시장 규모가 크게 커질 전망이다.
SK에코플랜트 측은 두산그룹 자구안 이행으로 두산퓨얼셀은 설비투자조차 어려웠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두산퓨얼셀은 매각설까지 나왔던 기업인 데다 개발 중이라던 SOFC도 SK에코플랜트의 것과는 기술적 차이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에 두산퓨얼셀 측은 "SOFC는 기술 개발을 위한 유상증자를 따로 진행해 투자해왔다"라며 "자구안 이행으로 인한 설비투자 부진은 결코 없었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