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S 선택적 적용해 사용불가 '스펙'으로 판매한 것
파운드리-시스템LSI 책임공방 잡음 갤럭시로 드러나
노태문 MX부문 부진시 비메모리 경쟁력에 연쇄 부담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연초부터 불거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 내 잡음이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당장은 갤럭시S22의 성능 논란 등 시장 신뢰 문제로 비치고 있지만 삼성전자 전반의 경쟁력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주주총회를 앞두고 예상보다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갤럭시S22에 대한 소비자 반발이 집단소송, 청와대 국민청원 등 다양한 형태로 확산 중이다. '게임 최적화 서비스(GOS)'가 고객 의사와 무관하게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성능을 제한해왔다는 점이 밝혀진 탓이다. GOS는 갤럭시 시리즈의 시스템 성능을 조절해 발열량을 잡는 소프트웨어(SW)다. 삼성전자가 공식 입장을 내고 진화에 나섰지만 불만은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불만의 핵심은 삼성전자가 사용 불가능한 '스펙'을 내세워 고가 플래그십폰을 판매했다는 데 있다.
통상적으로 스마트폰 성능은 긱벤치(Geekbench) 같은 벤치마크 프로그램을 통해 채점된다. 갤럭시S22는 채점대 위에서 100점을 받았다면 실사용 성능은 50~60점대를 오가는 것으로 드러났다. 벤치마크 채점 때는 GOS가 작동하지 않도록 설정해둔 것. 삼성전자가 GOS를 선택적으로 적용한 결과 고객이 실제 성능 이상의 가격을 지불하게 됐다는 얘기다.
고객이 스마트폰 성능을 온전히 경험할 수 없게 일방적으로 제한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실제 성능보다 부풀려서 판매한 것과 다르지 않다. 향후 긱벤치에선 이번 S22 모델을 포함해 삼성전자 스마트폰 4종이 평가 목록에서 제외된다. 과거 갤럭시노트7 시리즈의 폭발이 기기 결함이었다면 이번 사태는 고의적 눈속임에 가까운 만큼 소비자 기만 혐의가 짙다.
시장에선 이번 사안을 좀 더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갤럭시 시리즈의 신뢰 하락으로 올해 MX(모바일 경험) 부문 실적이 추락하는 정도에서 그칠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MX 부문이 왜 GOS를 통해 성능을 제한했는지를 우선 따져봐야 한다. SW를 통해 시스템 성능을 조작하는 건 기기(HW) 결함을 보완하기 위한 조치로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발열 문제를 잡기 위해 기기 성능을 절반 가까이 낮추는 것은 정상적이라 보기 어렵다. 스마트폰 완성도가 떨어지는 탓에 SW에서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스마트폰 성능과 완성도는 핵심 로직(Logic) 반도체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에서 판가름 난다. S22 시리즈에는 삼성전자 시스템LSI에서 만든 엑시노스2200과 퀄컴의 스냅드래곤898이 탑재된다. 둘 모두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부에서 최신 4nm EUV(극자외선) 노광 공정으로 만들어졌다. 갤럭시 시리즈에 국한된 일회성 부진이라기 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설계, 위탁생산, 세트 사업까지 복잡하게 얽힌 문제에 가깝다.
지난 1월 시장에선 삼성전자 파운드리와 시스템LSI 간 책임 공방설이 한차례 떠돌았다. 파운드리 4nm 공정으로 S22의 AP를 생산하는데 목표 성능을 이끌어내지 못한 데다 원인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경영진단에 들어간 파운드리 사업부의 선단공정 수율 문제가 원인인 것처럼 보도되기도 했지만, 시스템LSI의 설계 능력과 따로 떼어내 보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증권사 반도체 담당 한 연구원은 "같은 파운드리에서 퀄컴 스냅드래곤은 목표 클럭이 나오는데 엑시노스는 미달이고, 같은 설계도를 두고 TSMC에선 문제가 없었는데 삼성전자 파운드리에선 문제가 발생한다는 식으로 접근해 봤자 어느 일방의 책임을 가려내기가 힘들다"라며 "결과적으로는 S22 모두 발열 문제를 잡지 못해 GOS를 무리하게 적용했다는 점에서 시스템LSI의 설계 능력과 파운드리 사업부의 공정 능력 모두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
비메모리 반도체의 설계와 생산 등 경쟁력 한계가 B2C 영역인 스마트폰을 통해 불거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반도체 업계에서 시스템LSI의 경쟁력은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1위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주력 통합반도체(SoC)인 엑시노스 시리즈의 경우 점유율 하락이 이어지고 있다.
엑시노스도 중앙처리장치(CPU)는 ARM 기반, 그래픽처리장치(GPU)는 AMD에 의존하고 있어 경쟁사 애플의 AP인 A 시리즈와 대등한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지 못한다. 성능과 점유율 측면에선 퀄컴이나 대만 미디어텍이 주 경쟁 상대인데, 절치부심했다는 엑시노스2200에서 시장의 기대감이 대폭 쪼그라들었다.
이번 문제로 팹리스 전체를 고객으로 삼는 파운드리 사업부의 경우 4nm 공정의 적용 이유가 불투명해졌다. 회로 선폭이 10nm 아래로 미세화하며 대당 수천억원 하는 ASML의 장비를 들여와 TSMC와 경쟁하고 있는데, 결과물 성능이 이전만 못하게 되는 것처럼 비치게 된 것이다. 퀄컴은 차기작인 3nm AP의 파운드리로 TSMC를 선택했다.
이런 상황에서 갤럭시가 현재 시장 지위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세트뿐 아니라 또다시 비메모리 경쟁력까지 동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도체 시장은 한해 수십조원을 지속 투입하면서 이익을 남겨야 경쟁을 지속할 수 있다. 갤럭시 시리즈의 시장 지위는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반도체 추격 전략에서 하방을 막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더군다나 올해 삼성전자와 협력하거나 경쟁하고 있는 글로벌 빅테크의 최대 관심사는 메타버스 생태계 주도권 확보다. 애플의 아이폰 이후 AP가 부상하고 인텔 CPU의 독주가 무너진 것과 마찬가지 과정이 되풀이될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생태계 형성에 앞장서야 할 MX 사업부가 삐끗하거나 비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이 이를 적시 뒷받침하지 못할 경우 삼성전자가 주도권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시장에선 일단 파운드리 사업부에 대한 경영진단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사업부 경영진단은 통상 3개월에서 7개월가량 진행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경영진단 결과 명확한 원인이 공유되진 못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작년에도 스마트폰 사업부 경영진단 이후 세트 사업을 통합하는 등 조치는 취해졌지만 문제의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라며 "지금까지 삼성전자 태도로 미뤄볼 때 이번에도 구체적인 진단 내용이 공식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운드리 경영진단 결과 이전에 삼성전자가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지도 더 중요해졌다. 연초부터 사업부 간 책임공방이 불거지다가 주총 직전에 대표 브랜드인 갤럭시 시리즈가 여론의 불쏘시개가 됐다. 안팎에서 책임자인 노태문 MX 사업부장(사장)의 리더십 문제도 거론된다. 이번 주총엔 노 사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도 올라와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지난해 예고한 뉴삼성이 무엇이냐는 물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